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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특집] 라이프&스타일 초록생명마을 홍성직 대표, 그가 꿈꾸는 세상은 초록 비가 내린다
천혜의 경관과 신비로운 생태계가 날마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제주도. 우리 가슴속 절대적인 무릉도원으로 존재하는 제주도는 이제 더 이상 자연 그 자체로 이상향이 될 것을 사양한다. 무릇 자연이란 인간과 평화로운 공생을 이룰 때 비로소 참 의미를 갖는 법. 지금 제주도가 만인의 고향으로 거듭나는 것은 생명을 일구는 농부가 되어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이 진심으로 소통하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외과 의사 홍성직 씨가 있기 때문이다.


홍성직 원장의 꿈, 생태적인 삶을 펼쳐가는 초록생명마을의 유기농 녹차 농원. 붉은 벽돌로 마감한 단아한 건물은 농장의 창고이자 복합 문화 공간 ‘안단테 칸타빌레’다.


“요즘 제주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홍성직 원장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아마 현지에 가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예요.” 치열한 경쟁 사회, 우리 시대 희망 삶터로 떠오른 제주도. 이곳에서 가치 있는 자연의 삶을 가꾸는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제주도 마니아’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다. 한복 디자이너, 기업인,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는데도 돌아오는 대답은 놀랍게도 한 사람, 외과 전문의 홍성직 원장이었다. 심지어 그냥 “홍 원장님이라고 계시는데”로 시작해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를 두고 제주의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한 사람도 있었으니. 그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사전 조사’는 과감히 접어두었다. 모두가 감동하는 존재, 그를 만나는 감흥을 반감하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인 치료, 나는 삶의 철학과 방식을 치유하고 싶은 외과 의사
평일 오후, 비교적 한산한 제주 시내. 내비게이션이 있어 걱정 없었지만 역시나 초행길, 골목에서 잠시 길을 헤맸다. 별 기대 없이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 홍 원장님요, 들어온 길로 나가서 우회전하면 나오는 두 번째 건물 2층에 계세요.” 위치뿐만 아니라 층수까지 자세히 알려주는 주민. 그리고 ‘홍 원장님’이라 칭하는 제주 사람을 만나니 소문이 맞다 싶은 게 마냥 놀라울 수밖에. 그리고 이 기분 좋은 예감은 병원 문을 연 순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나무와 황토ㆍ한지 등 자연의 색으로 단장한 검박한 공간, 누가 이곳을 보고 외과 병원이라 할 수 있을까?

“생태적 치유 공간을 생각하며 나무와 흙, 재생 종이를 사용해 친환경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벽면은 재생지를 겹쳐 발랐고, 조명등은 나무로 틀을 짜고 한지를 붙였죠. 황토를 발라 제주도의 풍경을 그려 넣은 대기실 벽면은 모두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완성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외과 전문의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와 정착한 지 22년. 제주도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을 거쳐 2006년 제주의료원 원장을 맡아 3년간 임기를 마친 후 개원한 병원은 그가 오랜 시간 제주도에서 살며 고민한 삶의 방식이 배어 있다. 단순히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으로 의사로서 임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세상. 일찍이 마음과 정신이 지치고 병든 현대인에게 필요한 치료는 자연의 순리로 사는 생활문화요, 이를 통한 전인적 치유라는 점을 주목한 그는 이렇게 자신의 병원을 통해 그 의지를 세상에 공표한 것이다.

1 뒤뜰과 통하는 패밀리룸. 고재로 만든 좌탁과 천연 염색한 방석이 놓인 창가는 마치 한옥의 사랑방 같다.


2 집을 완공한 당시 심은 묘목이 아름드리가 되어 뒤뜰의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한다.
3 제주의 고재로 만든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

4 피아노, 첼로 그리고 최근에는 색소폰 연주에 푹 빠져 있는 홍성직 원장.
5 벽면 곳곳에 크랙이 나 있는 고풍스러운 벽면과 가족의 추억이 담긴 액자가 놓인 책상이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과 자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무 빛깔의 재생 종이 위에 초록색으로 이름과 직함을 써 내려간 명함. 홍성직 원장이 건넨 명함으로 현재 그가 제주도에서 어떤 삶을 일구고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유기농 녹차 농장이자 생태공동체 ‘초록생명마을 대표’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 ‘제주생명농업재단 이사장’ 그리고 ‘홍성직 외과 원장’이 순서대로 표기된 명함. 본업인 의사를 제일 마지막으로 놓을 만큼 본업보다 부업 (?)이 도드라지는 명함은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필요하다 싶은 것을 실천하는 데는 적극적인 편입니다. 명함에 표기된 모든 활동은 개인적으로 조직한 것도 있고, 좋은 목표를 둔 곳에 뜻과 힘을 합친 것도 있죠.” 사실 홍성직 원장은 제주도에서 해녀의 잠수병을 공론화하고 그 근본 치료를 위해 고압산소치료센터를 만든 의사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환경과 농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농업인, 또 외국인 이주자와 노동자의 인권 보호, 문화적 삶을 위해 봉사하는 선구자, 지역 인터넷 신문 <제주소리>를 창간한 언론인, 크고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뉴마트리오 단장 등 제주 도민의 삶과 밀착된 문화 활동을 펼치는 실천가로 명망이 높다. 사람과 가장 직접 연관이 있는 직업을 가진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일까. ‘소명’을 깨닫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 다양한 분야의 활동, 과연 어떤 알고리즘으로 조합된 것일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는 하나로 귀결됩니다.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그 관계가 재정립되지 않는 한 이는 영원히 미제로 남아 더 큰 문제를 야기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는 최근 대두된 학원 폭력의 원인을 기본이 무너진 가정이라 했다. 부모와 자녀 간 교감이 단절되고, 부모를 통해 경험한 전인교육이 스며들지 않은 아이는 정서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법.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고 타인을 존중하는 인격은 학교 교과 과정에서 습득하는 것이 아닌,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게 그가 체득한 진리다.

(왼쪽) 공익 근무 중인 아들 진우와 아내 유영신 씨 그리고 홍성직 원장.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제 선친이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거창고등학교 교감이셨어요.” 자연과 음악, 이웃을 돕는 데 애정이 남달랐던 아버지와 함께 교무실과 과수원에서 살다시피 생활했다는 홍성직 원장은 자신의 유년기를 단 한 장면으로 압축했다. “과수원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나요?” 푸른 과수원 안에서 가족과 이웃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연 아버지는 홍 원장 자신도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인가,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스스로 되묻게 하는 멋진 존재. 과수원을 일구는 아버지에게서 자연의 신비를 깨달았고,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에 감동하는 사람의 마음을 접하던 잊지 못할 경험. 이렇게 가슴으로 받아들인 생명의 신비는 그가 제주도에 살고, 세상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원동력이 된 것이리라.


1 안단테 칸타비빌레 내에 마련된 다실에는 정미선, 강승철 작가의 도예 작품과 이승수 작가의 금속공예 작품이 전시 중이다.
2 홍 원장이 꼽는 정한 휴식처, 책 읽는 화장실.

3 편히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평화로운 다락방.
 
4 홍성직 원장의 진료실 벽면에는 그가 주최한 문화 행사 사진과 포스터가 가득 걸려 있다.
5 몽골에서 의료 봉사를 했을 때 만난 환자들의 모습을 한 장의 포스터로 디자인해 문에 붙여놓았다. 옷걸이에는 작년 기막히게 맛있었던 옥수수를 말려놓았다. 올해 다시 심을 예정이라고.


먹고 사는 환경, 정화 작업을 스스로 시작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근본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심코 먹는 음식과 콘크리트 집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자고로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면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했다. 자연의 시간으로 나고 자란 좋은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 이른바 친환경 삶의 기본 단위인 농업은 그래서 전인 치유를 추구하는 홍성직 원장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독성이 빠져나가려면 1백 년이 걸린다는 콘크리트 건물은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고 1천 년 이상 튼튼하게 유지되는 나무 집으로 대치한다면 병에 노출될 위험도, 환경을 파괴할 염려도 없다. 그래서 인간과 직결된 음식과 환경은 홍성직 원장의 평생 연구 대상이요, 이는 그의 집과 농장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그중 홍성직 원장의 자택인 목조 주택은 12년 전, 친환경적 주거 문화를 실천하기 위한 실험에 해당한다. 당시 많은 사람은 비탈진 지형에 지은 목조 주택을 두고 거센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는 지금까지 세 식구의 건강하고 행복한 보금자리로 건재하고 있다.

“비탈진 언덕은 자연을 정복하는 관점에서 집을 짓는 사람에게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지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집을 짓는 이에게는 오히려 자연과 하나 되는 묘미를 선사하지요.” 그의 집은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은 형국이 실제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니 원목 특유의 부드러운 인테리어가 낯선 이를 따뜻하게 맞고, 뒤뜰에는 평화로운 반전이 펼쳐진다. 눈높이로는 하늘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잘 일군 텃밭이 새봄의 경작을 기다리고 있을지니, 흡사 성실한 농부의 집처럼 평안한 이곳이 치유가 되는 삶터 아니고 어디겠는가.

(왼쪽) 제주 풍경이 그려진 황토 벽, 종이를 발라 은은한 천장, 고재로 만든 테이블, 리폼한 의자. 병원의 대기실은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문화로 행복한 농부가 되고 싶다
그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나지막이 이어지는 현무암 돌담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그의 명함 제일 위에 표기된 생태공동체 초록생명 마을 농장. 지난해 완공한 복합 문화 공간인 ‘안단테 칸타빌레’가 자리하면서 생태 공동체로 면모를 갖춘 농장은 그가 왜 농부의 삶을 병행하는지 단박에 알려줄 만큼 자연의 위대함이 피부로 와 닿는다. 혼자 가꿨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광활한 대지. 유기 농법으로 가꿨다는 녹차밭은 아직 겨울을 품은 바람에도 푸르렀고, 저 멀리 아름드리나무는 힘든 노동의 시간을 보낸자만이 누릴 수 있는 휴식처를 금방이라도 내줄 기세다. 양손 가득 흙을 움켜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된 곳이 아니고는 접할 수 없는 감동. 그리고 이는 생태 건축을 지향한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한층 증폭된다. “겉에서 보면 벽돌집 같지만 이는 단열 효과를 위한 장치고, 집 자체는 원목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닥과 벽면 모두 동백기름을 입혀 자연미를 살렸죠. 참, 주방 가구 상판은 버려진 인조 대리석을 재가공해 쓴 거예요.” 정식 용도는 ‘창고’지만 창고도 이렇게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옛 농가 창호를 난간으로 재활용해 전통을 생활 속에 들인 감각, 생태 농업 서적이 도서관 규모로 쌓여 있는 곳. 근본을 이해하고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순간이다.


1 아름다운 돌담, 푸른 나무가 무성한 정원. 한눈에 반해 구입한 주택은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가는 길, 마치 초록 비가 내리는 듯한 이곳을 보고 그는 이 집의 이름을 ‘녹우산방’이라 명명했다.
2 나무 벽면 뒤로 푸른 녹차밭이 펼쳐지는 안단테 칸타빌레 창가에 앉아 있는 홍성직 원장. 앞으로 이곳에서 할 일이 많지만, 우선은 생태 농업 도서관으로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문화,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가장 먼저 개최한 행사는 파머스 마켓과 포틀럭 파티 그리고 하우스 콘서트였다. 농장 인근 마을 유수암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파머스 마켓과 포틀럭 파티는 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작은 축제. 유기 농산물과 가공품을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거나 교환하는 시장으로, 그 즐거운 장터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각자 키운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는 포틀럭 파티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제 안단테 칸타빌레가 문을 열면서 이벤트 하나가 더해졌으니, 바로 하우스 콘서트. 음악을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최고의 예술로 여기는 홍성직 원장은 애초부터 이곳을 연주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었다. 덕분에 유학을 앞둔 비올리스트와 피아니스트 커플의 연주, 음악 꿈나무의 바이올린 연주와 홍성직 원장의 색소폰 독주는 청아한 울림으로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홉 살짜리 소녀는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로 감동을 표현했다. 소소한 일상의 단편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은 홍성직 원장이 꿈꿔오던 전인 치유가 이뤄지는 생태적 삶의 서막일 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문화가 자생적으로 형성될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 홍성직 원장은 이런 미래가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다양한 활동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확신은 최근 이웃 마을 유수암의 변화를 통해 한층 힘을 얻고 있다. 분교도 문을 닫고 구멍가게조차 없던 유수암에 최근 예술가가 와서 폐교에 공방을 차리고, 목공예를 하는 부부가 카페를 열고, 서울에서 잘나가는 셰프가 레스토랑을 차리면서 개인이 저마다 재능을 발휘한다. 삶에 꼭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작은 경제’가 자발적으로 생성된 것이다. 많이 버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고, 성장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여기는 물질지상주의 시대. 자신을 성찰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야 할 때가 지금이라 말하는 홍 원장의 세상에는, 그래서 오늘도 인간과 자연과의 삶을 이야기하는 푸른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글 이정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