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행복으로 떠나요] 가을은 광주의 계절
1년 중 광주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해마다 9월과 10월 사이, 광주에서는 ‘현대미술의 축제’라 불리는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번갈아 열린다. 맛깔나는 전라도 음식 먹고 문화와 예술을 감상하며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여행.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도시를 순례하는 데는 이틀 밤 혹은 사흘 낮이 걸린다.


‘소박한 한국식 정원’을 보여주는 무각사 앞마당.


“엄니나/ 아줌씨나/ 혀끝에 노니는/ 열두 가지 음식 솜씨의 곳/ 형용사의 곳/ 비 내리는 날/ 빗소리도 젓대 소리 퉁소 소리 스며오는 곳/ 지친 손길/ 내 조상인 양 맞이하는 곳/ 헛간에도 허술한 여인숙 방 벽에도/ 반드시/ 산수화 한 폭 이상 걸려 있는 곳.”
고은 시인이 쓴 ‘광주’라는 시다. 광주 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단상을 한 편의 시에 간결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의 시처럼 광주는 전라도 특유의 음식 맛을 자랑하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예향의 도시다.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지만, 호남의 진산 무등산과 천년의 역사 황룡강이 이마저도 넓게 감싸 안는다. 꼭 가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갈 거라면 이 무렵이 좋겠다. 지난 9월 1일부터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10월 23일까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2박 3일 일정 중 한나절을 전시장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 그럼 몸도 마음도 그리고 여행 가방도 가볍게 준비하고 광주로 떠나보자.

첫째 날 무각사와 황룡강 산책하기

1 전통 한옥 스타일로 지은 템플 스테이관.
2 무각사 템플 스테이관 입구 모습.

3 삼각 지붕 아래 아늑한 잠자리. 
4 전날 예약을 안 하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집, 홍아네.

5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 세발낙지.
6 가을 별미 전어회.


서울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전라도라는 심리적 거리에 비해 광주까지의 이동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내에 진입해 가장 먼저 들러볼 곳은 상무지구에 있는 무각사(062-383-0108)라는 절이다.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상무지구는 술집과 노래방, 모텔이 즐비한 번화가다. 왜 하필 번화가에 자리 잡은 절을 추천하는지 의문이라면 이른 아침, 꼭 이곳에 들러보자.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절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로 가득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물론 절의 고요만을 느끼라고 무각사를 추천하는 건 아니다. 이곳의 템플 스테이는 전국 각지에서 개인과 단체 손님이 몰려들 정도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숙소 때문인 듯하다.

절 입구에 크게 지은 무각사 문화관은 1층 서점, 카페, 갤러리와 2층 템플 스테이 체험관으로 꾸몄다. 기와지붕 아래 10여 개의 다락방이 나란히 머리를 맞댄 숙소에서 하룻밤 몸을 누이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이곳은 현재 열 명 이상의 단체 손님에 한해서만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개인적으로 문화관 1층에 있는 서점을 꼭 들르라고 권하고 싶다. 불교 관련 서적만을 지루하게 꽂아놓은 것이 아니라 선과 행복을 다룬 서적부터 소설과 시, 여행과 인문학 분야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서점 옆으로 조그맣게 차린 ‘웰빙 숍’도 아주 마음에 든다. 화장실에 피워두면 심신이 안정되는 향과 스틱, 명상과 참선에 도움을 주는 힐링 뮤직 앨범이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서점 그리고 웰빙 숍과 아주 잘 어울리는 로터스Lotus라는 이름의 카페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문화관에 들어갈 때는 정문으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뒷문으로 나와야 한다. 카페 테라스 쪽으로 난 문은 산책로와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무각사의 야외 경치를 관망하는 것은 마지막 코스.

광주에서 손꼽히는 맛집 중 하나인 홍아네(02-384-9400)는 무각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서구 치평동에 있다. 예약 상황에 따라 산지에서 음식 재료를 공수해오는 탓에 하루 전날 예약하지 않으면 문전박대를 당하는 곳이다. 하지만 전어, 민어, 세발낙지를 싱싱하게 먹을 수 있고, 칼칼한 조기탕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으니 꼭 찾아가볼 것. 커다란 양푼에 나오는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기름장에 찍어 먹는 맛, 숭숭 썬 가을 전어회를 깻잎 위에 올려놓고 고추 한 점과 쌈장 조금 얹어 싸 먹는 맛, 푹 끓여내 살과 뼈가 연해진 조기탕을 땀 흘리며 먹는 맛, 입가심으로 구수한 숭늉 한 사발 후루룩 마시는 맛은 광주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식도락 코스다.


둘째 날 광주의 예술에 푹 빠져 걷기
이튿날은 광주의 문화 와 예술을 둘러보자. 그간 광주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사실상 광주를 왜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관심 을 갖고 속속들이 여행하지 못한 탓이다. 광주 시민들의 삶이 고 스란히 녹아 있는 재래시장 몇 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티스트들 의 아지트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동구 태인동에 있는 대인시장 인 근의 중앙초등학교 주변은 ‘예술의 거리’로 조성한 곳이다. 현재 태 국, 인도 등 동남아시아의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이 시장 곳곳에 입주해 있다. 이 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 이 걸렸다. 1950년대에 개교한 중앙초등학교가 바로 그 시초다.

일본 사람들이 지어 건물 외관부터가 독특한 이 학교는 경제가 어 렵던 그 시절에도 교실에서 전시를 열 정도로 유명한 문화 공간이 었다. 이 인근에는 부잣집 마나님들이 지게꾼을 데리고 나와 골동 품을 수집했다는 상점들도 그 대로 남아 있다. 길 하나를 사 이에 두고 중앙초등학교와 마 주한 학고당(02-226-1-7888) 은 짧게는 50년부터 길게는 2 백50년 전의 골동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진품이 아니라 재현품을 파는 곳이니 부담 없이 들러봐도 좋을 것이다. 골동품 상점을 구경한 다음엔 예술의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뮤 직 박스’를 구경하러 가보자. 듣고 싶은 신청곡과 함께 사연을 적 어 포스트잇에 붙여두면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준다. 아트로드 프 로젝트(062-224-0907)가 선보이는 길거리 문화 행사인 뮤직 박 스는 언제나 운영하고 있으므로 신청곡 하나쯤 넣어보는 것도 추 억이 된다. 음악과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예술의 거리 초 입에 있는 사월(070-4126-6381)은 광주에서도 꽤 유명한 카페다. 이곳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도 좋다. 전시장을 둘러보느라 허기진 배는 광주밥집(062-376-0050)에서 달래보자. 서구 쌍촌동 1242-3번지에 있는 이 밥집은 그 이름만 들으면 ‘5천 원짜리 백반집’ 같다. 그러나 광주밥집은 생선회, 육 회, 삼합, 전, 두부탕, 호박죽까지 푸짐하게 한 상 잘 차려 나오는 ‘제대로 한정식집’이다. 세 명이 오든, 다섯 명이 오든 한 상 차 림에 12만 원. 모든 음식이 깊은 맛을 내기에 엄지손가락을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나 오는 찰밥은 살짝 구운 김에 돌 돌 말아서 싸 먹어야 한다.

1 일제강점기 때 지은 중앙초등학교.


2 예술의 거리의 터줏대감인 학고당.
3,4 예술의 거리에 입주한 작가들과 작업실 풍경.



광주에서 호텔 찾기
광주는 부산에 비해 특급 호텔이 거의 없다. 제일 좋은 숙소가 라마다 플라자 광주 호텔(062-717-7000)이다. 외국에서 귀빈이 찾아와도, 국내 스타가 공연을 내려 와도 무조건 ‘라마다’로 향한다.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홍보 대사 자격으로 초대받은 배우 장미희 씨도 이 호텔에 머물며 광주를 여행했다. 라마다 플라자 광 주호텔과 붙어 있는 마스터스 관광호텔(062-382-7700)은 광주에 흔히 있는 관 광호텔 수준의 숙박 시설이다. 잠자리는 평범하지만 주변에 맛집이 즐비해 여행객 이 하룻밤 머물기에는 적당하다. 그 외에도 무등파크호텔(062-226-0011), 호텔 히딩크콘티넨탈(062-227-8500) 등이 있다.

셋째 날 무등산에 올라 광주와 작별하기

‘마음으로 만나는 산’이라 불리는 광주의 무등산. 이른 새벽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광주와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날 아침엔 자연스레 눈이 일찍 떠진다. 조금 부지런을 떨어 무등산에 올라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일이다. 무등산은 예부터 ‘마음으로 만나는 산’이라 했다. 광주의 삶과 역사를 가장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증언자이자 그 역사를 말 없이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무등산을 보며 자란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을 향해 기도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곳에 올라 한숨을 내뱉고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다.

무등산 등반 후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산수화 속 키 작은 집’이라 불리는 의재미술관(062-222-3040)이다. 이곳은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미술관으로, 1891년 진도에서 태어난 의재 선생은 20세기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다. 선생은 무등산 자락 춘설헌에 기거하면서 수많은 명작을 완성했고, 시서화詩書畵 동호인 모임인 ‘연진회鍊眞會’를 조직해 광주가 예향의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선생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므로 꼭 한 번 들러보길 바란다.

미술관 순례를 마치고 나면 다시 시내로 돌아온다. 광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조선대학교 ‘교정 투어’가 이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의과대학 동문회에서 학교 발전을 위해 사비로 조성한 장미공원은 여행자에겐 꼭 돌아봐야 할 명소다. 장미 숲길에서 사진 한 장 찍어두는 것도 잊지 말자.

1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비밀의 성’ 같은 조선대학교 건물. 알프스 산장 같기도


2 조선대학교 내 명소, 장미공원,
3 창밖 풍경까지 작품인 의재미술관.

글 정세영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