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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매축지 마을 사람들 살맛 나는 우리 마을로 놀러 오이소!
매축지 마을을 아시나요? 일제 강점기 대형 선박의 물류 단지를 확보하기 위해 바다를 메워 만든 땅, 빼곡하게 맞닿은 건물의 담벼락이 하늘을 잠식하는 곳. 바로 매축지 마을이라 불리는 부산시 동구 범일5동입니다. 신지 않는 낡은 구두처럼 소외된 동네였던 이곳에 작은 변화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활력도 되찾고 사람 사는 맛도 얻은 매축지 마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바다를 메운 땅에 생긴 마을
바다를 메워 마구간과 군용 막사로 사용하던 이 땅은 해방 이후 귀국선을 타고 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터를 잡으면서 주거지의 모습을 갖춰갔다. 갈 곳을 잃은 피난민들이 마구간을 하나씩 차지해 형성된 마을이다. 부산 동구 해안에 형성된 마을 대부분이 매축지埋築地지만 현재는 범일5동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매축지 마을에서 자란 손택수 시인의 ‘범일동 블루스’에서 범일동 풍경이 잘 드러난다.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고 산다/ 애 패는 소리나 코 고는 소리, 지지고 볶는 싸움질 소리가 기묘한 실내악을 이루며 새어 나오기도 한다/ 헝겊 하나로 간신히 중요한 데만 대충 가리고 있는 사람 같다/ 샷시문과 샷시문을 잇대어 난 골목길/ 하청의 하청을 받은 가내수공업과 들여놓지 못한 세간들이 톡, 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 밤의 한숨과 근심까지를 끄집어내 까실까실하게 말려주고 있다.


1백 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지만, 언뜻 바라본 범일동은 이 시에 드러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구석구석 들여다보니 허물어진 담벼락에 알록달록한 꽃 그림이 있고,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공동 화장실 옆에는 두루마리 휴지에 걸터앉아 고민하는 남자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벽화 그리기를 진행해 환경이 변화한 동네는 많다. 하지만 매축지처럼 주민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진 곳은 드물다. 대부분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단발성의 행사로 끝나는 반면, 매축지 마을은 주민이 중심이 되어 하나씩 채워가는 방식이다.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가꾸며 활력을 찾고 그 중심에 서는 데 의미가 있다. 범일5동 주민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6월 ‘우리 마을 사랑방 마실’이 생기면서부터다. 마실은 이름처럼 누구나 편안하게 들러 담소를 나누는 쉼터이자, 마을의 크고 작은 현안을 논의하는 주민 센터고, 매축지 아이들의 도서관이며 햇살 좋은 카페다.


인사이트영을 운영하면서 마을 주민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정유진 씨와 김성아 씨.


(왼쪽)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주민 회의를 하기 위해 매축지 주민이 사랑방에 모였다.
(오른쪽) 매축지 마을은 영화 <친구>의 촬영지로 장동건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사랑방 마실은 우리 동네 ‘홍 반장’!
“2년 전 <국제 신문>과 사회복지 연구가가 함께 지구별로 빈곤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가장 큰 화제가 된 지역이 매축지 마을이었죠. 하지만 이 마을은 사람들의 관심보다 환경 개선이 우선이었습니다. 마을이 알려지고 부산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슬럼 지역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사랑방이 문을 열고,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랑방 운영자이자 동구 쪽방 상담소 ‘희망나눔방’의 상담원 이재안 씨는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방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주민 회의가 열린다. 아직 열 명 남짓 모이는 작은 모임이지만, 주민 입을 통해 나온 의견이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침 주민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매축지 마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나 될 정도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많다. ‘쪽방’ 크기만큼 변하지 않는 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열두 살에 가족 모두가 매축지 마을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64년 동안 살고 있는 매축지 터줏대감 조정자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한 번도 이사를 못 했어. 할 수가 없었지. 지금도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어. 아마 제일 오래 살았을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김종선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나는 열세 살에 와 여기서 50년 살았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수십 년 산 사람들이야. 사랑방이 생기기 전에는 죽은 마을 같았어요. 담벼락도 예쁘게 꾸미고 화장실도 정비하니, 동네가 또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매축지 아이들이 사랑방에 와서 영어를 배우는데, 벌써 2년째다. 방과 후 집에만 있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도 주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어 안심이다. 어느새 사랑방은 마을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홍 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른쪽) 매축지 아이들이 그린 매축지 마을. 그림은 골목길에 전시돼 있다.


(왼쪽) 미술가와 주민이 합동해서 완성한 그림이다. 자개는 매축지 마을에 있는 ‘통영칠기’ 사장님이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오른쪽) 매축지 마을에 산 지 30년이 된다는 송남엽 할머니.


(왼쪽) 46년 된 ‘양곡쌀상회’는 매축지 마을의 상징이다. 이호덕 할머니와 정원달 할아버지.
(오른쪽) 갤러리 정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가람이와 영민이.


매축지 마을 가꾸기에 분주한 사랑방의 이재안 씨(가장 왼쪽)와 갤러리 정 운영자들.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되다
마을 사랑방이 비영리 단체로 주민의 생활 개선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면, 한 블록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인사이트영’은 주민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의 판매를 돕는 ‘마을 기업’에 가까운 곳이다. 인사이트영이 운영하는 공동 작업장과 나란히 있는 ‘골목 갤러리 정精’에 들어서자 ‘마담 트리오’라 불리는 할머니 세 분이 낯선 외지인을 반갑게 맞는다. 이곳은 마을 다방이자, 갤러리 그리고 영화관이다. ‘다방 커피’부터 율무차, 유자차까지 메뉴도 다양한데 찻값은 단돈 5백 원. ‘500원’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상자에 셀프로 내면 된다. 장복자 씨는 마을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젊은 친구들이 처음에는 못마땅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다. “벽화 그린다고 덜덜 떨면서 밖에 있길래 커피를 끓여다 줬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하는데 참 고맙더라고. 그렇게 정이 들었는데, 어느 날 여기 ‘턱’ 하니 집을 짓더라고. 다방이 생기면 뭐가 달라지나 싶었는데, 커피도 있고 율무차도 있고 사람도 있고 아주 좋아. 하루에 손님 열 명은 넘게 와. 이제는 정이 들어서 모두 딸 같고, 손녀 같고 그래.”

한쪽에서는 매축지 마을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바느질 삼매에 빠져 있다. 집에서는 줄곧 게임에만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정서 교육을 위해 인사이트영의 기획자 신미영 씨가 제안한 아이디어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바느질하는 할머니도 눈에 띈다. 오랜 경륜으로 바느질 솜씨가 으뜸인 할머니들이 공동 작업장에 모여 손바닥만 한 수공예 액세서리를 만드는데, 그 완성품이 제법 근사하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부러진 의자처럼 재생하기 힘들어 보이던 매축지 마을. 거창한 이윤 창출이야 기대하지 않는다. 공동 작업을 통해 어울려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이곳은 여전히 마을 가꾸기 운동이 한창이다. 매축지 마을 아이들과 주민이 함께 그린 그림을 골목에 전시하고, 철거를 앞둔 건물을 보 전해 하나의 전시 작품으로 만드는 등 마을 곳곳에 아이디어가 돋 보이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제 매축지 마을은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폐가를 철거해 작은 텃밭도 만들 계획이다. 어른에게는 소일거리, 아이들에게는 흙과 함께하는 자연 학습이 될 터. 매축지 마을은 좀 더 나은 삶, 좀 더 정 있는 이웃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주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조금씩 발전할 것이란다. 기약 없이 재개발을 기다리던, 그래서 희망이 보이지 않던 마을도 이웃에 귀 기울이며 깊은 정을 나누면 변화가 찾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훗날 매축지 아이들이 따뜻하게 추억할 수 있는 특별한 고향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오른쪽) 매축지 마을에는 공동 화장실만 91개. 화장실 옆 벽화가 재미있다.

* 이 기사는 강상현 독자가 보낸 편지에서 시작했습니다. 마을 어르신과 젊은 청년들이 함께 어울려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 하고 있는 매축지 마을이 궁금하다는 편지를 받고 <행복>은 바로 부산으로 떠났지요. 여러분도 <행복>을 통해 만나고 싶은 기사가 있다면 온라인 독자 엽서나 이메일 jinjoo@design.co.kr로 보내주세요!

글 신진주 기자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