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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온 고요한 아침의 남자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큰 날숨으로 마음을 비우고 긴 들숨으로 평화를 마신다. 모든 요소를 지운 채 여백과 정적만 남긴 사진 앞에서. 세계적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지닌 작가이자, 한국에도 수많은 경배자를 둔 마이클 케나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엔 고요한 아침의 흔적을 담은 사진과 함께다. 전시 제목도 ‘고요한 아침’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이 고요한 남자는 무엇을 만났을까.

대기에 물기가 도는 새벽, 눈밭에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만고풍상의 시간을 버틴 나무, 꼭 있어야 할 것만 남겨둔 듯 앙상한 나무가 참으로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뜻을 곱씹게 만드는 ‘아름다움’. 잎사귀 무성한 어린 나무가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세상의 고요가 여기 다 모인 것처럼 적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안개와 바람이 부딪히며 몸을 섞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고요. 순간 나무를 감싸던 바람이 사진 속을 빠져나와 내 뺨을 매만지는 것 같아 잠시 몽롱해진다.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가 홋카이도에서 찍은 ‘구샤로 호수의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고요해진다.

월요일마다 낙오자 같은 뒷모습을 흘리며 출근하는 우리, 집 안팎을 뱅뱅 돌아도 끝나지 않는 일들에 휩싸인채 낡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사진은 이렇게 고요를 선물한다. 나도 저 나무처럼 말 없이 앉아서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무욕하게 바라보고 싶게 만든다.

그가 한국에 왔다. 거의 매년 우리나라의 풍경을 촬영하느라 곳곳을 누비는 그가 이번엔 전시, 강연까지 겸해 들렀다. 그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우리나라 관객은 성지순례하듯 가슴 졸이며 사진을 감상한다(지난해 2월 한 달 동안 열린 <철학자의 나무>전에는 9천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201㎡, 그러니까 60평이 좀 넘는 규모의 화랑 전시로는 드문 경우다. 이제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의 인기도 대단해 작년에 발표한 ‘중국 황산 시리즈’는 마지막 에디션 한 장만을 남기고 모두 팔렸다고 한다). 먹물 한 점이 물 되고, 붓질 한 획이 나무 되는 수묵화처럼 잔사설 없는 작품, 그 고고함이 한국 관람객을 강한 자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한국에 오면 지방 촬영에 시간을 전부 쏟다 가길 소망하는 그이기에(이번에는 그가 강원도 평창을 찾았다. 이 ‘평창 프로젝트’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즌에 맞춰 김영일 작가와 2인전으로 열릴 예정이다) 우리의 만남은 짧았다. 기자 간담회, 한국 팬을 위한 강연회, 특별히 <행복>을 위해 할애된 30분 남짓의 촬영에서 스치듯 만난 그와 나는 이메일을 통해 비로소 ‘소통’했다. 30개 가까운 질문, A4 용지 열 장이 넘는 답으로. 고감도의 비유, 행간의 깊이까지 담은 그의 답변 전문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왼쪽) 자신의 작품이 일종의 오아시스, 휴식의 장소, 숨 쉴 수 있는 시간, 차분해질 수 있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소망하는 마이클 케나. 그는 관객이 사진 속 풍경에서 친밀감을 느끼려면 사진 크기가 작아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늘 8×10인치 (201×252mm)로 인화한다.


(왼쪽) ‘Kussharo Lake Tree-Study 5’, Kotan, Hokkaido, Japan, 2007
(오른쪽) ‘Hillside Fence Study 6’, Teshikaga, Hokkaido, Japan, 2007

간절하게, 느리게 들여다보기
그의 작품은 운치 있게 바라보기보다 간절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겨울이 오기 전 얼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몸의 물기를 빼버리는 나무처럼 자신을 비우고 살아온 사람만이 지닌 고요지경이 담겨 있으므로. “저는 은둔하는 인간형인 것 같습니다. 제겐 사회적 네트워크,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등에 쏟을 열정이 없어요. 물론 이런 것들이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의 의사소통 방법은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소통. 저는 사진을 빨리 찍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한 장소에서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을 보내죠. 동틀 무렵부터 황혼까지 촬영하는 경우도 많고 밤을 새기도 합니다. 주로 혹한의 날씨이고, 눈이나 얼음 속, 산속이나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작업합니다. 비탈길, 벼랑길을 더듬으며, 눈비가 계속돼 미끄러운 이끼 위를 포복하며 촬영하지요. 그 무거운 하셀블라드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몇 시간씩 걷습니다.”

구도자처럼, 탐험가처럼 산을 오르며 성실하게 찍은 사진. 대부분 열 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출로 풍경을 응시하는 사진. 늦게 인화할수록 대상을 더 객관화할 수 있다고 믿어 수년 후에야 인화 작업을 마친 사진(아직도 인화를 기다리는 네거티브 필름이 수천 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사진 안에는 해탈한 겨울 숲이,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이, 하얗게 기침 콜록이는 바다가 담긴다. 간절히 들여다봐야 하는 풍경이 그곳에 있다. “부끄럽지만 저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잘 가지 않아요. 현재의 유행이나 동향에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는 것 같아요. 디지털 미디어가 폭격을 퍼붓는 세상이지만 저는 아직도 필름 카메라로 작업해요. 내 열정은 다른 곳에 있어요. 생명이 나를 매혹하고 풍경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세계를 탐험하는 일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입니다. 또 다른 이들이 하는 걸 따라 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해요. 따라잡으려면 평생이 걸릴 걸요.” 고집스러워서 더욱 마음을 끄는 이 남자.

“영국 리버풀 근처의 작은 산업 도시인 위드너스에서 자란 저는 어릴 때 공원, 연못, 기차역, 다리, 공장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절에 경험한 모든 것이 나중에 사진의 피사체가 된 것 같아요. 줄곧 저는 기억, 흔적에 집중해온 듯합니다. 텅 빈 경기장, 오래된 방앗간, 버려진 교회, 바닷가의 건물 등 원래는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 목적인 공간에서 무언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주 초현실적인 느낌이 나지요. 저는 이런 점에 매료됩니다. 보이는 것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에 담고 싶습니다.” 그에게 성공의 면류관을 안겨준 산업 발전소와 공장 사진을 다시 한 번 깊숙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존 레논의 노래 중에 ‘삶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고 바쁠 때 일어나는 일들’이란 가사가 있지요. 예측 불가능하므로 통제할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입니다. 저는 오히려 삶 속에 담긴 그 복잡함과 난해함이 흥미롭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시간 내가 산을 탐험하며 무엇을 발견할지는 예측도, 통제도 안 되는 거죠. 중국 황산을 촬영할때는 산의 몸체가 안개 속에 전부 가려 막막했는데, 불과 1분 만에 그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선경仙境 같은 황산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0여 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저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됐어요. 앞으로 내 앞에 놓인 길에는 재미있는 우여곡절이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삶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보일지 기대도 된답니다.” 그의 이야기는 깊이 고인 마음을 끌어올리는 수도자의 묵상 같다. 신부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들어갔던 이의 거룩한 이야기.


(왼쪽) ‘Huangshan Mountains-Study 1’, Anhui, China, 2008
(오른쪽) ‘Fifty Fences’, Taisetsu, Hokkaido, Japan, 2004

하이쿠처럼, 수묵화처럼
그의 사진은 하이쿠(17자로 된 일본의 단시)를 닮았다. ‘천 줄보다 긴 한 줄’이라 할만한 하이쿠처럼 그의 사진은 단지 1을 말하고 99의 공간을 여백으로 채운다.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함의含意로 채워진 여백이다. “자세한 묘사 대신 상상력의 기폭제가 될 요소 한두 개를 넌지시 비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안개, 이슬비, 비, 눈이 있는 풍경을 즐겨 찍는데, 그 친구들은 배경의 어수선함을 걸러내는 장막이 되죠. 넌지시 비치는 것의 힘을 좋아하다 보니 아시아의 풍취도 사랑하는 것 같아요. 평온, 고요함, 단순함. 한국의 수묵화가 그러하죠. 선 몇 개와 음영만으로도 보는 이가 우주 전체를 상상하게 합니다.” 맞다. 그의 사진은 그리되 다 그리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수묵화를 닮았다.

철학자의 나무
그의 작품에는 유달리 나무가 많이 보인다. 묵묵히, 고요히 살아왔을 나무들. “위드너스에서 살 때 제게는 나무가 있었어요. 빅토리아 공원 들판 가장자리에 서 있던 나무. 내 소유는 아니었지만 제가 선택한 나무였지요. 우리 5남매 모두 각자 좋아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우린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곤 했죠. 나무 위에서라면 우리를 공격하는 상상 속의 적들, 악랄한 우주선, 우리를 끌어내려 영원히 노예로 만들어 버릴 해적선 따위를 피할 수 있었죠. 우리만의 안전 지대였습니다. 혼자 내 나무를 찾아가 몇 시간씩 공상하다 돌아오는 날이 많았죠. 당시 나무는 내 우주의 중심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지금은 세계 곳곳에 나무 친구들이 많습니다. 홋카이도 구샤로 호수의 나무가 그렇고, 단양에서 만난 ‘산 나무(눈 쌓인 산등성이에 홀로 서 있는 이 나무를 보고 홀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을 느꼈다. 그렇게 촬영한 작품이 2011년 작 ‘산 나무’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도열한 자작나무…. 사람들이 제게 왜 인물 사진을 찍지 않느냐 묻는데, 사실 저도 인물 사진을 찍습니다. 단지 그 대상이 나무일 뿐이죠. 반쯤 농담을 섞어 설명하기도 하죠. ‘나무는 치장할 필요도 없고, 말대꾸를 하지도 않으며, 내가 만들어내는 인물 사진에 항상 만족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나무는 위풍당당하게 서서 존경과 겸손을 부르는 땅의 수호자입니다. 거대한 나무에서부터 갓 자란 묘목에 이르기까지, 불빛처럼 홀로선 나무에서부터 광활한 산을 덮은 숲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생명입니다. 그 감사의 표시로 나무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그의 나무 사진은 참 오묘하다. 일본 구샤로 호수의 나무 사진에선 그 나무가 마치 막부 시대 영주의 집을 장식한 분재 같고, 중국 황산의 숲에선 중국 관념산수의 풍경이 보인다. 러시아의 향나무 사진은 크렘린 궁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근엄해 보이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의 나무는 바 로크적인 풍경으로 보인다. 그의 나무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결국 그게 ‘문화’ 아니던가)’까지 담아내는 전령사 같다. 정말 대단하다!

(오른쪽) 촬영하는 우리를 향해 갑자기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35mm 중형 카메라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가끔 일회용 플라스틱 카메라도 사용한다. 일단 무게가 가볍고 자유로워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고.

마이클 케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 “사진, 여행, 노래방, 기타 치기, 달리기, 인도 영화, 밤에 돌아다니기, 책, 날아디니는 새, 사찰과 사원, 비틀즈, 샤룩 칸(인도 영화배우), 유지로(일본 배우이자 가수), 에버튼 풋볼 클럽, 위드너스 바이킹 럭비 리그 클럽, 샴페인과 콜드 초콜릿, 술집, 극장, 해돋이 보기, 달리기, 보름달…. 일부만 꼽아도 이 정도!”


(왼쪽) ‘Winter Seascape, Wakkanai, Hokkaido, Japan, 2004
(오른쪽) ‘Log and Plane’, Boca Raton, Florida, USA, 1992

고요한 아침
이제 나도 나무를 앙모한다고 고백하려 할 즈음, 그는 새벽 예찬으로 넘어가고 있다. “제 작품은 대부분 이른 새벽에 촬영한 것이죠. 물러가는 밤이 다가오는 낮 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 아침 공기 속의 정적을 아주 사랑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생의 희망, 다시 깨어나는 시작의 가능성도 담긴 것 같고요.” 머뭇거리며 사그라지는 새벽별 아래 그가 찍은 ‘고요한 아침’ 사진. 우린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큰 날숨으로 마음을 비우고 긴 들숨으로 평화를 마신다.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듯이 사는 것
그는 지난해 아름다운 아내 맘타와 결혼했다. 맘타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 아니카와 아쿨이 있다. 그에게도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멋진 딸 올리비아가 있다. 불어난 그의 가족들은 지금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아내는 홍콩에, 딸은 제네바에, 그의 스튜디오는 시애틀에, 그는 그의 활동 주무대인 전 세계 산과 바다와 들에. “멀리 떨어져 살지만 가족이 주는 안도감과 지지가 제일 큰 자산입니다. 물론 가족과 일, 여행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때로는 어려워요. 모든 것을 잘하기에는 시간이 늘 부족하죠. 다행히도 가족들이 내 일을 이해하고 열렬히 격려합니다. 가족들은 내가 일하는 데 고독, 고요함, 집중력 그리고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렇게 날 이해하는 이들이 있어 정말 감사해요.” 감수성이 예민한 어떤 영혼이라도 남편, 아버지라는 외투를 입으면 몰랑 몰랑해지는 법인가 보다. 이메일로도 느껴지는, 가족 이야기에 벙싯거리는 그 미소.

“가족과 자주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저는 제 일이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자연의 숭고함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인류는 우주의 일부분일 뿐이고, 우리는 생각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자신과 지구에게 하는 행위는 우주의 웅대한 계획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으로서 이 집을 잘 건사할 책임이 있어요. 그 책임감이 우리를 계속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메일로 오간 그와 나의 이야기도 끝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철학자 같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는 ‘철학자’라는 별명도 지녔다). “삶은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이 질문 세 가지를 품고 살아가잖아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현자들이 여러 답을 내놨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실제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태어났고 죽을 것이라는 사실뿐.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삶을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하고, 또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고 싶네요. ‘삶을 사는 방식은 두 가지뿐이다. 기적이 없다는 듯이 사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듯이 사는 것’. 나는 삶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와 나의 그 짧은 인연은 끝났다. ‘고요’와 ‘철학자의 시간’을 듣던 나는 이제 저 각다귀판 같은 세상 속으로 다시 밀려 들어가야겠지. 하지만 나도 이제 ‘고요’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힘들 땐 나도 저 나무처럼 고요히 앉아서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을 무욕하게 바라볼 것이다. 가슴에 안개처럼 차오르는 고요를 느끼며.

마이클 케나의 <고요한 아침(Tranquil Morning)>전이 3월 18일까지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3천 원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전시에 맞춰 사진 에세이집 <고요한 아침(Traquil Morning)>도 출간했는데, 그의 사진집 가운데 유일하게 영문과 한글이 함께 담긴 것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판매할 예정이다.
문의 02-738-7776



 취재 협조 공근혜 갤러리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