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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파랄렐 미디어 코리아 대표 소니아 홍 물 흐르는 대로의 삶 그러나 방향은 내가 정한다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이라는 평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절대적으로는 별로지만 시대 덕분에 인정받는 ‘평가 절상형’과 원래 뛰어난 데다 시대 운까지 더해진 ‘절대 우위형’.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할까? 행여 운명을 탓하기도 모자란 인생사, 갑자기 왜 시대까지 따져봐야 하는지 의심이 든다면, 파랄렐 미디어 코리아 대표 소니아 홍이 걸어온 시간을 함께 되짚어보자. 시대를 앞서 시대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비결일 테니.


올해 새롭게 오픈한 파랄렐 미디어 코리아 사무실은 그림 작품이 곧 인테리어 디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매력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전시 <코리안 아이>의 홍보와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사무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 그러나 이곳의 대표 소니아 홍은 그림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또 있을까 싶다고.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과 조형 오브제는 사진의 재조합을 통해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정승효 작품이다. 왼쪽에 보이는 그림은 <코리안 아이>에 선정된 작가 강석현, 이림의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라는 말을 건네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만남은 달랐다. “안녕하세요? 소니아 홍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이에요. 혹시 전에 만나뵌 적이 있던가요?”

소니아 홍,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다 보지는 못했어도 많이 들어본 이름, 소니아 홍. 현재 파랄렐 미디어 코리아 대표인 그는 국내 해외 관광과 항공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 한국에 들어온 뉴질랜드 관광청의 지사장으로 16년간 관광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2000년에는 관광 도시의 메카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을 오픈했다. 국내 여행 프로그램에서 오세아니아 지역 해외 관광 상품이 호주밖에 없을 때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던 뉴질랜드관광청. 그는 뉴질랜드 관광청을 맡은 지 3년 만에 1만 8천 명에 지나지 않던 뉴질랜드 관광객 수를 무려 13만 명으로 끌어올렸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을 시작했을 때는 관광청 오픈과 동시에 서울-라스베이거스 간 직항 노선을 뚫었다. 잘 몰라서 갈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 뉴질랜드가 제주도처럼 친근한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고, 핫 플레이스지만 항공편이 불편해서 선뜻 떠날 수 없던 라스베이거스를 단번에 갈 수 있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모두 소니아 홍 덕분. 그래서 그의 이름이 친숙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 과찬일 수 있는데,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확실히 관련 업계에서는 저에 대해 잘 알고 있죠.” 자신이 이뤄낸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그. 그러나 그저 자신이 속한 업계에서만 유명하지 않았다. 각종 미디어를 비롯해 패션과 뷰티, 드라마와 광고, 예술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니아 홍’ 그 자체로 통할 만큼 존재감이 대단하다.

(왼쪽) 블랙&화이트의 세련된 패션을 자랑하는 그이기에 사무실 역시 모노톤이 아닐까 추측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톡톡 튀는 색깔을 좋아하고, 이는 사무실 가구와 소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시쳇말로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요. 한마디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봐서 이것과 저것을 합쳐 플러스알파, 그 이상이 되겠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죠. 있는 답을 찾기보다는 통합적으로 바라본 뒤 새로운 답을 도출해내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에는 흔한 일이지만 드라마 속에 해외 도시가 등장하고, 영화 촬영지가 관광 코스가 된 것, 더 나아가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특정 해외 도시를 무대로 하는 것, 스포츠 선수의 동계 전지 훈련 장소가 오키나와를 벗어나 오세아니아 어느섬으로 옮겨간 것도 모두 소니아 홍, 그 의 창조적인 모험이 탄생시킨 문화다.


1 자개장 서랍을 데스크 트레이로 활용한 ‘감각’은 연두색과 보라색 상큼한 원색 조화를 연출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2 올해 새로 발간한 <코리안 아이> 작품 도록은 딸 화진 씨가 만들었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사무실. 1층에는 스포츠 마케팅 팀이 자리한다.


3, 4 사무실 곳곳에 자리한 미술 작품 덕분에 회의실은 마치 갤러리 같다. 컬러풀한 디자인 의자가 있는 회의실 안에는 강석현 작가의 해파리 캐릭터 작품이 걸려 있다.

 
우물 밖을 나간 개구리, 돌아와 우물을 깨다
작년에 딸을 시집보낸, 50대 엄마. 동시대 같은 연배의 ‘어머니’와 비교 해보면 지금 그가 이렇게 힘차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선택된 자로서의 행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물론 있어요. 아마 제 아버지가 요즘 말하는 기러기 아빠 1호일지 몰라요. 제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저와 남동생을 함께 ‘조기 유학’ 보냈으니까요.” 소니아 홍의 어머니는 1919년생. 결혼 후 줄곧 사업하는 아버지를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한국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셨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남매의 손을 이끌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 유학을 간다는 게 설레고 좋은 일인지, 두려운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갔어요. 그런데 그곳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엄마와 동생을 대신해 그는 영어를 습득하는 데 열을 올려야 했고, 운전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미국이라는 나라는 학생도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하는 곳’이라는 규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고 베이비시터, 서빙(정확히 말하자면 메인 서버를 도와주는 어시스턴트)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돈을 번다는 것이 신기했고, 한편으론 왠지 모를 의무감에 누구보다 성실히 살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른이 된 후에 안 사실인데, 그의 조기 유학은 현명한 어머니의 용기로 감행한 것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고비를 맞고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 미국행. 미국은 환경 자체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곳으로, 이주한다면 자식에게 강한 자생력 하나는 확실한 재산으로 물려줄 수 있겠다 싶었던 거다.

미국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소니아 홍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선택할 때 주저 없이 항공사에 지원했다. 해외로 나간다는 것, 그 설레는 많은 소녀의 감성으로 온전히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유수의 항공사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소니아 홍은 1988년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은 아마도 금의환향. 미국과 한국이 합작해 만든 항공 관련 회사인 LEP 인터내셔널의 한국 지사장으로 발령받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는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 나라 사회를 떠올려보면, 30대 초반 여성이 집과 자동차, 자녀 학비까지 지원 받는 외국 회사 지사장이 되는 것은 단연 ‘화제의 뉴스’였다.


신선미 작가의 그림 하나로 안락한 느낌을 강조한 침실.


1 침실 입구. 흔히 콘솔을 놓는 자리지만 소니아 홍은 전통 목가구를 콘솔처럼 놓았고, 그 위에는 개인의 역사가 담긴 액자를 매치했다.
2 혼수 가구였던 자개농. 지금은 딸 방에 귀한 장식 요소로 존재한다.


3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커스텀 주얼리는 손녀까지 사용하는 빈티지가 되었고, 화진 씨는 주얼리를 직접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
4 엄마의 액세서리 하나도 꼼꼼히 체크하는 딸의 섬세한 손길이 따스함을 자아낸다.


위기는 변화의 또 다른 이름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유럽 배낭여행이 대학 시절의 낭만이요, 어학연수가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시절을 지나온 사람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해외여행의 기회도 많은 항공ㆍ관광 분야는 당시 최고 동경의 대상이었음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그 무언가가 더 큰 부가가치를 내세우며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외환 위기가 오면서 관광청 업무가 난항을 겪었습니다. 관광 자체도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업무를 확장할 수 있었는데도 환율을 극복하기가 역부족이었죠.” 그렇다고 매사 적극적인 데다 적응력이 뛰어난 소니아 홍의 성격상 포기는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불안한 시기, 누구에게는 불만의 시대. 1999년 그는 ITN(International Tourism Network)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오히려 일을 확장했다. 뉴질랜드 관광청 업무를 병행하면서 그동안 쌓은 다양한 경험을 통합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자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이때 라스베이거스ㆍ샌프란시스코 관광청을 오픈했고 국내 처음 론칭한 핀에어의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했다. 특히 핀란드 항공사인 핀에어는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노선일 뿐 아니라, 북유럽의 수도 헬싱키에 머무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도 늦게 소개된 것이 안타까웠던 터. 그만큼 열심히 홍보한 결과, 이제 우리에게 유럽의 관문은 한층 넓어졌다.

(왼쪽) 딸 화진 씨는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다. 오히려 딸이 엄마를 더 챙길 만큼 속 깊은 화진 씨는 회사 업무도 도와주고, 엄마와 패션 스타일을 공유할 정도.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본 것 같아요. 시도한 모든 것이 관광청의 홍보ㆍ마케팅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을 잘하는 후배도 늘어났죠.” 2007년에 찾아온 위기는 환율도, 경제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쏟아냈으니. 그리고 지난 13년간의 질 주는 그에게 또 다른 자아를 찾는 휴식 같은 기회를 선사했다. 스스로 말하길, “다른건 몰라도 일복 하나는 최고”라는 그는 전 경련 유관 기업 지속 가능한 발전기업협의회 (Korea Business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에서 우리나라 기업 총수들에게 글로벌 기업의 녹색 경영 사례를 소개하고, 해외에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가능성을 홍보하는 중책을 담당했다.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노이로제’까지 걸려가며 ‘열공’ 모드로 일한 2년여의 시간. 그래도 이 모든 고생이 보람 있는 이유는 그가 하는 일 모두 ‘적재적소, 적기’에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기업협의회의 일을 맡은 지 1년 후인 2008년, 정부는 녹색 성장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2012년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 단체인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의 총회를 오는 9월 제주도에서 개최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 그 접점을 만나다
소니아 홍과는 작년 12월, 한 지인으로부터 파랄렐 미디어 코리아 사무실 오픈 소식을 전해 듣고 만남이 이뤄졌다. 파랄렐 미디어 그룹은 골프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 중계권과 스폰서,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세계적 회사로, 한국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골프 대회인 ‘밸런타인 클래식’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마케팅을 업무를 진행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회사는 최근 세계에 ‘미술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코리안 아이Korean eye>의 컨설팅과 관리 운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파랄렐 미디어 그룹의 회장인 데이비드 시클라리티라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코리안 아이>는 2008년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이래 매해 높은 호응을 얻었고, 작년에는 관람객이 8만 5천 명을 넘을 만큼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흥미진진한 문화 행사를 홍보ㆍ마케팅하는 일에 소니아 홍, 그가 서 있다. “전시가 회를 거듭할수록 호응이 높아져 <코리안 아이>는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뉴욕에서 전시 중인데, 며칠 전 현지에 다녀온 직원 말에 따르면 반응이 좋다고 해요. 2012년 전시는 런던 올림픽이 있는 기간으로, 데미언 허스트를 발굴한 사치 갤러리 관장이 큐레이팅을 맡아 그 설렘이 한층 배가되고 있습니다.”

용산구 한남동 한적한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소니아 홍의 사무실은 아담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젊은 감각, 합리적인 생각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장식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재료로 반듯한 ‘바탕’을 만드는 데 집중한 대신, <코리안 아이> 선정 작가의 작품이 대미를 장식한 곳. 소니아 홍은 2012년 1월, 여기서 예술과 스포츠라는 시대의 핫 키워드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늘 그랬듯 시대를 앞서간 그이기에 가능한 일. 누가 봐도 그는 또 한 번 몸에 잘맞는 옷을 차려입었고 그 옷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소화해내리라 부푼 희망을 품고 있는 요즘이다.

(왼쪽) 그림은 자신의 마음에 딱 와 닿는 것을 컬렉션하는데, 거실에 있는 작품 중 여인의 모습이 담긴 동양화는 자신과 닮아서 더 정감이 간다고. 그림은 화가 신선미 씨 작품.


1 미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 벼룩시장 나들이가 취미이던 그는 희귀한 세라믹 작품을 구입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 나전칠기 문갑은 지금 향수를 컬렉션하는 장식장으로 활용한다.


알고 보면 우연도 노력의 결과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질만큼 운이 좋았어요. 일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 또 다른 일이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흔히 21세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두고 멀티플레이어가 살아남는 세상이라 말한다. 그리고 실제 이런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 주인공을 만나고 나니 살짝 마음이 불안해졌다. 유전자가 다른 것일까, 운명이 다른 인종일까. 하지만 소니아 홍의 집에 갔을 때 이런 생각은 모두 부질없었다. 강아지 ‘스노’와 함께 사는 아파트, 단출한 식구에게 좀 넓지 않을까 싶은 그곳은 이미 그의 삶과 취향이 담긴 그릇으로 한 치의 모자람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는 회화 작품은 모두 다 한국 작가의 그림으로 거실과 복도, 침실과 서재 곳곳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머니가 혼수로 마련해준 그 옛날 진짜배기 통영 자개농은 딸아이 방과 자신의 침실에 잘 짜인 각본처럼 놓여 있다.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즐긴다는 그의 식탁은 무려 열 명이 앉기에 충분하거니와 그 식탁은 한옥 고재로 만들어 묵직하면서도 넉넉한 모습으로 색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해외와 유관한 일을 하다 보니 그들이 지니지 못한 한국 전통미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미술 작품 역시 해외 작가보다는 우리나라 예술가 작품에 ‘본능적’으로 끌렸다고 할까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했던가. 15년 된 가구와 물건이 다반사인 그의 보금 자리는 이미 소니아 홍의 오늘을 정확하게 예언한 듯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주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자신 있게 대변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왼쪽) 주말이면 집에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소니아 홍. 애견 스노가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이다.

“다양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건 자신감,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것을 신경 쓰다 보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거든요. 자신감이라는 건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현재 회사의 대표로 발탁된 때는 2009년,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맡은 한국방문의 해 사무국장에 재직할 당시였다. 한국방문의 해 행사 스폰서이던 파랄렐 미디어 그룹 회장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서 문화 마케터로서의 가능성을 점쳤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자리는 아니지만, 아니 그런 자리는 바라지도 않고 지금의 자리도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이 새로운 출발선에서 마음이 설레고 에너지가 샘솟는 이유는 시대의 중심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질의 소유가 아닌 존재 가치 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시대. 그래서 소니아 홍의 인생은 앞으로가 더 궁금한 지표가 된다.

글 이정민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