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방 앞 바다에서 제주마 작품들과 포즈를 취한 장근영 씨.
2 ‘말과 함께‘, 45×65×26cm, 2011.
제주의 남쪽 바다, 남원읍 비안포구 근처에 있는 이름 없는 공방에서 장근영 작가를 만났다. 공방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도로이고, 몇 걸음만 더 가면 바다다. 바닷바람 소리만 겨우 들리는 이 고요한 동네에서 서른여덟 살의 젊은 작가가 흙으로 말을 빚는다. 그런데 작품 속 말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머리는 몸뚱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고 엉덩이는 항아리처럼 육중하며 다리는 멧돼지처럼 짧고 뭉툭한 것이 몸집이 큰 돼지인지, 말인지 헷갈린다. “제주 재래말인 조랑말입니다. 제주 말 방목장을 지나면 평소 알고 있던 말의 모습과는 다른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펼쳐져요. 난쟁이처럼 몸집이 작지만 튼튼하지요. 체구가 작은 말을 뜻하는 조랑말은 제주도가 몽골의 지배를 받았을 때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장근영 씨가 제주마를 빚기 시작한 이유는 그의 아버지 덕분이다. 제주마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평생 ‘제주마 연구’를 해온 까닭에 집에는 늘 제주마와 관련한 자료들이 쌓여 있었고, 딸에게 제주마 사진을 보여주며 작업을 희망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제주마를 빚은 것이 시작이었다. 2005년 졸업한 불가리아 국립미술아카데미의 졸업 논문도 ‘콘 Koh’, 즉 말이 주제였다. “제주마가 자연스레 제 작업의 중심이 된 것 같습니다. 제주에 살다 보니 제주마를 관찰할 기회가 많아요. 가끔 뜨거운 가마 속에서 완성한 제주마를 꺼낼 때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주일에 두 번 승마를 즐기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말의 눈빛과 움직임, 말이 달릴 때의 동작 등 모두 작업의 소재가 되지요.”
3, 4 그의 작업실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제주마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작은 몸집과 달리 척박한 산악 지대에 단련된 제주마의 괴력은 대단하다. 매일 32km씩 22일간 행군해도 견딜 만큼 굽이 치밀하고 견고하다. 칭기즈칸과 그 자손들이 이 작은 말에 올라 유럽까지 갔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그의 제주마는 어딘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안장 대신 꽃을 달고 있거나 당근을 물고 있다. 붉은 꽃송이가 앉아 있고, 미소를 지으며 꿈꾸고 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당시 심경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고 말한다. 이야기 도중 그는 전기 가마 안에서 몸을 식히 고 있던 제주마를 조심스레 꺼낸다. 토종 제주마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가마 속에서 그의 말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월림리 115-72 갤러리 노리
문의 064-772-1600
- 도예가 장근영 씨 제주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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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