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머무는 겨울 숲처럼, 재앙이 지나간 폼페이의 폐허처럼 마른 식물로 가득하다. 이 세상 꽃이 아닌 것 같은 검은 꽃무리가 한데 모여 검은 들판을 이룬다. 그 들판을 따라 금욕적으로 걷는데, 어이구머니! 그 비탄스러운 꽃이 어느새 찬란하게 붉은 꽃으로 보인다. 어찌 된 일일까. 찬찬히 살피니 종잇장처럼 얇은 꽃 조각이 한쪽 면은 검은색으로, 한쪽 면은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 작은 꽃 조각이 지름 10m의 둥근 모래밭에 1만 7천 개나 서 있는 것. 검은 꽃무리를 보며 원을 따라 돌다 보면 어느새 반대쪽 면의 울긋 불긋한 꽃이 슬몃슬몃 엿보이고, 검은 꽃과 채색된 꽃이 뒤섞여 보이기도 하면서 마침내 제 환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 작품 주위를 거닐면서 관람객은 감정도 끊임없이 변하는 걸 느껴요. 검은색 들판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슬픔과 비탄을, 화려한 꽃 들판 앞에 선 뜻밖의 놀라움과 환희를 느끼죠. 또 삶과 죽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한데 엉켜 있고, 언제든 바뀔 수 있지요. 우리 인생에는 날마다 삶과 죽음이 서로 왕래합니다.” 지구 상마지막 시인 같은 얼굴로 그가 설명하는 삶과 죽음. 분명 오래 묵고 곰삭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 삶과 죽음 사이는 한 뼘도 되지 않는데, 하루 8만 6천4백 초 매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데…. 이 작품이 내뿜는 묘한 기운에 내 마음속으로도 잔물결이 인다.
<행복> 2월호 표지 작품 ‘블랙필드Blackfield’는 이 꽃 조각 설치 미술을 찍은 사진이다. 갤러리에 실제 설치된 그 꽃 조각을 좀 더 살피니 꽃주름까지 혈관처럼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완성하는 데 3년 넘게 걸렸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옛날 백과 사전과 빅토리아 시대 식물도감에서 꽃을 조사한 다음, 내 필요에 따라 모양과 컬러를 변경해요. 그런 다음 이 그림들을 스테인리스스틸에 포토 에칭photo etching합니다(철판에 네거티브 복사를 한 후 산성 용액에 담그면 포지티브한 면만 남는다. 그런 다음 그 앞ㆍ뒷면에 일일이 색을 칠한다). 2백 송이 정도 그리고 나서야 보 조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3년이 넘는 동안 열 명 이상의 젊은 예술가가 공들여서 이 작업을 완성했어요. 그러고는 바닥에 일일이 붙이고 모래를 뿌려 사막의 꽃무리처럼 만듭니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땀 냄새로 흥건한 노작勞作이었던 것이다. 눈썰미 없는 사람은 쉽게 알아볼 수도 없는, 그 치밀 한 세계에 여전히 살고 있는 이 이스라엘 남자. 영화배우 뱅상 카셀의 이스라엘 버전으로 생긴 자독 벤 데이비드Zadok Ben David. 그 후일담으로 그의 가문은 대대로 보석 세공을 해왔고, 아버지가 유명한 보석 세공인이라는 것, 어릴 때부터 보석 세공은 절대로 하 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하는 일을 보면 아버지에게서 노작의 운명을 물려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부산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진화와 이론(Evolution and Theory)’, 1999
LA에서 전시한 ‘블랙필드Blackfield ’, 2007_09(Black View).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의 벽은 창호지처럼 얇구나
그는 이미 2010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우리나라 관객을 만났다. ‘블랙필드(당시엔 직사각 형태로 설치했다)’도 있었고, ‘진화와 이론(Evolution and Theory)’이란 작품도 있었다. 당시 관람객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평가한 ‘진화와 이론’은 실물 크기의 유인원, 호모사피엔스를 비롯한 인류의 조상들이 얇은 금속판 실루엣으로 모래 위에 세워졌다. 그 사이사이엔 영사기, 배, 망원경처럼 인류가 발명한 과학의 산물이 자리 잡았다. “과학과 그 결과물인 발명품을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은 마이크로칩의 세상이니까요. 이 작품에서는 과학도 역시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전력ㆍ마찰력 등도 결국 자연의 힘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과학인 것처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과학이 이루어낸 것들에 대한 찬사, 반대로 그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담아내려고 했죠. 현대 과학은 감정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문명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 비판에는 관용과 수용이 섞여 있죠. 예술 작품이 문제를 해결해줄순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는 이 얇은 금속판에 정신을 담아, 체열을 담아 손으로 다듬고 매만 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처럼 저는 세계의 미래에 대해 근심하지 않아요. 우리는 20세기의 끔찍한 경험에서 배운 것 덕분에 지구의 미래에 좀 더 조심하고 있어요. 현재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활용하면 세계 어딘가에서 위기가 발생해도 즉시 대처해 도울 수가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예요. ‘블랙필드’를 봐도 그렇잖아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들판도 조금만 가면 생생한 청춘의 꽃밭이 되죠. 또 세상 모든 것은 다 있을 만하니까 있는 겁니다. 죽음도 아픔도 슬픔도.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삶의 환희를,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행복을 알 수 있을까요.” 이 꼿꼿한 긍정이여! 삶과 죽음이 다시 환하게 만나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법정스님의 글귀를 떠올린 건 과한 의미 찾기일까.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봄이 지구 어딘가에 상륙하는 2월, 우리도 그의 이 꽃 들판을 바라보며 무거운 겨울을 벗는다.
*이 기사는 아트클럽 1563의 협조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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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 신생화 취재 협조 아트클럽 1563(02-584-5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