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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큐브 보고 또 보고 싶은 예쁜 내 새끼


“아내를 위해 차를 한 대 사준다면 뭘 고르겠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무조건 ‘편하고 안전할 것’을 차량 선택의 제일 조건으로 삼는다. 안전이야 당연한 조건이고 일단 운전하기 편해야 예민한 아내가 운전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게 아닌가. 차를 몰고 마트에 다녀와 피곤한 나머지 장바구니를 거실에 팽개치는 아내를 마주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정작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편한 차보다는 예쁜 차를 훨씬 선호하는 걸 보면. 몇 년 전, 여자 후배로부터 차를 골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최종 후보는 둘. 폭스바겐 골프와 미니 쿠퍼였다. 주변의 추천이 반반이라 선택을 못 하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골프를 넙죽 추천했다. 공간이 넓고 운전하기도 편하며 유지비도 더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스포츠성’이 철철 넘치는 미니쿠퍼는 보기보다 운전하기 불편한 차라는 이유에서. 그런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후배는 결국 미니쿠퍼를 샀다. 내가 그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는 ‘여심’을 너무 몰랐다는 데 있었다. 실내가 좁고 운전이 힘들며 승차감이 불편하다 해도 여자들은 예쁜 것을 원한다. 그래, 미니가 골프보다 예쁘긴 할 테지. 여자들 눈에는 말이지. 내 눈에 예쁘고 남들이 예쁘다는데 불편함 따위가 무슨 대수겠어? 그렇지 않다면 코르셋은 왜 입고 하이힐은 왜 신겠는가. 이런 깨달음은 한참 늦었다.

‘이효리 차’로 유명하던 닛산 큐브가 공식 출시될 무렵 주변 여성의 반응은 뜨거웠다. 동글동글한 미니쿠퍼와는 달리 네모난 생김새의 남다른 이미지 덕분에 큐브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 큰 이슈를 몰고 왔다. 직접 만난 일본의 큐브 디자이너는 욕실의 욕조, 강물에 다듬어진 자갈, 만화 캐릭터 같은 친숙한 이미지에서 디자인 콘셉트를 따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큐브를 겉으로 보면 눈에 익은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고, 실내에 있으면 저쿠지에 앉은 듯 편안한 기분이 들 거라고 했다. 직접 시승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네모난 상자 모양의 디자인은 남자인 내가 봐도 장난감처럼 귀엽고 둥글둥글한 인테리어 요소에서는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구석구석 수납공간도 많아 컵걸이를 일일이 세어보니 세상에, 열한 개나 되더라. 운전석이 높아 시야가 시원하니 운전하기도 편했다. 힘도 이만하면 충분한 듯싶고 무엇보다 지붕이 높아 머리 위 공간이 넉넉했다. 그런데 아차, 이건 어디까지나 ‘남자 시각’이 아닐까? 마침 시승을 마치고 온 미혼의 후배 여기자에게 물었다. “큐브 어떻디?” 그러자 그녀는 작심한 듯 단점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시트가 천이다, 운전석이 높아 안정감이 떨어진다, 운전대가 너무 멀다, 승차감이 딱딱하다 등등. “그래서 별로였어?” “아뇨, 별로라니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방을 옮겨놓은 것처럼 아주 예뻐요. 아유! 초콜릿 색깔, 그거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녀는 당장 2천만원이 없어 땅을 쳤다.

지난해 가을, 또 하나의 박스카가 등장했다. 기아 레이. 아이가 우산을 접지 않고도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차에 훌쩍 올라탈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차. 그랬다. 레이의 콘셉트는 엄청나게 실용적인 경차라는 것. 역시 이 차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2천만 원을 마련하지 못한 후배에게 물었다. “레이는 어때? 거의 반값인데.” “흠, 글쎄요. 쓸모 있어 보이긴 하던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아이 태운 엄마, 꽃집 아줌마 차 같은 광고 이미지를 상상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레이는 잘 팔린다. 여자의 인기를 등에 업고. 그건 그렇고 여자들은 왜 네모난 박스카를 유달리 좋아하는 걸까? 혹시 차체 모양이 네모난 선물 박스 같아서 그런 건 아닐까? 음, 이번에도 역시 내가 여심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인 걸까. 당장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아내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이것 참.

글을 쓴 이경섭 씨는 자동자 전문 잡지 <모터 트렌드> 한국판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월간 HIM<이매진> <에스콰이어> 등에서 일했으며, 작은 차를 타고 계획 없이 떠나는 하루 여행을 늘 그리워한다.

닛산 큐브
엔진 형식
DOHC 16밸브 4기통 MR18DE
배기량 1798cc
연료 휘발유
연비 14.6 km/L
최대출력 6000rpm
최대토크 4800rpm
구동 방식 전륜구동
변속기 X트로닉 CVT(무단 변속)
CO2 배출량 160g/km
가격 2천2백60만(1.8S)~2천5백60만 원(1.8SL)
글 이경섭 | 담당 신진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