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 at the End of the World’, 2005ⓒDavid LaChapelle
심심한 맹물 같은 마이클 케나의 풍경 사진에 잠시 물렸다면, 신경증을 유발하는 신디 셔먼의 누드 사진에 정신이 어찔하다면 이제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의 사진으로 눈을 돌리시라. 성경의 욥기서 속 세상처럼 지쳐 보이는 이 시대, 돌아오지 못하는 지점에 선 것 같은 세상을 렌즈에 담아내는 데이비드 라샤펠. 인간의 욕망, 중독, 재난과 재해, 과잉 소비를 원색 사진으로, 자기 혼자만 컬러인 것처럼 ‘눈부시게’ 담아내는 그. 그러면서 뜻밖에도 ‘인류애’라는 소염제를 들이대는 이 묘한 사진가. 그의 사진 2백30여 점이 <데이비드 라샤펠 인 서울>이라는 표제어를 달고 한국을 찾는다.
작품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판정은 일상일 정도의 포르노그래피적 이미지, 그로테스크함, 금기를 깨는 통쾌함을 표현해온 ‘사진계의 악동’. 어린 시절 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이상한 옷을 입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15세에 학교를 떠났고,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간 앤디 워홀의 소개로 <인터뷰 매거진Interview Magazine>의 사진 촬영을 시작한 데이비드 라샤펠. 이후 기괴하고도 독창적인 사진으로 인기를 얻으며 마돈나, 에미넴, 파멜라 앤더슨, 우마 서먼, 데이비드 베컴, 패리스 힐튼, 힐러리 클린턴 등 수많은 유명 인사를 촬영했다. 보그, 베니티 페어, GQ, i-D, 롤링스톤 같은 유명 잡지의 패션 사진, 볼보ㆍ리바이스ㆍ버거킹ㆍ에스티 로더 등 수많은 광고, <로스트> <위기의 주부들> 등의 드라마 트레일러 영상(영화 예고편 영상)을 촬영하며 유명세를 더했다. 신이 재능을 한데 몰아주기를 하셨는지 그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노라 존스, 엘튼 존, 제니퍼 로페즈 등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선댄스 영화제 최우수상을 받았다.
(왼쪽) ‘Archangel Michael and No Message Could Have Been Any Clearer’, 2009ⓒDavid LaChapelle
(오른쪽) Amanda Lepore-Addicted to Diamonds’, 1997ⓒDavid LaChapelle
‘Deluge’, 2007ⓒDavid LaChapelle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돈과 명성, 욕심이 소용돌이치는 패션 사진계를 떠났고, ‘재앙과 욕망 그리고 희망’이라는 자신만의 작품 세상을 찾았다. 허리케인이 강타한 폐허 옆에 고급 드레스를 입고 유령처럼 서 있는 젊은 여인(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한 시점에 이 사진이 신문 가판대에 등장해 그는 비극적 상황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는데, 실은 카트리나가 오기 한 달 전에 찍은 사진이다), 미켈란젤로의 ‘대홍수’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대홍수의 풍경(물질주의 팽배, 소비자들의 각축, 보편적 가치의 쇠퇴를 표현한 사진으로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돕고 있다), 명품 로고를 온몸에 프린트한 스타의 누드, 천사의 날개를 단 마이클 잭슨, 창녀ㆍ부랑자와 함께하는 예수….
그는 자신의 사진 속 아름다움을 통해 오히려 사람들이 세계의 공포와 비극을 보길 바랐다. 문명이라는 염증의 환부를 드러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소염 방법을 찾게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진이야말로 덧없는 사라짐에서 존재를 구원하는, 사진 예술 아닐까. 라샤펠Lachapelle(교회라는 뜻)이라는 성씨를 가진 운명 때문인지도 모른다(신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그는 도가, 유가, 불교를 망라하고 모든 종류의 종교에 대해 공부했다). ‘모두를 위한’ 팝아트를 꿈꾼 그는 지금 마우이 섬의 농가에서 소와 꿀벌을 기르고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평화와 평온, 균형을 소망하는 그다운 일상이다.
이 기막히게 흥미로운 예술가의 세계는 11월 19일부터 2012년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에 맞춰 그가 방한한다는 소식도 풍문처럼 들려온다. www.dlcseoul.com
- <데이비드 라샤펠 인 서울>전 모두를 위한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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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