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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의 이구동성] 깡패와 도둑

중요한 외부 미팅을 하고 있는데 ‘딩동’ 하고 문자메시지 음이 울린다. “통화 가능해요?” 아내가 보낸 문자다. 사람에겐 직감이라는 게 있어 수화기에서 전해오는 상대의 첫 음성만 듣고도 그 사람의 기분과 이후 통화 내용의 명암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문자도 마찬가지다. 생명 없는 글자를 통해서도 보낸 이의 상황과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잠시 밖으로 나와 전화하니 아니다 다를까, “여보 어떻게 해. 아들이 사고 쳤어.”

열세 살 사내아이는 네 살 위 제 누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소년기를 보내고 있어 요즘에는 하루라도 아내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날이 없다. 그 연장선 위에서 아내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 사고가 또 터진 모양이다. 차분하게 말해보라고 했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이 교실에서 다른 아이에게 해코지를 했고, 그 해코지도 그냥 한 것이 아니라 자로 친구의 팔과 배를 찔러서 아이의 부모님이 노발대발한단다. 혼자서 아이 부모님을 만날 수 없으니 지금 빨리 집에 와달라는 것이 아내의 용건이다. 그러고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며 탄식한다. “나는 진짜 더 이상 감당이 안 돼. 이제는 흉기까지 쓰면서 말썽을 피우니 이렇게 가다가는 깡패가 될 것 같아. 문제가 커지면 학교를 옮겨야 하고, 새로운 학교에 가면 문제아로 또 낙인 찍히고,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점점 엇나갈 것이고, 나는 학부모들 따가운 시선을 계속 받아야 하고. 난 정말 자신 없어.”

(왼쪽) ‘유쾌한 산책’, 청동에 아크릴 채색, 66.5×87×30cm, 2011

일단 벌어진 일이니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가자고 아내를 달랜 후에, 우선 피해를 입은 아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상태를 알아보고 직접 가서 아이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주면 내가 가겠다고 했더니 두어 시간 후에 문자를 보내왔다. 잘 해결됐으니 집에 올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일찍 퇴근해보니 낮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모자母子는 정겹고, 집안은 화목하다. 녀석을 데리고 다친 아이의 집에 갔더니 상처도 거의 없고, 그 아이의 엄마는 사내아이들끼리 토닥거리다 생긴 일이라며 화해를 시키더란다. 오히려 처음에 자기 아이의 전화만 받고 너무 흥분해 선생님에게 항의한 경솔함을 사과까지 하더란다.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며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녀석을 불러내 따끔하게 주의를 주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아내는 여전히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아이에게 너무 관대한 게 아니냐며 서운해했다. 그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도난 사건(?)에 대한 내 반응의 불만이기도 했다. 퇴근하면 거실에 놔두는 지갑에서 1만 원짜리가 한장씩 자꾸 사라져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들이 아빠 지갑에 손대는 것을 아내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다. 아내는 그날 밤 자식을 도둑놈으로 키우게 되는 것이 아니냐며 탄식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내놈들이란 그렇게 크는 거야. 지금은 지갑에 돈이 없어지고, 조금 더 지나면 아빠의 담배가 하나씩 사라지고, 좀 더 지나면 군대 간다고 아이가 없어지다가, 이후는 제 여자 만나서 부모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들이라는 짐승들이지.”

같은 성性을 가지고 있어서 아들의 행동을 마치 과거의 내 모습으로 바라보는 아빠와, 열 달을 품고 있다 낳은 엄마의 모성은 이렇게 아이를 가운데 두고 수시로 부딪친다. “한 달 전 바라본 집 앞의 나무가 서른 날 동안 바람과 햇볕과 비를 맞으며 또 다른 나무로 자랐을 때 한 달 전 나무와 지금의 나무가 어찌 같을 수 있겠냐”는 비유를 들어가며 아이도 성장하는 매순간을 다른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나의 이성적 분석도 엄마의 본능적 아이 사랑 앞에서는 남의 자식 말하듯 한다는 핀잔으로만 돌아올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서운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듯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컸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이의 문제 앞에서 ‘지금 여기’의 마음으로만 다가가면 좋겠어. 아이가 싸움을 했다면 아이의 지금 정서와 뒤처리에만 집중합시다. 깡패가 되고 도둑이 되고 전학을 가고 외톨이가 되고 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 만든 허구의 미래 소설이잖소. 마음이 만든 미래에 미리 가서 괴로워해봐야 느는 것은 주름살과 스트레스 아니겠소.”

곰곰이 듣고 있던 아내도, 맞는 말인지 알지만 참 힘들다면서 애써보겠다고 했다. 아내가 인정한 대로 그것이 얼마나 힘든 마음 챙김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렇게 말한 나 자신도 머쓱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와 내가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아이 때문에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는 괴로움의 원인은, 기대에서 벗어나는 아이의 미래를 부모 마음대로 상상하고 확신하며 재단하는 자발적 전지전능함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 까? 그 예언이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이 땅이 온통 깡패와 도둑의 소굴이 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문방구와 만화 가게에서 하나씩 슬쩍해 가지고 온 어린 아들을 앞에 두고 우리의 어머니들도 이런 말씀을 하셨고, 그것은 분명 기우였던 것이다. “아이고, 내가 제명에 못 산다. 내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웬수’를 낳은 거야. 깡패와 도둑 새끼를 낳은 거야.”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