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P111
연희동 거리의 ‘조 반장’을 만나다
갤러리 대표인 조성운 씨는 대기업 재무팀 출신의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조성운 씨는 갤러리 경영을 맡고, 미술비평으로 박사 과정까지 마친 누나 조성지 씨는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실질적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력을 가진 두 남매가 어떻게 갤러리를 열게 되었나 봤더니 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인 조성주 선생입니다. 미술로 하나가 된 집안인 셈입니다. 조성지 씨는 연희동의 ‘반장’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귀한 손님이 갤러리를 방문하면 놓치기 아까운 전시가 있다며 직접 손을 잡고 다른 갤러리로 에스코트해주는 열성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트에 들렀다 ‘그림 한 점 볼까’ 하고 편하게 들어설 수 있는 곳, 그림 산다는 손님에게 오히려 ‘백번 고민하고 사라’고 권유하며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그림 즐기는 문화를 공유하고 싶은 ‘속 깊은 갤러리’로 한번 가보시죠.
이나미(이하 ‘이’) 갤러리에서 여러 가지 공연도 하시죠?
조성지(이하 ‘조’) 각계각층의 사람이 미술 작품을 보는 반응을 살펴보게 되는데요, 이런 내용을 시나리오로 써서 연극을 하거나 오케스트라 공연도 해요. 연희창작촌에 찾아가 작가들과 낭독회를 열기도 하고요.
이 CSP111 갤러리는 공간이 멋진 건 아니지만, 철저히 콘텐츠로 승부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조 신사동이나 인사동 같은 경우 갤러리들끼리 교류가 많지 않다고 해요. 연희동은 달라요. ‘스페이스막’이나 ‘CNB 갤러리’ 등 갤러리들과 교류하면서 공동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이 이번 전시 작가 소개를 좀 해주세요.
조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작가예요. 그래서 그림 위를 재봉틀로 박아 관계들을 해체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제가 “선생님이 보려는 비전은 다채로운 것이잖아요. 선생님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나는 것처럼 밝은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어요?”라고 말씀드렸고 이야기를 나누다 이번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이 아, 작가랑 소통하면서 작업의 틀을 만들어가는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군요.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공간, 연희동에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 ‘머신 드로잉’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는 조현서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2 여느 갤러리와 같은 모습이지만, 즐기는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주소 서대문구 연희동 188-55 3층
문의 02-3143-0121
카페 129-11 카페 속 작은 갤러리
삼나무를 이용한 천장 장식이 독특한 카페 내부.
테라스 정원이 매력적인 3층 단독 건물. 오래된 주택이 많은 연희동 골목에서 시멘트 외벽과 개성 있는 건물 구조로 된 카페 129-11은 눈에 띄는 곳입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작가 배준성 씨의 누나가 운영하는 이곳은 배준성 씨의 작품과 그가 소장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카페에서 메뉴를 짜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커피를 뽑고, 서빙하는 일까지 모든 걸 혼자 척척 해내는 이는 김동명 매니저입니다. 연희동 카페 거리에서 잔뼈 굵은 그는 메뉴 하나 허투루 내놓는 법이 없습니다. 여름에는 고향에서 공수해온 복분자로 1백 일간 복분자청을 담았습니다. 이 복분자청을 이용한 복분자 주스와 복분자 에이드, 복분자 셔벗은 인기 만점입니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단팥에 구수한 흑임자 가루를 넣은 팥빙수는 1년 내내 선보이는데 추운 겨울 벌벌 떨며 먹는 맛 또한 일품이랍니다.
1 모던한 디자인의 카페 외관.
2 바게트를 이용한 프렌치 토스트는 인기 메뉴.
3 겨울 별미 흑임자 팥빙수.
4 매니저 김동명 씨와 이나미 씨. 테라스 가든에서 동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5 카페 곳곳에 그림이 걸려 있다.
6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렌티큘러’ 기법의 배준성 씨 작품.
이나미(이하 ‘이’) 삼나무를 이용해 천장을 장식한 것이 정말 특색 있네요.
김동명(이하 ‘김’) 디자이너 유진상 씨가 건물주예요. 카페 위층에서 사시는데요, 유진상 씨는 밖으로 시멘트 노출 건물, 안으로 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삼나무 향기가 정말 강했어요.
이 삼나무 삼림욕을 하듯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김 숨은 비밀이 있는데요, 소리와 연관이 있어요. 스피커가 두 군데만 있는데 음이 어느 곳에서나 똑같아요. 손님 이야기 소리는 방해가 되지 않아요. 신기하더라고요. 천장에 걸려 있는 삼나무 크기가 모두 다른데, 그것도 삼나무 모양은 중세 유럽의 돔 형태 고딕 양식에서 따왔어요.
이 인테리어 개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형물처럼 느껴지네요.
김 바람 불면 더욱 멋져요. 살랑살랑 흔들려서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나거든요.
이 피톤치드가 나온다니 절로 삼림욕이 되겠어요. 그런데 이 프렌치 토스트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요?
김 식빵 대신 바게트를 이용해 만들었어요. 식빵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흐물거려 씹는 맛이 덜하더라고요. 프렌치 토스트에 맞는 바게트를 찾느라 여러 빵집을 다니며 비교, 연구했어요.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요. 뜨거운 빵과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잘 조화를 이루거든요.
이 정말 맛있네요. 자꾸만 손이 가는 메뉴인데요? 핸드드립 커피도 맛있고요. 저도 사무실에서 번거롭지만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거든요.
김 보통 핸드드립 커피로 구멍이 세 개인 칼리타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곳에서는 전통 방식인 고노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요. 고노는 구멍이 하나라 커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때문에 커피 한 잔당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추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보디감이 더 느껴지고 목 넘김은 편안해요. 그리고 커피는 무한 리필해드려요.
이 통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정원, 계속 리필되는 커피, 이곳에서 책을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특히 더 운치 있고요.
주소 서대문구 연희동 129-11
문의 02-325-0129
갤러리 긱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이웃
갤러리 마당에 심어놓은 감나무, 모과 나무가 정감이 넘친다.
CSP111 갤러리의 ‘강추’로 세 번째 촬영 장소가 결정되었습니다. 연희동은 분위기가 참 묘한 곳입니다. 이웃집에 들러 고추장을 빌리거나 집에 없는 망치 하나 빌리러 가듯 편하게 이 갤러리 대표가 자기 손님을 저 갤러리에 소개해주고, 수다도 떨고 밥도 먹으며 정을 쌓고 지냅니다. 이보다 진한 이웃이 없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한 갤러리 공간이 이색적이지요? 갤러리 긱GIG은 충분한 능력이 있어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꿈을 펼치지 못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후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갤러리이자 작가 스튜디오랍니다. 1층에는 두 작가의 작업실로, 2층과 3층은 사무실과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찾아오기보다는 이웃 속에 자리 잡아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다가가는 갤러리가 되고 싶다는 한 자락 꿈을 실현한 곳입니다. 긱이란 이름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연주하는 합주 시스템에서 따왔습니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다양한 연주자들이 모여 매혹적인 하모니를 만들듯 작가, 큐레이터, 컬렉터가 모여 멋진 전시의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입니다.
1 집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편안한 분위기의 갤러리 긱.
2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꾸민 갤러리 내부.
3 소장하기 좋은 10호 사이즈의 그림들을 모아 전시 중이다.
4 웃는 모습이 닮은 부부 김지환 대표와 갤러리스트 배윤주 씨.
이나미(이하 ‘이’) 가정집을 갤러리로 개조해 독특한 것 같아요.
김지환(이하 ‘김’) 처음 갤러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작업실이 없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1층에 작가들 작업실로 사용할 만한 공간이 있었고, 그래서 계약한 거죠.
이 멋있네요, 진짜. 거기까지 힘이 미칠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배윤주(이하 ‘배’) 처음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가진 생각이 갤러리를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일반 건물이 아닌 가정집을 갤러리로 사용하니 공간을 편하게 봐주셔서 좋더라고요. 일부러 담도 헐었어요. 지나가다 쉽게 들어오시라고요.
이 CSP111 갤러리의 아트 디렉터 조성지 씨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배 봉사 활동 그룹으로 신부님 소개를 통해 만났는데 얘기가 잘 통하고 공통점이 많았어요. CSP111의 경우 남매가 운영한다는 점이 그렇고, 저희도 부부가 하니 가족 경영이잖아요.
이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긴밀하다는 게 놀라워요.
김 저희도 갤러리를 오픈할 때 주변 갤러리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동네에 새로운 갤러리가 생기면 저희도 도움을 많이 줄 생각이에요. 또 청담미술제처럼 연희미술제를 열면 좋겠다는 계획도 있어요.
배 얼마 전 앞집에서 상추를 따서 갖다주시더라고요. 옛날 시골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는데 정이 넘치는 곳이에요. 저희도 앞마당에 열린 감을 따다 드리고 싶은데 아직 못 갖다 드리고 있어요.
이 연희동은 새로운 공간이 들어와도 동네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기존 분위기와 조화를 잘 이루는 것 같아요. 예술이 삶 속에 파고들었다고나 할까? 나오시마 예술촌이 연상되네요.
배 며칠 전, 전 직장에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을 만났는데 저보고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이 하고 싶은 일과 직업으로 삼는 일이 같기란 쉽지 않은데, 꿈꾸던 일을 하면서 살고 계시니 정말 행복할 것 같네요.
주소 서대문구 연희동 132-20
문의 02-323-7395
더미디엄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복합 문화 공간
더미디엄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더미디엄은 작년 12월에 문을 연 새로운 개념의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뉴미디어아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문화&예술 채널 ‘앨리스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새로운 매체 예술에 관한 정보나 관심 부족이 아쉬워 이런 공간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습니다. 에이전시 사무실과 자료실, 카페, 전시장 등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카페 안에 마련된 아카이브에서는 각종 문화 예술 잡지와 자료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시 클리닝 프로젝트’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1 입구에 그림처럼 놓인 자전거.
2 편안한 서재 공간으로 꾸며진 이곳은 다양한 예술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오픈 오피스를 운영 중.
이나미(이하 ‘이’) 미디어 아트 분야는 아직 생소해하는 분도 많아요.
류임상 (이하 ‘류’) 미디어 아트를 가장 어려운 예술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또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장르이기도 해요. 그림을 감상하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고 고상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잖아요. 미디어 아트는 광고물이 결합되거나, 관객이 직접 작품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예술이지요.
이 더미디엄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나요?
류 장르에 편중되지 않는 예술을 보여주려고 해요. 카페뿐 아니라 갤러리에서는 미디어 아트 관련 전시와 간단한 교육 프로그램도 열리고 있어요. 가령 아이들과 함께하는 LED 트리 만들기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적 프로그래밍 클래스를 열기도 하고요.
이 실험적인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미디어 아트 클래스도 운영한다고 하니 미디어 아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둘러보면 좋겠네요.
주소 서대문구 연희동 137-27
문의 070-4084-8965
연희동 골목길, 그 밖의 숨은 보석들
앞서 소개한 곳 외에도 연희동에는 발걸음을 옮기면 좋은 곳이 많습니다. 연희동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은 궁동공원(연희동 산 118번지)입니다. 노후된 연희 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공원과 실내체육관으로 조성한 곳인데 연희동 전경은 물론 남산, 멀리 관악산까지 바라다보입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산책겸 걸어도 좋습니다. 갤러리연희동프로젝트(02-3241-1286)는 연희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입니다. 일명 ‘냉장고 갤러리’라 불리는 독특한 건물 외관으로 유명한데,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지요. 홈페이지를 통해 기획전이 있는지 살펴보고 방문하세요. 파란색 외관이 인상적인 뱅센느(02-336-3279)는 르 코르동 블루 출신의 셰프가 만드는 홈메이드 브런치로 유명합니다. 수제 버거가 맛있는 라메종(02-338-3824), 한정식 체인점 풀향기(02-325-3075)도 주말 오후 여유롭게 식사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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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나미 씨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재학 중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프리랜서 생활을 거쳐 1995년 ‘스튜디오 바프’를 설립하고 북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디자인한 책으로는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이해인 수녀의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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