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남편들의 이구동성 타로 점 쳐주는 아빠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느닷없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한두 번 고집 피우다 꺾일 기세도 아니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친구가 정식 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며 자기도 그쪽으로 전학을 시켜달라고 제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의 눈빛은 가히 죽음마저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함으로 가득 찼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학교를 놔두고, 30분가량 버스로 통학하는 학교로 전학 가서, 죽으라고 공부만 해도 남들 발꿈치도 따라가기 힘든 주제에 공을 차겠다고 하니 제 엄마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전학만 시켜주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아이의 말에 혹한 아내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결국 아이를 전학시켰다. 아이는 꿈에 그리던 축구 선수가 됐다.

아빠 입장에서는 엄마와 고민의 차원이 달랐다. 축구를 하든, 농구를 하든 운동을 하겠다는 아들을 말릴 이유는 없었다. 세상 모든 아이가 공부만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그렇게 공부만하는 아이들도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반드시 박지성이 되고 말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공을 드리블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축구장 한 바퀴만 뛰어도 가슴을 쥐어 잡고 헉헉대는 뚱뚱이 아이에게 과연 축구의 재능이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돌연변이도 있겠지만, 운동신경은 핏줄로 이어진다는 말은 확신에 가까운 내 생각이다. 프로 축구 선수 출신이던 아이 친구 아빠와는 달리, 이 아빠는 축구공 앞에서 ‘국가 대표 개발’이라는 말은 차마 고백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들보다 현격히 느린 발, 상대 한 명을 돌파하지 못하는 굼벵이 순발력 등이 감독의 눈에 띄어 골키퍼로 낙찰되었다. 그것도 후보로. 이제는 주제 파악을 할 법도 하련만, 시련 속에서 꽃이 핀다는 글을 일기장에 써대며 아이는 개인 훈련까지 해댔다. 어찌 됐든 그렇게 1년이 흘렀고, 1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골키퍼 후보였으며, 아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축구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댔으니 부모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부부는 꼼수 하나를 생각했다. 아빠가 아들과 여행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축구를 포기하게끔 하는 대화를 시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른의 꼼수를 눈치챈 아이는 아빠 입에서 나올 것이 뻔한 말(“너는 글짓기 상을 싹쓸이 하니 차라리 축구보다는 네가 잘하는 쪽으로 힘을 쏟아보자” 등)을 노련하게 응수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잘 알 것이다. 사내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특히 엄마가 아닌 아 빠가 아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다. 웬만하면 자기표현을 하지 않으려는 아이와 세련된 대화 기 법을 훈련받지 못한 아빠는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말을 섞지 못한다. 엄마라고 특별하지 않다. 엄마 가 하는 모든 말은 아이에게 잔소리일 뿐이고 엄마가 백 마디를 할 때 아이는 한두 마디로 응대할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뜻밖에도 타로 카드였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타로 점이라고 해서, 서양식 카드로 운 명을 점쳐주는 그 타로 카드 말이다. 옛날에 할머니들이 화투로 심심풀이 점을 쳤듯, 서양에서는 78장의 카드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면서들 놀았다. 애초에 미신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타로 카드가 심리 상담 등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틀간 교육받은 후 첫 번째 타로 점의 상대로 아이를 앉혔다. 그리고 아이가 축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안 좋을지를 타로에게 묻자고 했고, 아이에게 직접 다섯 장의 카드를 고르게 했으며 그 카드를 해석해줬다.

어떤 아이든 새로운 것에는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타로 카드의 그림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카드가 지닌 기묘한 권위도 무시할 수는 없다. 카드 앞에서 아이는 여행 때의 그 산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카드를 해석하니 “축구를 계속하면 스스로 많이 힘들 것이고 그런데도 엄마와 아빠는 너를 지지할 것이다”(실제로 그렇게 카드가 뽑히기도 했다)라는 부모의 계략 섞인 조언을 말할 때에도 아이는 너무나 진지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선생님이 아빠의 타로 점과 똑같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줬을 때 아이는 스스로 축구를 그만두었다. 사실은 축구가 좋아서가 아니라 공부가 하기 싫어 축구를 하겠다고 한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아이와 대화하면서 매개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꼭 타로 카드여야 할 이유는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운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대화를 연결하는 다리 하나를 부모가 먼저 고민할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 떠올리지 못하겠다면 독학이든 강좌로든 타로를 배워보시라. 이후로도 타로는 아이와 대화가 필요할 때, 가족회의 때 등 우리 집의 요긴한 대화 촉매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오늘 하루 특별히 조심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볼까?” “엄마와 아들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한번 물어 볼까?” 등의 한마디는 생각보다 꽤 긍정적인 말 트임 효과가 있다. 타로 점이 맞든 안 맞든 그건 물론 관심 대상이 아니고. 

윤용인 씨는 딴지일보 기자와 딴지일보 사업국장을 거쳐 2000년 7월 여행 전문 웹진 <딴지관광청>을 창간했다. 관광청 6년 동안 덤핑 패키지 여행 상품, 해외 옵션의 부당 이익, 소비자들의 저가 상품 선호 성향 등 여행 시장의 민감한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글을 쓰며 많은 여행 독자와 소통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좀 더 크게 놀 판이 필요했기에 2003년 ‘노매드 미디어&트래블’이라는 여행 컴퍼니를 설립했다. 본업인 여행은 필수로 하면서 각종 언론에 여성과 결혼, 육아와 심리에 관한 폭넓은 글을 쓰고 있다.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트위터@ddubuk)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