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을 돌며 법회를 해보니 이 땅에는 아파하는 젊은이가 참 많다는 걸 알았다고, 트위터에 남의 말 잘 들어 주는 승려가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그 선한 미소를 내밀었다.
명동 거리에서 스님을 만났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지만 거리는 상인과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상점과 상
점, 좌판과 좌판 사이 젊은 스님이 합장한 채 서 있다. 현란한 문명의 빛깔과 잿빛 승복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흐르는 인파 속에 멈춰 선 무채색의 승복은 한 채의 암자 같다. 스님이 왔다. 시끄러운 저잣거리, 사람들이 일상에 발목이 걸려 산사로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스님이 왔다. 빵을 굽던 사람은 오븐에 걸려, 차를 팔던 사람은 찻잔에 걸려, 술을 팔던 사람은 술 내음 지울 새 없어, 밤을 팔던 여인은 분 내음 부끄러워 벼르고 벼르던 마음속 산사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스님은 산중 고찰을 통째로 떠메고 왔다는 소문이다. 쇠가죽처럼 질긴 팔만 법문을 나긋나긋한 봄나물로 무쳐 들고 왔다는 소문도 돈다. 스님이 저잣거리로 나온 까닭은 무엇인가?
혜민스님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화감독을 꿈꾸며 미국 버클리 대학에 진학했으나,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풀기 위해 종교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하버드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2000년 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2007년 햄프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한국인 승려 최초의 미국 대학교수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불교계 차세대 리더’로 뽑힌 바 있고, 9만여 명의 팔로워가 있는 인기 트위터리안이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귀국해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머물고 있다. 거리 사진 촬영을 마치고, <행복이가득한집> 스튜디오에서 마주 앉았다. 스님의 이목구비가 시원하다. 목소리는 사람을 당기는 인력을 지녔다. 때론 우렁우렁하고, 때론 조곤조곤하다. “스님, 새해부터 ‘소통’이라는 화두가 유행입니다.” “사회적으로 소통 안 되니까 더 그렇겠죠?” 단숨에 나오는 대답에서 산중보다 시장을 응시해온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시인은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소통’의 바탕이 ‘불통’인 것은 괴로운 일이다. 최근 들어 매스컴마다 ‘만사 소통’ ‘국민 소통’을 외쳐대고 있다. 때로 슬로건과 다짐은 그 사회나 사람의 결핍을 드러낸다. ‘공정’을 부르짖는 사회는 대개 공정하지 못하며, ‘착하게 살자’고 새긴 조폭의 팔뚝 문신을 보면 그가 착하게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양극화할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요. 부자와 빈자,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알려고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좋은 구석이 있다는 걸 볼 수 있는데 말이죠.” 그이가 트위터를 하는 것도 소통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트위터하는 스님’이라 좀 낯설었지만 문득 생각했다. 아, 저잣거리의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내 손안의 절’을 갖게 되었구나. 소셜 미디어는 산중 고찰을 시장으로 떠메고 온 느낌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사찰의 포교와 소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문을 들으러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을 내달려 산문에 들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언제나 스님을 만나고, 법문을 들을 수 있다. “처음 트위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미국에 있을 때 수업을 마치고 텅 빈 연구실에 돌아오면 고향 생각이 나곤 했어요. 우리나라 뉴스를 검색하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이외수 선생님이 트위터를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말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신변잡기를 올리니 사람들의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아침을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성찰이 담긴 이야기를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시 사람들에게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스님, 고마워요. 오늘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스님 덕분에 많이 안정을 찾았어요.’ 또 ‘스님 말씀은 추운 날 목도리와 같아요.’ 제가 올린 글에 이런 답글들이 올라오는 거예요.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해서 더욱 열심히 글을 올렸습니다.한번은 어떤 학생이 글을 올렸어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도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라는 겁니다. 저는 일단 그 학생 탓만은 아니라고 봤어요. 대개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꿈을 대신 꾸니까요.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니 전공도 안 맞고, 경력을 쌓는다고 자격증까지 땄지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 아는 학생이 드뭅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늦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경험, 독서, 연애 이 세 가지를 열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행동에 옮기세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될 겁니다. 파이팅!”
스님이 연애를 이야기하는 것이 좀 낯설다. 그러나 그는 아주 열심히 연애를 하라고 조언한다. 연애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바닥을 보여주는 것도 없으며,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선생님은 없다고 단언한다. 하긴 저잣거리사람들은 눈만 뜨면 사랑과 이별 타령인데 연애도 모른다면 인생 상담하는 스님이 어찌 젊은이의 고충을 안다할 수 있겠는가? 스님은 최근 펴낸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도 자신의 풋사랑에 대해 털어놓았다. 자기를 드러낼수록 가까워지는 게 소통의 기본 원칙인즉, 젊은이들이 그이를 좋아하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종교가 달라서 고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애인 사이에서 ‘사랑한다면 종교도 바꿔달라’ 요구하기도 하고, 시부모 눈치 보며 종교 생활하느라 고생하는 며느리도 있습니다.” 그이의 답은? “내 믿음이나 사상의 순수함보다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더 바라봅시다. 사상이나 믿음보다 중요한, 소중한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인간을 위해 고안된 믿음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가브리엘 마르셀은 ‘소유의 역전 현상’이라 명명한 적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을 잊는가? 물론 비방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다. “산에서 도나 닦으시죠”라거나 “너를 꼭 집사로 만들거야”라고 멘션을 날리는 사람도 있다. “트위터 글에 스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요.” “대개 스님 하면 한자 쓰면서 경전 말씀 전하는 분을 떠올리기 쉽지요. 내 이야기는 쉬워요.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부 부처님 말씀에서 나온 겁니다. 부처님 앞에서는 제한된 이야기만 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종교는 생활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승려도 알고 보면 사람이거든요.” 승려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승려도 알고 보면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람 내음 나는 스님, 삼촌 같고 형 같은 스님, 어떤 고민이라도 들어줄 것 같은 스님이라면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리는 법력 높은 스님보다 솔깃하지 않은가? 이제 세상은 ‘사자후’보다 ‘재잘거림’을 더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트위터twitter’의 인기가 그 물증이다. 사자는 거대한 코끼리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하지만, 제 머리에 붙은 진드기는 잡을 수 없다. 사자는 제 머리에 올라앉은 노랑부리할미새가 진드기를 잡아먹으며 부르는 노래에 잠을 청한다.
“쓰나미가 무서운 것은 바닷물이 아닌 바닷물에 쓸려오는 물건들 때문입니다. 회오리바람 또한 바람 때문에
죽는 일보다 바람에 쓸려온 물건들에 치여서 다치고 죽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그 상황들에 대해 일으킨 어지러운 상념들 때문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
“트위터 법문을 하면서 내가 스님이라는 의식은 하지 않나요?” “시인은 시인이라 의식하고 시를 쓰나요?” 한 방 먹었다. ‘스님 앞에 법문하기’지만 한 번 더 묻는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말처럼 스님은 위로 자신의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대중을 가르치기를 서원한 분들인데요, 우중愚衆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으로서 자의식이 있지 않나 궁금합니다.” 그러자 스님은 엄지와 검지로 ‘딱’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말한다. “오케이! 가르쳐 드릴게요.” 생기 있는 목소리가 짐짓 나직해진다. “수행이 깊어지면요, 내가 남들보다 높은 게 아니라, 눈높이가 똑같아져요. 원래 똑같았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내가 불성이 있는 부처라면 남도 똑같이 불성이 있는 부처로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거들먹거리면서 사람들한테 ‘배워라!’ 이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친김에 버릇없기로 작정했다. “스님은 대중 하나하나마다 눈높이를 맞출 정도로 수행이 되셨다고 생각합니까?”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답한다. “저는 갈 길이 앞으로 머~얼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아직 온전하게 깨닫지도 못한 스님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내가 혼자 깨달으면 뭘 하나. 남들은 저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소통에 힘쓰고 있어요. 수행이 높으신 성직자 중에서도 일반 신도가 지닌 아픔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혼자 살고, 떨어져 있으니까 그래요.” 확연히 알겠다. 저이가 저잣거리로 나온 이유를. 저이는 깨달음의 자리自利와 교화의 이타利他를 동시에 밀고 가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닦이느냐 하면요, 관계에서 닦여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서 닦이는 게 아니에요. 산에서 수행해도 똑같습니다. 스님들끼리의 관계에서 아프고 닦입니다. 다투고, 견책받고, 하심하면서 닦이는 겁니다. 수행을 산에서 해야 한다는 것은 조선시대 산중 불교의 관념입니다. 관계에서 닦이므로 시장 바닥에서도 나를 모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스승입니다.” 선禪 가운데 최고선으로 저잣거리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요중선鬧中禪이라고 하던가.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한국 불교가 대중이 뭘 원하는가를 알아야 할 것 같
아요. 그냥 부처님 좋은 말씀이 있으니까 와서 배워라가 아니라, 지금 그 사람들이 무엇을 아파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부처님 법이 들어오지 않아요. 먹고사는 데 시달리지 않고, 아이들 때문에 고생하지 않게 마음을 안정시켜주면 ‘왜 사는가?’라는 궁극적 물음을 물을 수 있어요. 저는 스님들이 그리고 재가신도(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자)의 리더 격 되는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셔서 그분들의 아픈 부분을 헤아려줬으면 해요. 가끔은 과감하게 틀을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포교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어떤 포교 방식이 있을까요?” “제가 꿈꾸는 게 있어요. 올여름 음악으로 포교할 거예요. 그저 피아노 치고 찬불가 부르는 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자기를 더욱 사랑하고, 자유 명상할 수 있는 ‘마음 치유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사실 ‘마음 치유 콘서트’는 스님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불교학생회 법회를 이끌면서 이미 30회가량이나 진행해왔단다. “콘서트에는 다양한 사람이 옵니다. 심지어 목사, 전도사, 신부님도 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모여서 서로 마음을 열고 각자의 불안과 상처를 털어놓습니다. ‘서운함’ ‘질투’ ‘사랑’ ‘관계’ 등의 주제를 가지고 제가 진행을 합니다. 나이는 들었는데 결혼 못 하신 분들, 결혼 7~8년 차의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문제를 풀어주지 못해도 그 사람들은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며 고마워해요.” 아하, 그렇구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나는 저이가 트위터에 올리는 글들의 구체성에 의아했던 것이다. 저이의 트위터 글들은 손이 쓴 것이 아니라 귀로 쓴 것이다. 새로 펴낸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그동안 트위터에 올린 글과 신문 등에 게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저잣거리의 수많은 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얻은 상처와 의문과 고민에 대한 따뜻한 위안과 조언이 삽화와 함께 담겨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아주 즐겁다는 스님은 햄프셔 대학에서 <종교학 개론> <선불교 세미나> <불교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숙식을 하고, 주말에는 뉴욕 불광사에서 머문다. 이제 안식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 새 학기를 맞아야 할때다. “여름방학 때는 다시 귀국해 ‘마음 치유 콘서트’를 열 겁니다. 한국에 와 있으면서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미국 대학교에서 1년 동안 가르치는 학생 수가 1백50명 남짓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굳이 미국에만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저는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니 그걸 계속할 겁니다. 동시대 이웃들의 면면을 가르쳐준 한국의 트위터 친구분들,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스승입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약속이 늦었다는 스님은 택시를 타고 총총 사라졌다. 나는 소셜 미디어의 모든 순기능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곳 역시 북적이는 시장통이다. 정치인, 기업인, 사기꾼, 장사꾼, 학생과 건달, 우리 주변의 모두가 드나드는 떠들썩한 SNS 터미널 다방이다. 이제 그 중심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곁으로, 스님이 왔다!’
- [귀 기울여 들어보니] 혜민스님 스님이 시장으로 온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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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9만 명의 트위터 스타, 하버드대 재학 중 출가해 한국 승려 최초로 미국 대학교수가 된 혜민스님. ‘혼자 도 닦아서 뭘 하나. 함께 행복해야지’라는 생각을 봇짐처럼 멘 채 세상 속으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의 글과 말에서 우리는 인생을, 사랑을, 행복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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