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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기울여 들어보니] 재즈 가수 웅산 하늘에 구름 가득해도 내일은 다시 온다
삶의 통증으로부터 영혼을 쓰다듬는 힘이 있는 그의 노래. 그래서 조락의 계절에 더 어울린다. 한국 재즈계를 이끄는 보컬리스트이자 일본 재즈 시장의 한류 스타, 웅산을 만났다. ‘웅대한 산’이란 큰 이름을 지닌 그의 이야기 속엔 위로, 자유란 단어가 나무처럼 박혀 있다.


목소리에서 가을바람을 타고 퍼지는 커피 향이 느껴지는 가수 웅산.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는 최근 배우 고현정 씨가 출연한 커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화이트 시폰 롱 드레스는 문영희 제품.

햇살이 연한 향기를 내며 부서지는 오후, 나뭇잎이 땅으로 내려앉는다. 저 소멸의 모습이 시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걸, 나이 먹어서야 알았다. 공기를 흩뜨려놓으며 그가 노래를 읊조린다. 그러자 공기 속에서 그리운 냄새가 풍겨나오는 듯하다. 11월의 낮은 음성으로 맴돌다가 8월의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음의 마력, 웅산만의 노래가 공기 속에 떠돈다. 웅산. 한국 재즈계를 이끄는 보컬리스트이자, 일본 재즈 시장에서 ‘A급 리스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재즈계의 한류 스타’. 대형 서커스 공연장처럼 변해버린 요즘 대중음악계에서 자신만의 음악으로 우뚝 선 가수歌手. 속 깊은 술잔에 술 한잔 받아 내미는 것 같은 그 속 깊은 노래는 얼마나 많은 우리의 밤을 위로해줬나. 그렇게 귀가 아닌 가슴과 기억으로 듣게 되는 노래의 주인공, ‘몇천 년을 그대로 있는 산’처럼 변하지 말라는 뜻의 법명을 이름으로 쓰는 이 여자. 그 삶에는 갈피마다 어떤 이야기가 채워져 있을까.

은영에서 웅산으로, 재즈 같은 인생 은영(그의 본명), 가늘고 보드라운 계집애 냄새를 풍기는 이름. 그리고 웅대한 운명이 느껴지는 법명, 웅산雄山. 인상적인 단편소설 같은 그 삶의 이야기를 이 이름 두 개가 그대로 담아낸다. 수류탄 핀처럼 불안한 날을 보내던 열일곱 살의 은영, 어느 날 갑자기 출가出家했다. “인생의 모든 걸 고민하던 시절이었어요. 친구 집에 가다 우연히 청량리 윤락가를 지나가게 됐는데, 많은 생각이 북받쳐 올랐어요. ‘삶이라는 건 대체 뭔가, 나와 또래인 저 아이들은 왜 저기에 앉아 있어야하나, 나는 왜 여기 이렇게 있어야 하나, 누군가는 방황을 하고, 누군가는 모범 답안처럼 살고, 도대체 삶이라는 건 뭔데 이러나.’ 그 길로 학교에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단양 구인사로 들어갔어요. 나중에 아버지께 전화로 알리니 ‘1남 5녀 중에 한 사람 정도는 부처님의 제자가 돼도 좋겠다’ 하셨죠. 남자로 태어날 녀석이 여자로 태어나 힘들어한다며 무안 스님이 웅대한 산이란 법명을 주셨어요.”

그날부터 매양 하는 일이라곤 채마밭을 매거나, 4백 명이 넘는 절집 식구 밥을 하는 거였다. 한데 희한하게도 그 마음에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왔다. 무언가 쏟아낸 듯 가벼워졌다. 그렇게 2년 넘게 참선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던 그는 또 갑자기 산을 내려왔다. 어느 날, 스님의 죽비 소리에 꿈인지 무아지경이었는지 모를 상태에서 깬 순간 입에선 염불이 아닌 가수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공부는 불경이 아니라 음악이다, 자신의 몸을 울려 누군가를 일깨우는 죽비처럼 노래를 통해 스스로를 일깨우리라, 나를 깨우치는 일에 정답이 어디 있으랴’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 길로 절을 떠났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 록 밴드의 보컬로 활약했다. 질주하는 듯한 그의 음성을 들은 누군가는 그를 ‘술 취하지 않은 재니스 조플린’이라고도 불렀다. 대학가요제 입상의 꿈이 좌절됐을 때 빌리 할리데이의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I’m a fool to want you’를 만났다. “제 노래는 몸에 힘이 꽉 들어찬 록인데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는 텅 빈 노래, 단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웅얼거리는 노래였어요. 그런데 그게 정확히 심장에 와서 꽂혔어요. 삶의 극한을 몸소 맛본 자의 통찰력으로 삶을 꿰뚫은 듯한 노래.”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듯 재즈란 음악이 그를 이끌었고, 그 길로 록에서 재즈로 전향했다. 예정된 리듬의 행로 바깥을 도는, 재즈와 꼭 닮은 인생이었다. ‘내 안에서 나도 알 수 없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 그는 용기 있게 그 길로 급회전했다. 어차피 정답처럼 계획하고 요약 정리할 수 있는 인생이란 애초에 없었던 거다.

‘재즈 가수’ 외에도, 경희대와 수원예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제자로는 힙합 듀오 리쌍의 객원 보컬로 실력을 인정받은 알리, 솔플라워의 민하나, 연기자 이하나 등이 있다) ‘교수님’이란 타이틀을 지닌 그에게 이날은 ‘모델 웅산’을 붙이고 싶었다. 블랙 롱 드레스는 문영희, 블루 컬러 포인트의 블랙 카디건은 박춘무, 펌프스는 세라 제품.

재즈라는 수행 아침이면 노래로 자신을 문책하고 저녁이면 노래로 자신을 고문하며 부르고 또 불렀다. 입시생처럼 밤새 노래를 외우고 화성학을 공부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류복성, 신관웅이라는 한국 재즈의 1세대 기수를 만나 무대에 서게 됐다. 1996년 데뷔한 이후 일본부터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등 세계의 재즈 페스티벌을 돌며 음악을 ‘수행’했다. 멈추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공연을 하며 살았다. 일본 재즈 관계자들이 그를 먼저 알아봤다(그는 “눈화장이 진해서 노련해 보였는가 보다”란 농으로 그 기회를 설명했다). 1998년부터 일본에서 5백 회 이상 공연했고, 1년에 네 번 정도 전국 투어 공연을 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재즈 강국이에요. 시골의 라면 가게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재즈 연주가 들려오죠. 일본 전역을 돌며 노래했는데, 촌장 댁에서 공연한 적도 있어요. 대부분 40~50대 관객들이 기침도하지 않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봐요. 처음엔 이 ‘무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열심히 듣기 위해서였죠.” 그사이 2003년 뉴욕으로 날아가 세계적 피아니스트 베니 그린 등 정상급 재즈 뮤지션이 세션으로 참가한 1집 음반을 녹음했다. 그 음반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매됐다. 이후 재즈의 뿌리인 ‘블루스’를 테마로 한 2집 <더 블루스The Blues>, 대중적 인기까지 얻은 <예스터데이Yesterday>,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랑받은 <폴 인 러브 Fall in Love> 등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게 그는 서른아홉 살의 ‘중간 연령층 가수’가 되었다. 그동안 축포처럼 터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앨범상과 노래상, 한국인 최초로 일본 ‘리더스폴 베스트 보컬리스트’ 선정, 재즈인에게 명예의 전당 같은 ‘블루노트’에서 역시 한국인 최초로 공연….

그의 노래는 남다르다. 요요한 고양이의 발걸음이 떠오르고, 가끔은 꼽꼽한 물기가 느껴지는 재즈지만,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친 영혼을 쓰다듬는 노래다. 자신이 캄캄한 운동장에 버려진 한 켤레 운동화처럼 느껴질 때 그의 노래를 들어보라. “재즈를 만나고선 ‘이게 나의 수행이구나’ 알게 됐어요.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택하는 게 수행이잖아요. 재즈라는 음악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노래도 만들게 됐고요. 제가 노랫말에 자주 쓰는 ‘사랑’은 연인의 사랑보다 더 큰 의미의 사랑이죠. ‘눈물이 너를 보내지 않지만 사랑이 너를 놓아준다’란 노랫말에는 ‘더 큰 품의 사랑’이란 메시지가, 비 올 때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노래한 ‘레인 버드’의 노랫말 ‘이미 창밖 숲 속엔 도시의 아파트들처럼 주인들이 다 와있으니’에는 인간사에 대한 연민이 들어 있죠. 올가을 선보인 6집 앨범 <투모로우Tomorrow>는 일본 대지진을 바라보며 만든 노래예요. 우리말로 풀면 ‘내일은 온다, 하늘에 구름 가득해도 내일은 다시 온다’….” 이 이야기를 건넬 때 그의 눈빛. 석가모니가 말씀하신 ‘안시(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가 그에게 있다. 일찌감치 수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원근법을 배운 사람, 삶이란 안타깝고 가여운 것임을 깨달은 이의 노랫말, 이 세상 누구든 애환의 무늬는 다를 바 없다는 공감의 이야기. 그렇게 공양하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으로 묵힌 노래에 우린 위로 받는다. 그는 우리말 가사로도 재즈를 만든다. “대중이 재즈를 이해하는 데는 우리말 가사가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말로 재즈를 부르면 딕션(발음)의 느낌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제게도 있었죠. 3집에서 처음 스윙 리듬을 우리말로 불러보니 의외로 잘 어울렸어요. 재즈는 늘 새롭게 변하는 음악이니 리듬을 잘 살리는 데서 해결점을 찾았죠.” 그렇게 우리말로 가슴에 변화구와 직구를 번갈아 꽂는 웅산표 노랫말, 운율을 살려 암송해도 좋다.



웅산의 깊고 진폭이 큰 표현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블라우스는 르베이지 제품.

자유를 찾아서 급커브를 튼 것처럼 그가 말을 돌렸다. “제가 TV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아버지께 노래가 어떻더냐 물으니 ‘쟈가 그렇게 잘하는 노래는 아니잖여’ 하시더래요. 불교를 연구하는 아버지는 반듯한 삶을 사시는 분이에요. 제가 재즈를 시작하고는 한달 내내 일하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버니까 ‘그게 양심 있으면 안 되는 일인데’ 하며 걱정하셨어요. 제가 직각으로 꺾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더 걱정하시던 부모님이 재작년에 처음 공연에 오셨어요. 마트에서 제 음악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듣기에 제법 편안하다고 느끼셨나 봐요.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공연 보시고선 아버지도 많이 좋아하셨어요. 제가 어떤 걸 전달하고 싶은지 보셨으니.” 가족 이야기에서 그의 낯빛이 유난히 밝다.어떤 영혼이라도 딸, 누이, 동생이라는 외투를 입으면 몰랑몰랑해지는 법이다. 다감한 가정에서 1남 5녀 중 셋째로 자란 그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처마처럼 깊숙이 드리운 그 눈꺼풀 안에는 장난기까지 비친다. “저 순박한 여자예요. 화도 잘 안 내는걸요. 1~2년에 한 번 화를 낼까. 그것도 누군가 프로페셔널하지 않을 때 정도? 전 일에 있어선 프로이고 싶어서 연습 스케줄도 한두 달 전에 멤버들에게 넘겨줘요. 그럴 때 말곤 엄청 순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가 그 낙천성이죠.” 그에게서 어린아이가 풍기는 것 같은 단 냄새가 풍겨온다. 안분지족, 소박함도. 이제 그 낙천성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평균적인 삶을 살아도 좋으리라. “제 삶이 언제 또 직각으로 방향을 틀지 알 수 없어 확언할 수 없지만, 지금 제게 음악은 절친이자 연인이죠. 음악보다 더 좋은 인연이 생겨난다면 바로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들어가겠지만. 일흔한 살에 콘서트를 여는 패티김 선생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근사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하루하루 치열하게 보내면 가능하겠죠?” 지금 같은 몰입이라면 그는 시대의 큰 이름을 얻는 가수가 되리라.

“재즈는 자유로운 음악이다 보니 오히려 평생 공부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해요. 공부해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으니까. 스윙의 느낌을 깨닫는 데만도 3년이 걸렸어요. 웅산 하면 ‘편하게 부르기’를 많이 떠올리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부르기까지 10년 넘게 걸렸죠. 리듬을 정확히 읽고 그 리듬에 올라탈 줄 알아야 비로소 듣는 이가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치열하게 공부하며 부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그는 재즈가 불교를 닮은 음악이라고, 해탈이라는 대자유를 담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신은 도중에 파계하고 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도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이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삶에서 제가 찾고자 한 건 불교의 해탈일 수도, 재즈가 주는 희열일 수도 있지만 결국 자유 아니었을까요? 기다림의 자유, 오래 참음의 자유까지 포함한 자유.” 이 이야길 건네며 그가 마른 꽃잎처럼 웃었다. 그 순간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 그가 던진 선문답 같은 말이 오버랩됐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는 ‘인간은 풍요롭게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기 위해 산다’는 글이 나와요. 저는 재즈라는 음악으로 좀 더 풍성하게 존재하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면서요.”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오후, 가을 햇살의 체온을 안은 잎사귀가 보도블록 위로 내려앉았다. 문득 나는 어느 시인처럼 땅으로 낙하하는 잎사귀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랑은 왜 늘 낮은 곳에 있는지를. 라디오는 덤덤히 대관령의 첫서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사진 박기숙 스타일링 박명선 어시스턴트 권지영 의상 협조 르베이지(02-3438-6261), 문영희(02-3447-7701), 박춘무(02-3442-3012), 세라(02-469-1630)

글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