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돈, 여자는 가사와 양육’이라는 부부간 역할 분담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인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부부의 이 패러다임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 시대에서 이뤄진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핵가족 화가 만들어낸 시대적 유산일 뿐이다. 그전까지 부부는 공동 작업자와 공동 양육자였다.
이제 인류는 산업화를 끝내고 정보화 사회로 들어섰다. 정보화 사회는 직장 문화도 바꿔놓았다. 재택근무 같은 다양 한 형태의 근무가 가능해졌고, 여성의 취업과 승진도 이제는 특이할 것 없다. 근면성보다는 창조성과 효율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가족 형태도,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과 여성상, 인재상도 달라진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남자는 돈, 여자는 가사와 양육’이라는 패러다임까지 바꾸고 있다. 점차 많은 엄마가 직장을 다니고, 많은 아빠가 자녀 양육에 참여한다.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나 대낮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는 아빠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아빠들은 “아이에게는 아빠가 아닌 엄마가 필요해”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준비된 양육자가 아니겠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빠 양육의 엄청난 효과를 입증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빠가 엄마 못지않게 심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준비된 양육자이며,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마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심지어 어떤 영역에서는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자녀 양육에 부적합하거나 무능력하다고 생각해온 아빠를 어떻게 돌아오게 할까? 이 과정에서 엄마(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 먼저 남편으로 하여금 양육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설득이 필요하다. 남자들은 감정적 호소보다는 객관적 자료에 설득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빠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을 선물하거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했다가 보여주면 좋다.
이때 남편에게 “시간을 내라” “아이의 공부 좀 봐줘라” “아이와 놀아줘야 하지 않느냐”고 타박하면서 따지면 안 된다.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많은 심리학자는 양육의 양(시간)보다 질(좋은 관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짧더라도 함께 즐거워야 한다고 한다. 만약 아내의 타박이나 부부 싸움이 싫어서 억지로 시간을 보내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만 낳는다.
아빠가 자연스럽게 양육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주자. 예를 들어 아이와 무언가를 결정하려 할 때 엄마는 “아빠와 함께 하자”면서 아이의 마음에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아빠가 들어온 후에 함께 결정하자. 이 외에도 아빠가 아이에 게 직접 용돈이나 선물을 주도록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아빠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면 나중에는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물론 아빠도 자녀 양육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아빠들은 야근에 특 근까지 너무 바쁜 삶을 산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잠을 보충하기 일쑤다. 물론 잠도,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빠로서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돈만 벌어다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면 아이에게 함께하지 못해 속상한 마음을 전하자.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아빠의 두둑한 월급봉투나 충분한 놀이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아빠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재미있는 놀이였는가? 아니다. 아이도 아빠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아빠와 ‘함께하는 것’뿐이다. 재미있지 않아도 된다. 끝내줄 필요도 없다. 적어도 아이가 커서 아빠를 떠올렸을 때 ‘재미’를 기준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는 아이에게 아빠는 세상을 향한 창窓, 세상을 향한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가 세상을 향해 멋진 삶을 살려면 ‘아빠 양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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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현식 (<아이를 행복학 ㅔ만드는 아빠양육>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