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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골목 산책] 그래픽 디자이너 이나미 씨와 함께하는 혜화동 문화 예술 거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 뒷골목은 연극, 뮤지컬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공간이다. 오랜 시간 예술을 가까이하며 즐거움을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모인 곳, 예술가의 데뷔 무대가 되는 곳, 젊은이들의 펄떡거리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혜화동이다. 혜화동 골목 산책의 무대가 이제 시작된다.

“오늘은 혜화동 골목을 거닐어볼까 합니다. 혜화동은 오랜 시간 예술의 거리로 잘 알려졌습니다. 수많은 소극장 무대 위에 오르는 연극과 뮤지컬은 또 얼마나 낭만이 깃들어 있는지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배우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가까운 곳에서 감상하는 맛은 남다릅니다. 그런데 혜화동이 젊은이들만의 거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은 이들이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는 특별한 장소가 많아요. ‘최가철물점’을 시작으로 명실공히 ‘철물쟁이’로 통하는 최홍규 씨의 ‘쇳대박물관’, 독일 아트 전문 출판사 타셴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북 카페까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 아이콘이야말로 유행에 휩쓸리는 여타 동네와는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지요. 혜화동이 변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그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콧대 높은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곳들을 꼭 눈여겨보길 바랍니다.”_이나미(그래픽 디자이너)

1 낙산공원에 오르면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2,3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은 볼 거리가 많다. 이화동 벽화 마을 모습.


4 혜화동 거리 곳곳에서 젊은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5 CGV 대학로 입구에 서 있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모형.


학전소극장
보고 또 보고 싶은 뮤지컬 <빨래>
무대 위로 2008년 서울 변두리에 있는 한 작은 동네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의 풍경은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골목길 끝에는 여전히 반지하 방에 세를 살며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는 우리 이웃들의 외롭고 지친 삶이 펼쳐진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불법체류자 몽골인 솔롱고와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살이 5년 차인 서점 직원 나영, 40대 장애인 딸을 방 안에 가두고 사는 주인집 할머니와 동대문에서 속옷 장사를 하는 희정 엄마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빨래’와 함께 그려진다.

이나미(이하 ‘이’) 개인적으로 뮤지컬 <빨래>를 매우 재미있게 봤어요. 처음 보고 감동받아 회사 직원들과 함께 한 번 더 공연을 봤지요.
이지호(극단 수박 대표, 이하 ‘수’) 감사합니다. 무대 위 이야기가 현실의 우리 삶과 많이 다르지 않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특히 주인 할머니가 빨래를 하면서 “다 괜찮다”며 노래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음악도 좋지만 특히 노랫말이 아름다웠어요.
“슬플 땐 빨래를 해. 빨래가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라는 가사의 ‘슬플 땐 빨래를 해’라는 곡을 관객 역시 많이 좋아하셨어요. 여자 주인공인 나영이가 빨래를 널고 난 뒤 “난 지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는 부분, 1막 마지막 ‘비 오는 날이면’이라는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 주제가 담겨 있죠.
공연을 보면 ‘빨래’를 하는 행위가 참 특별한 것 같아요. 거룩한 정화랄까? 감정을 정화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잖아요. 빨래라는 물리적 행위와 감정의 정화를 잘 연결한 것 같아요.
작가이자 연출자인 추민주 씨가 그런 부분을 잘 잡아냈다고 생각해요.
대학로 공연 환경은 여전히 어려운 편이죠?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보다 더 열악했어요.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왜 꼭 공연하는 사람들은 힘든 환경에서 일해야 할까 의구심이 들었죠. 이렇게 된 이유는 종사자들의 마인드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사무실을 옮기며 메시지를 주고 싶어 무리해서 인테리어를 했어요. 좋은 환경에서 공연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이번에 <빨래> 공연을 일본에 수출한다고 하던데 정말 축하드려요.
2012년 2월에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을 진행해요. 대형 창작 뮤지컬이 일본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소극장 창작 뮤지컬 가운데에서는 <빨래>가 최초라고 하더군요. 일본에도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올라와 고단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8 문의 02-763-8233

1 극장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배우들의 사진.


2 극단 ‘수박’의 대표이자 <빨래>의 연출자 이지호 씨와 디자이너 이나미 씨.
3 세모 모양의 외관이 독특한 학전소극장.

4 2008년 서울 달동네를 표현한 <빨래>의 무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쇳대박물관 예술의 옷을 입은 철을 만나다

1 붉게 녹슨 강철 외관이 독특한 쇳대박물관 외부 모습. 
2 철물 디자이너 1세대인 최홍규 대표와 함께한 이나미 씨. 


3
건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디자인한 건물 구조가 독특하다. 
4 아프리카 조각상에 장식한 자물쇠들.
(아래)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열쇠들.

벌겋게 녹슨 강판이 외벽 전체를 덮은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이 건물은 대학로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로에서 박물관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쇳대’를 소재로 한 박물관이라는 점은 더욱 특별하다. 쇳대는 열쇠를 뜻하는 방언. 쇳대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옛 자물쇠와 세계 각국의 독특한 자물쇠를 전시하는 곳이다. 쇳대박물관의 터줏대감 최홍규 대표는 ‘철물 디자이너’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철물점’ 하면 못과 망치 정도만을 잔뜩 쌓아놓은 구멍가게를 떠올리던 시절인 1989년, 예술성을 가미한 철물점을 강남에 떡하니 오픈해 놀라움을 안겨주더니 2003년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오픈했다. 왜 하필 ‘쇳대’박물관이냐고 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남들이 다 수집하는것은 하기 싫었다. 남들이 수집하지 않는 것을 찾다 보니 자물쇠였다.”

이나미(이하 ‘이’) 처음 철을 다룬 계기가 궁금해요.
최홍규(이하 ‘최’) 화이트칼라로 일할 줄 알았지, 철물쟁이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철물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잘 보이려고 열심히 하다보니 쇠에 미치게 되었어요. 지금도 쇠만 보면 환장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은 쇳대가 얼마큼이에요?
4천 점 정도 돼요. 철물장이니까 철로 만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지만 기능적인 것을 찾다 보니 자물쇠가 제격이라 여겼죠. 더 중요한 건 경제적인 부분이었어요. 자물쇠는 저렴하니 수집하기가 쉬웠죠.
열쇠에는 의미도 담겨 있지요?
‘자물쇠를 푼다, 키를 연다’라고 흔히 이야기하잖아요? 소통의 의미가 있지요. 개인적으로 철쟁이로서 철의 물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자물쇠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을 텐데요.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한중수교 전에 10만 원만 주면 큰 자루로 한가득 자물쇠를 구할 수 있었어요. 자물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니까요. 3천 점 정도 모으고부터는 박물관을 만든다고 광고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지요. 10년 정도 하다 보니 어느새 ‘자물쇠 재벌’이 되어 있더라고요.
대학로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잖아요. 유흥거리가 많은 곳에 이렇게 박물관이 있다는 건 동네 분위기를 바꿔놓는 의미 있는 일 같아요.
처음에 자리 잡을 땐 이곳이 대학로에서도 변방이었어요. 사람들이 외관에 녹슨 것을 보고 “이 집 부도난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했죠. 얼마 전에는 밖에서 나무를 심는데 한 아주머니가 외관 벽을 새로 갈아야겠다고 하기에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허허.
건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건축가 승효상 씨가 쇳대박물관을 설계했지요?
사립 박물관 최초로 유물에 맞춰 지은 박물관이에요. 저나 승효상 씨 모두 그런 부분에 애착이 상당해요. 전시관 마감재는 모두 쇠를 사용했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승효상 씨와 함께할 예정이에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87-8 문의 02-766-6494


타셴 창의적 상상력이 만든 아트 북 세상

1 독일 아트 전문 출판사 타셴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타셴 북카페. 타셴은 독일어로 ‘찻잔’이라는 뜻이다. 
2 많은 사랑을 받은 타셴의 안도 다다오 건축 사진집.


3 2층은 클래식이 흐르는 레스토랑으로 운영한다.
4 이상만 대표가 모은 진귀한 디지털 그림을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유명 아트 서적이 가득하다. 서점인가 싶어 들어서면 한쪽에 마련한 카페 자리가 눈에 띈다. 2층으로 올라가니 ‘클래식 1812’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여느 레스토랑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부터 클래식 DJ 정만섭 씨가 사용하던 스피커, 실린더 축음기, 이상만 대표가 10년 이상 모아온 LP 등 진귀한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작은 음악 감상실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매주 목ㆍ금ㆍ토요일에는 작은 음악회도 연다. 3층은 타셴Taschen(독일 쾰른의 세계적인 아트 북 출판사) 책 전시장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의 예술 서적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고, 책을 보다 배가 고프면 식사도 해결할 수 있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발걸음하는 곳이다.

1층 북카페에서는 차를 마시며 타셴의 책을 마음껏 구경한다.

이나미(이하 ‘이’) 어떻게 타셴 서적을 국내에 들여오게 되었어요?
이상만(타셴 대표, 이하 ‘타’) 외국에 나가 보니 유명 박물관에만 가면 타셴 책이 놓여 있더라고요. 욕심이 나서 국내에 들여와야겠다 결심했어요. 8년 전 메일을 1백 번 정도 보내며 제가 한국에 타셴을 들여오고 싶다는 연락을 했어요. 저희 출판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컴퓨터 책을 독점으로 만들던 시절이라 신용 문제는 빌 게이츠한테 물어보라 그랬지요.
일반 사람에게는 커피를 마시며 음악과 미술을 모두 접할 수 있다는 환경이 매력적이었을 것 같아요. 진한 오크색 가구가 화려한 화집과 어우러져 유럽의 서가에 온 듯한 느낌이에요.
8년 전 카페를 처음 오픈할 때는 하루에 3백 명씩 올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어요. 대기업 그룹 회장들도 직접 방문해 사진 찍고 타셴의 책들을 감상하고 갔지요.
타셴의 가장 대표적인 책이라면 어떤 걸까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사진집을 꼽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사인회도 열어서 특히 더 인기가 많았어요. 20세기에 출간한 책 중에서 가장 크고 비싼 책 헬무트 뉴턴의 도 있죠.
레스토랑 이름에 들어 있는 ‘1812’는 어떤 의미예요?
차이콥스키가 1812년 보로디노 전투에서 러시아가 나폴레옹에게 거둔 승리를 오케스트라 곡으로 만들었는데 그 제목에서 따왔어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81번지 문의 02-3673-4115

 

혜화동 골목길, 그 밖의 숨은 명소들
도심 속 공원인 마로니에공원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마로니에공원은 1975년 서울대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옮겨가면서 공원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즉흥 비보잉 공연이나 무명 가수와 코미디언들의 데뷔 무대로 자주 애용하기도 합니다. 혜화동의 가장 전망 좋은 곳이라면 낙산공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낙산공원으로 가다보면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1박 2일>에 등장해 많은 인기를 끈 둘레길입니다. 숨은 맛집도 많습니다. 학전소극장 근처에 있는 고베 겐뻬이(02-765-6808)는 정통 일본식 가정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학림다방(02-742-2877)은 5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아날로그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02-3676-1130)는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건강 메뉴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좋습니다.

디자이너 이나미 씨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재학 중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1995년 ‘스튜디오 바프’를 설립하고 북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디자인한 책으로는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이해인 수녀의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등이 있다.
진행 신정희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