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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옹기마을 김청길, 김진 부녀 숨 쉬는 옹기에 장 담그세요!

“빈 허벅은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이 허벅(물동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을 어깨에 들쳐 메고 물을 길어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허벅은 제주 여인의 고락苦樂을 담은 그릇이자 부엌 한쪽에 늘 놓여 있던 친근한 생활 용기다. 흙질이 좋고 양이 많아 수백 년 전부터 가마터가 산재했던 제주 북서부의 대정 고산 지역은 지금까지 옛 가마터가 남아 있는 곳. 그중 한경면 조수리의 마늘밭 사이에서 만난 제주옹기마을은 전통 방법 그대로 옹기를 빚는 곳인데 오로지 제주 흙만을 사용한다. 이곳에서 3대째 전통 기법으로 제주 옹기를 굽고 있는 부녀, 김청길ㆍ김진 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흙을 달래며 옹기를 만들면, 딸은 그것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한다.

김청길 씨는 올해로 옹기를 만들어온 지 50년이 지났다. 그가 열아홉 살 때 고산 지역의 가마터에서 옹기 대장 고홍수 선생으로부터 옹기를 배우면서 그의 도예 인생이 시작됐다. 그의 딸이자 제주옹기마을의 대표인 김진 씨는 서른 살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제주 흙에 매료되어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다. “제주 옹기는 첨가물이 전혀 없어요. 유약이나 잿물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제주에서 나는 흙과 불의 세기로만 만들죠. 특히 옹기의 색깔과 결을 결정짓는 것은 불이에요. 그래서 가마에 불이 오르면 이틀을 꼬박 가마 곁에서 돌봐야 해요.” 옹기가 검은빛을 띠는 것은 바로 불의 세기 때문이다. 옹기가 1250℃까지 고온 소성을 거치면 잿빛을 띠고, 1000℃ 이하의 저온 소성을 거치면 붉은빛을 낸다. 유약을 바른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지만 천연 광택이다. 불을 잔뜩 머금어 단단해진 옹기는 바람과 불이 씨름을 한 후 자연스러운 윤기를 낸다.

(왼쪽) 한경면 조수리에서 3대째 제주 전통 옹기를 만들고 있는 김청길ㆍ김진 부녀. 김청길 씨는 올해 옹기 제작 50주년을 맞았다.


1 옹기 표면에 빗살무늬 문양을 넣어 제주 옹기만의 토속적인 특징을 살렸다.
2 자식 같은 옹기들을 둘러보는 김청길 씨.

3 유머가 돋보이는 돌하르방 모양의 옹기. 중절모 모양의 뚜껑은 김청길 씨의 아이디어다.
4 물레 위에서 옹기를 빚고 있는 김청길 씨. 허벅 선을 만드는 허벅 대장이 따로 있을 만큼 옹기는 허벅 선이 생명이다.


높은 온도에서 구울수록 옹기의 빛깔은 더욱 진해진다. 제주 옹기는 들숨과 날숨의 숨구멍이 있는 ‘숨 쉬는 항아리’. 흙으로 만들었던 고팡(실내 창고)은 아무리 더운 날에도 습기가 차지 않아 곡물을 저장하기 좋았다. 효소가 숙성되는 몇 안 되는 옹기 중 하나다. “육지 항아리로 장을 닮으면 숙성이 잘 안 돼요. 당연하지요. 숨을 쉬지 않으니까. 옛날 어르신들이 장을 담글 때 제주 옹기를 찾는 이유가 다 있어요. 유약을 바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그렇지 않은 옹기보다 50% 이상 발효 기능이 높죠. 그래서 제주에서는 집집다마 옛날에 쓰던 옹기가 많이 남아 있어요. 기능이 좋아 오래 사용하다 보니 대를 이어 계속 물려주기 때문이죠.” 요즘 들어 옹기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옹기의 기능이 알려지면서 혼수나 선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옹기에 대한 꾸준한 사랑으로 불과 흙을 담금질하는 옹기 부녀의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옹기는 지나간 옛것이 아니라 재발견하는 우리 것이 되고 있다.

주소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3786-2 제주옹기마을
문의 064-773-0091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