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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아티스트 이용백씨 Mr. Simple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단독 작가로 참여하며 자랑할 만큼 후광을 얻은 아티스트 이용백 씨. ‘종합반’처럼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선보이는 작가다. 김포 포내리의 작업실 겸 살림집에서 그를 만났다. ‘아티스트 이용백’의 세포는 늘 도발로 들끓지만, ‘포내리 미스터 리’의 일상은 꽤 간소하고 단순했다.


대형 설치 작품과 조각,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천장고가 높은 작업실은 꼭 필요하다. 곧 있을 베이징 핀갤러리의 전시 작품을 포장하고 정리하는 중이다.


갤러리에서)을 준비하다 온 길이라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해외 무대에서조차 가파르게 ‘뜨고 있는’ 이 예술가가 가진 세계, 그 숨은 서랍을 다 이해하기에 이 가을 해는 너무 짧을 것이다.

‘예술 하지 않는 이용백’이란 없다
3년 전 오랜 벗인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씨(백선 디자인스튜디오 대표)가 설계한 이 집은 ‘보호’ ‘온기’ 대신 ‘임시’ ‘전시展示’ ‘예민함’ 같은 단어로 채워진 듯하다. 지진계보다 예민한 ‘예술가’의 울타리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집에서 혼곤한 가족의 일상 대신, 예술과의 혈투 같은 열애를 택해 사는 그. 이 남자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그 삶의 지향점인 예술을 이야기해야 한다. 애당초 ‘예술 하지 않는 이용백’은 그의 삶에 없는 거니까. 올해로 46세가 된 그는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단독 작가가 된 이후엔 자랑할 만큼 후광도 얻었다(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강익중, 전수천, 이불, 이형구, 양혜규 씨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동안 출품작이 모두 예매된 것으로, 세계적 작가 팡리준, 세계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 마이클 제이콥스가 이미 비엔날레 전 그의 작품을 구매한 것으로 호사가 입국 심사대 앞에 선 것처럼 그의 집 앞에 서 있었다. 포내리, 그 아늑한 마을 둔덕에 이식된 무뚝뚝한 표정의 집. 예술가의 시간을 잠시 빌리러 온 내게 이 집의 주인장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의 이야기 앞에서 난 외국 공항에 선 문맹처럼 허둥대는 건 아닐까. 그렇게 망설이는 내 눈동자 안으로 그가 불쑥 들어왔다. 응달의 수숫대처럼 치솟은 머리칼, 무엇엔가 몰두한 자의 형형한 눈빛…. 그는 베이징 개인전(9월 24일부터 11월 20일까지 798예술지구의 핀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르 몽드>에서 미술평론가 필리프 디장 Philippe Djian이 ‘주목해야 할 두 개의 전시관’으로 스위스관과 한국관을 꼽기도 했다. 그의 작품엔 어떤 자장 磁場이 있어 사람들을 자꾸 불러 세우는 걸까. 고매한 예술 이야기라고 미리 따분해할 필요는 없다. 오랜만에 게으른 뇌를 성가시게 하고 나면 호사스러운 구경을 한 사람처럼 왠지 부자 같은 표정을 지을 테니.


1 베니스 비엔날레에 설치된 ‘피에타Pieta: Self-death’, FRP, 2008.
2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 ‘엔젤 솔저Angel Soldier-photo No.7’, C-print, 2011.


3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브로큰 미러Broken Mirror’, 42inch monitor, mac mini, mirror, stereo speakers, 2011.
4 작업실 안에도 그의 기척을 느끼게 하는 사물이 가득하다. 태어난 지 수십 년 넘은 스피커가 한쪽 벽을 장악했다.


먼저 대표작 ‘피에타’는 조각을 만들기 위한 틀인 거푸집이 성모마리아가 되고 그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예수가 된다. 거푸집이 자신의 틀에서 나온 조각을 끌어안고 슬퍼하기도,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거푸집을 공격하기도,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죽어 있기도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신의 죽음이 아닐까. 꿈을 포기하고 습관과 관성에 의해 산다면 이 역시 죽음이 아닐까. 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또 다른 나. ‘현대인의 자기 연민과 증오, 자기 죽음’을 표현했다는 이 작품은 들여다볼수록 슬프다. 꽃 더미 속에서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엔젤 솔저’(사진, 퍼포먼스, 설치, 영상 등으로 전시된다)는 어떠한가. 그의 이야기처럼 ‘온 세상이 꽃이라면 군복도 꽃이겠구나’란 생각이 들다가도 기이한 공포와 긴장감이 느껴진다(한국의 분단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또 꽃무늬 옷이 군복이려면 세상도 꽃 천지여야 한다는 강한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2008년 퍼포먼스에서는 1백 인의 예술가 부대가 등장해 고정관념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브로큰 미러’는 큰 거울 앞에 사람이 서면 거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금이 간다. 거울에 비친 관람객의 모습도 깨져간다. 나를 비추는 미디어의 파열은 곧 내 정체성의 파열로 이어진다는 묵직한 의미, 자신을 깨뜨려야 새로운 나를 만든다는 자기반성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미끼용 가짜 물고기를 그린 ‘루어Lure’는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현실을 생각케 한다. 자, 어떠한가? 인간의 삶을 때론 망원경으로, 때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때론 영혼을 쓰다듬기도, 때론 불안한 역사를 귓속말로 들려주기도 하는 그의 예술. 이래도 따분한가?

껍질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결코 날개는 돋지 않는다
“제가 예술을 하게 된 이유요? 제가 감동을 받아봤기 때문이에요.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감동이란 뭘까요. 제가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다 하잖아요. 제겐 ‘무엇으로 그릴까’보다 ‘무엇을 그릴까’가 더 중요하죠. 독재 정권 시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선생님들이 대부분 미니멀리스트였어요. 어떻게 죄다 미니멀리스트일 수 있을까, 예술이란 영역은 무척 넓은데 왜 이 좁은 영역에 날 가둬놔야 하나 고민했죠. 러고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가 백남준,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이렇게 세 분인데, 요셉 보이스에게 배우려고 독일로 간 거죠. 동서양이라는 구분과 무관한 가치를 지닌 사람, 예술에 울타리란 개념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이미 돌아가시고 난 뒤여서 직접 배우진 못했어요. 하지만 그분에 대해 공부하게 됐고, 작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존경하는 세 예술가의 행로처럼 예술이라는 건 스스로를 해방하고, 다른 사람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부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넓히는 거라고 봐요. 전 그게 감동을 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 말라’의 세상이 아니라 ‘해봐라, 해보다가 후지면 안 하면 된다’의 세상을 그들에게서 본 거죠.” 그는 그렇게 모험과 실험, 도발을 자신의 무기이자 닻으로 삼았다. 그렇게 뭐든 ‘해보다’ 보니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등을 모두 하는 ‘종합반’ 작가도 됐다.

시대의 마지막 시인 같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껍질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날개는 돋지 않는다. 도무지 쾌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껍질까지 둘러쓴 채 엉거주춤하게 사는 건 얼마나 불행한가. 그렇게 편견에 갇혀 살다 보면 마침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마음의 견비통에 걸려 세상을 바라볼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해방하려면 자기반성부터 해야 합니다. 자기반성을 하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하죠.”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것을 제로화할 수 있는 삶의 용기로 가득한 그, 그리하여 곧 어떤 다른 삶의 시리즈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고감도 안테나 같은 그.

(오른쪽) 컴퓨터로 영상을 만드는 미디어 작업실. 화구, 카메라 장비, 공구, 스피커 등이 제자리를 찾아 앉아 있다.


무뚝뚝하고도 늠름해 보이는 이 집에서 소나무는 화룡점정이다.

그의 침실엔 직접 만든 침대가 놓여 있다. 매트리스가 들어갈 부분만 오목하게 파냈을 뿐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아 더 멋스럽다.

빈티지 오디오와 작품 ‘루어’, 그가 만든 티 테이블이 놓인 거실.


잘 노는 남자, 잘 치유하는 남자
인생이라는 핀볼 게임에서 그의 삶을 밀고 당기고 있는 것도 이 솔직함과 단순함이다. “어릴때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한 짓을 지금 다 하고 살아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기도 하니까. ‘낚시질’ ‘오디오질’ ‘자동차질’…. 잘 노는 건 결국 자기를 치유하는 것이니 최대한 잘 놀려고 해요. 내 행복은 역시 남들 하지 말라는 짓 하고 사는 거!” 그는 낚시 채널의 패널로 참여할 정도로 바다낚시광이다. 욕실 벽에 작품처럼 낚싯대를 ‘모셔두기도’ 했다. 스쿠버 다이빙에도 열광하는 그는 지금까지 몇백 번 넘게 물속에 들어갔다. 또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인 그의 집에는 1950년대생부터 1970년대생까지 빈티지 오디오와 스피커가 곳곳에 놓여 있다. “홍대 앞에 있는 ‘블루스 하우스’란 오래된 카페에서 혼자 술 마시며 에스키스(작품 구상을 위한 밑그림 작업)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김포로 이사 오니까 갈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곳에 준하는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면 되겠다 싶어 하나씩 사 모은 거예요. 작업실의 6m짜리 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면 참 행복하죠.” 그렇게 그에겐 안식이 있다. 하긴 예술이 매일 그렇게 덮어 누르기만 한다면 얼마나 버겁고 지겨운 인생일까. 아티스트 이용백 씨가 아닌, 포내리에 사는 미스터 리로 그는 애견 백두와 백미를 돌보고, 애완해야 할 자식처럼 나무 7백 그루를 키우며, 지천으로 핀 망초꽃 사이를 헤매고 다닌다.


1
 잘 놀고 제대로 일하고 싶은 한국 나이 46세의 이 남자. 
2 작품 ‘ 플라스틱 아이-그린Plastic Eye_Green’ 앞에서.


3, 4 콘솔과 마당에 놓은 테이블도 직접 만들었다.


5 이 소나무가 바로 두 채의 집 사이에 서 있는 그 소나무다.
6 백두, 백미와 함께.


이용백의 심플 라이프
홍대 동기동창생인 김백선 씨가 설계한 이 집은 단순하고 간소하다. “최대한 단순하게, ‘쎄게’ 지어달라”는 그의 간단한 요구에 친구는 “이용백은 우직하고, 헛기교가 없고, 선이 굵다. 그러하니 그렇게 짓겠다”라고 화답했다. 김백선 씨는 집을 세 덩어리로 나누어 천장고가 높은 작업실, 이용백 작가의 살림집, 2층 구조의 미디어 작업실(2층에는 제자들이 거주한다)로 만들었다. 외관이나 실내나 너무 간소해 양념이 부족한 음식 같지만, 고명 얹지 않은 음식의 담백함 같은 맛이 나는 집이다. “어릴 때 ㅁ자 한옥에 살았는데, 마루 뒤에 네모난 창이 있었어요. 그 뒤란에 할머니가 꽃을 심으셨는데, 바람 타고 향기가 들어오던 그 기억이 생생해요. 이 집에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멋이 스며 나오길 바랐어요. 백선이는 이 집에 ‘움직임’이라는 에너지를 심어줬죠. 긴 담벼락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채와 채를 넘나드는 동안 움직이는 이의 시점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에너지. 저는 모든 통로에서 소나무가 보이게끔 건물 사이사이에 소나무를 심었어요. 이 동네가 평야 지대라서 겨울이 되면 삭막하고 콘트라스트가 강해져요. 푸른 기운이 필요하죠. 또 각이 진 건물에 소나무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싶었고요.” 그 소나무 중 특히 두 채의 집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가 아름답다. 비가 오면 브론즈처럼, 달이 뜨면 고승처럼 보이는 나무. 해가 뜨면 그림자로 벽에 수묵화를 그리는 소나무다.

(아래) 친한 선배가 선물한 고가구 그리고 그림처럼 어울리는 빈티지 오디오.

디자이너인 친구가 집의 틀을 만들었다면 아티스트인 집주인이 손의 수고, 손의 사고思考로 집 안을 다듬었다. 그를 닮아 무뚝뚝해 보이는 가구(집 짓고 난 폐목재로 직접 침대, 식탁, 콘솔까지 만들었다), 조립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모형 배 여러 척도 들여놨다. 이렇게 그의 살림집에는 알아봐달라고 말 걸지 않지만 슬몃슬몃 눈이 가는 것들이 있다. “독일 유학 중 제가 중고차를 갖게 됐어요. 그때 아버지가 생애 처음으로 제게 편지를 쓰셨어요. ‘사물도 네가 사랑을 해주면 말을 잘 듣는다.’ 그때부터였어요. 사물의 가치를 돈의 잣대로 보지 않게 된 게. 언젠가 모 컬렉터가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제게 선물한다길래 ‘노 땡큐!’ 했어요. 제가 그 작품을 별로 안 좋아해서 집에 걸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컬렉터가 나 같은 놈 처음 봤다면서 웃데요. 하지만 그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 소유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우렁우렁 울리는 그 ‘목욕탕 목소리’ 때문인지 난 자꾸 물에 풀린 티슈처럼 마음이 풀어졌다.

“제 작품 중 어떤 건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어떤 건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선 실패했어요. 저는 제 작품의 세일링 포인트를 25% 정도에 둬요. 그 정도가 되면 제자들 월급 주고 제 생활을 할 수 있어요. 전 그 비율이 맞다고 봐요. 상업적으로만 가면 작가로서의 수명이 불 보듯 뻔할 것이고, 너무 예술적으로만 가도 외로워지고. 그렇게 ‘발란스’를 유지하는 게 제 삶의 일부죠. 삶을 단순화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술 한잔 하는 사람은 열 명이 안 돼요. 그런 지 몇 년 안 됐어요. 보기 싫은 사람 보는 것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더 보자, 그렇게 생각했죠. 그러니 생활이 되게 단순해져요. 늦게까지 작업하다 점심때쯤 일어나서 밥하고, 저녁은 사 먹고, 아버지가 가꾸는 텃밭에도 갔다 오고, 강화시장에도 가고. 백선이가 집에는 책을 두지 말라길래 살림집에선 책도 안 봐요. 작업실과 집이 같이 있다 보니 일상이 엉키기 쉽잖아요. 그냥 뭐 그래요. 단순하죠.”

이야기는 끝이 났다. 산허리로 석양이 내려와 있었다. 예술가의 삶의 목록을 고작 원고지 몇 장으로 섭렵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게다가 그는 심플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서랍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걸 이해하기에 이 가을 해는 너무 짧다.

글 최혜경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