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강에 백로 한 마리 발 담그고 있다. 정물처럼 미동도 않고 물속 들여다본다. 어지러운 물그림자 비늘처럼 흔들린다. 흰 물음표 순식간에 강물 한 점 쪼아 올린다. 물고기 한 마리 허공에 버둥거린다. 무어라 외치지만 들리지 않는다. 꿀꺽, 물고기의 일생을 삼킨 백로가 솟구친다. ‘끼룩끼룩~’ 죽은 비명을 산 노래로 바꾸며 날아간다. 깃털 더욱 희고 하늘 또한 더욱 파랗다. 선유도로 향하는 육교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모든 낡은 노래를 새 비명으로, 모든 녹슨 비명을 새 노래로 바꾸는 자연의 솜씨는 저렇듯 천의무봉天衣無縫(매우 자연스러워 꾸민 데가 없음)하다. 그런데 노래와 비명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한강의 하중도 선유도 공원, 카페 나루 2층에서 가수 최백호 씨를 만났다. 사람들은 그이를 “가을의 남자” 또는 “낭만 가객”이라 부른다. 저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이순과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가볍고 경쾌한 몸놀림의 청년이다. 반백의 머리만이 연륜을 짐작케 해준다.
“요즘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여기저기서 공연도 많이 하고, 심야에 라디오 방송도 진행합니다. 집에 돌아와 새벽 3시쯤 잠자리에 들어 오전 7시 반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네 시간 반 남짓한 수면 시간으로는 잠이 부족하지 않은지 묻자 오랫동안 밤에 활동하는 게 익숙해서 괜찮단다. 타고난 건강 체질처럼 보인다. “평소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하고, 골프도 칩니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골프 실력도 언더파를 치는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나이에 축구는 좀 과격하지 않을까? “‘송 버드’라고, 가수들 축구 모임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뛸 만합니다. 50대 중반 친구도 있긴 하지만, 제가 최고참이죠. 고참이라고 슬슬 봐줍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빛과 몸은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청년의 탄성을 감춘 근육이 당장이라도 의자를 박차고 튀어오를 듯하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니 더욱 그렇다.
“요즘에는 권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홍수환 선수하고도 한번 붙고 싶습니다.” “세계 챔피언 홍수환?” 환갑을 넘긴 나이에 권투를 배워 홍수환과 붙고 싶다고? 농담인가 싶어 얼굴을 쳐다보지만 웃음기는 없다. “이왕 시작한다면 최고의 선수와 붙어야죠.” 내면에 숨어 있는 근성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가 실행에 옮기지 않기를 바란다. 권투보다는 그림을 보고 싶다. 그는 가수지만, 개인전을 여는 화가이기도 하다. “가수이자 화가이자 만능 스포츠맨으로 참 다재다능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물주가 아주 많은 재주를 한 사람에게 준 건 아닐까요?” “여러 가지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다 잘하진 못하고 어중간합니다.” ‘소박’ ‘어눌’ ‘풋풋’ ‘시골스러움’ 등의 짧은 첫인상에 ‘겸손’을 하나 더 보탠다.
“팔방미인이란 한 가지 재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옛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엔 한 우물 파서 물이 안 나올 수도 있으니 여러 우물 파야 성공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가수로서, 화가로서 또는 아마추어 스포츠맨으로서 각각의 장르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서로 어떻게 다른지요?” “운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출발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도 예술과 다르지 않습니다. 장르마다 과정이 다를 뿐 일정한 경지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미술에도, 음악에도, 마라토너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 느끼는 ‘러닝 하이running high’와 같은 희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국영수는 유한하고, 음・체・미는 영원하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영원한 3종, 음악과 체육과 미술에 탁월한 재능이 있지 않은가.
(오른쪽) 오랜만에 만난 최백호씨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살집이 올라 있었다. 예순을 넘겼다고 하기에 그는 아직 너무 젊다. 몸도, 마음도.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에 흠뻑 빠져 만화를 따라 그리기 시작하면서 친구들한테 인기를 얻기도 했지요.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2009년에는 인사동 공화랑에서 ‘나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히 ‘나무’라는 주제에 천착하신 이유는요?” “언젠가 고향에 갔다가 어릴 적부터 보던 오래된 벚나무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시던 어머니와 함께 살던 학교 사택 자리였다. 사택은 사라지고 없지만, 나무들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가로수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라는 것이 숲 속에 있어야 하는데 도심 나무들도 고향을 두고 시골에서 도시로 온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은 바뀌어도 늘 한곳을 지키는 나무의 모습에서 ‘근원’을 보았다. 급속도로 변하는 세태에도 변하지 않는 원형 상징의 ‘닻’을 나무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는 도시 문명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문명은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발달해왔는데 실제로 그러한가 의문입니다. 옛날에는 일주일 걸어서 오던 길을 요즘엔 한나절 몇 시간 만에 옵니다. 그러면 엿새는 놀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바쁘게 지냅니다. 나는 컴퓨터를 싫어합니다. 컴퓨터가 인간관계를 망쳐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빛이 강하면 그늘이 선명하고, 그늘이 흐리면 빛이 약하다. 문명의 빛과 그늘을 저울에 얹으면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는 문명 이전의 공동체 사회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향수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사진가의 무거운 장비를 어깨에 메고는 “같이 듭시다”라고 말하는 중년의 남자. 최백호 씨는 ‘잘’ 늙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한국음악발전소 ‘최백호 소장님’ “SBS 라디오 프로그램 <최백호의 낭만 시대>에서 인기 DJ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라디오 DJ로서 느끼는 보람은 어떠한가요?” “제 프로그램은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합니다. 주 청취 대상은 대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입니다.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 밤에도 깨어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 혹은 집에서 혼자 계시는 분들,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힘들고 외로운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무해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요. 청취자들이 갖가지 사연을 보내옵니다. 3년간 백수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취직했다는 젊은이, 15년 만에 내 집을 장만해 이사 간다는 사람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하지요. 서민들의 애환에 귀 기울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성격입니다. 음악은 ‘귀로 먹는 약’입니다. 보람을 느낀다기보다 그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보면 오히려 내 자신을 치유하는 느낌입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벌써 3년 반째 장수하고 있다.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들을 위한 콘테스트 ‘색소폰, 인생을 연주하다’라는 코너를 마련해 크게 히트를 쳤다. 젊은이들보다 연세 든 분들이 많이 참가한다. 일흔여섯이나 되신 분이 1년 반 연습해서 3등을 하기도 했다. 매우 잘 불러서 ‘프로’의 느낌이 나는 사람은 오히려 탈락하기도 하는, 이상한(?) 그러나 인간적인 코너다.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라는 단체의 소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공식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지정 기부금 단체입니다. 시작은 한 원로 음악인에 대한 헌정 공연에서 비롯되었어요. 지난해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발표한 한명숙 선생님 50주년 기념 공연이 KBS홀에서 열렸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평생 음악인으로 살아온 원로 가수들의 삶을 기리고, 젊고 실력은 있지만 경제력이 없는 음악인을 후원하기 위한 기부 단체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와서 ‘한국음악발전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음악발전소를 결성 후 첫 번째 공연으로 지난 6월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 헌정 무대가 열렸다. 장소는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2천5백여 명의 관객이 왔고, 가요계의 호응도 좋았다. “제 콘서트 때는 표를 사달라고 하는 일이 다소 민망하지만 이건 떳떳한 일이다 보니 부끄럽지 않습니다. 여러 가수가 출연료도 받지 않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일반인의 정성 어린 후원도 답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앞으로 지인들이 자신의 전화를 잘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우려한다. “잠재적 후원자,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하신다면요?” “생각보다 힘들게 사는 음악인이 많습니다. 보통 TV에서 보는 음악인 들은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 90%의 음악인은 굉장히 힘든데 오직 음악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 들이 마음껏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주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두 번째 무대로 작곡가이자 트럼펫 연주가인 김인배 선생 헌정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극장이 정해지면 올해 안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데뷔 35년 차, ‘최백호는 가수다’ 가수 최백호, 1976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니 올해
35년 차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선생님이던 어머니 슬하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자랐다. 고교를 졸업하고 미대 진학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큰 충격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단다. 화장장에 이르러서야 눈물보가 터져 이틀을 울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그때의 심경을 담은 노래다. 그것이 노랫말이 될 줄도 모르고 메모해두었지만, 나중에 작곡가 최종혁 씨를 만나서 히트를 쳤다. 3개월 만에 6천 장이 팔렸다. 머리 깎고 훈련소로 가는 수많은 젊은이의 사랑을 받은 ‘입영전야’와 그에게 명예 포항 시민의 영예를 안긴 ‘영일만 친구’, 수많은 중년의 심금을 울린 ‘낭만에 대하여’ 등이 대중의 귀에 각인된 히트곡들이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란 노랫말은 실연의 상처인 줄 알았는데, 모친을 잃은 슬픔인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이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노래를 하나씩 꼽아보니 모두 ‘상실감’을 기조로 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어머니의 상실, ‘입영전야’는 친구를 군대에 보내는 이별의 상실, ‘영일만 친구’는 친구 홍수진 씨를 잃은 상실, ‘낭만에 대하여’는 첫사랑과 추억의 상실감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노랫말 속에 자리 잡은 근원 정서를 의식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전혀 생각지 않은 지적이란다. 물고기는 본래 물을 느끼지 못하는 법, 단도직입으로 물어본다.
“노래란 선생님께 무엇인가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천천히 말한다. “노래는 외로움이고 아픔이었습
니다. 노래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한 아픔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지 않았으면 가수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실감과 생계의 막막함이 그를 가수의 길
로 이끌었단다. “하지만 노래는 다시 위로이자 치유였습니다. 노래를 하며 내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노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성적 충동에서 찾고, 어떤 이는 감정 표출에서 찾고, 어떤 이는 집단 노동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장이다. 만약 바위를 간지럽혀 웃거나 두드려 울면, 바위는 심장이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간지럽혀 웃지 않고, 때려도 울지 않는다면 심장이 멈춘 것이다. 비명과 노래는 어디에서 왔을까. 웃음과 울음이 같은 가슴에 살고 있는 쌍둥이인 것처럼 그 둘도 심장에서 나왔을 것이다.
평생 노랫말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려주는 한 가객을 만났다. 아니다, 나는 한 명의 약사를 만났다. 저마다의 외로움과 아픔에 상처 입은 세상의 심장들에게 저이가 건네는 것은 ‘귀로 먹는 약’이다. 복용법, 간편하다. 당신이 아플 때 귀 기울이면 된다.
- [귀 기울여 들어보니] 한국음악발전소 설립한 가수 최백호 씨 노래는 나의 아픔, 노래는 나의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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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귀로 먹는 약’이라 부르며 35년을 가수로 산 최백호 씨. 목소리 하나로 사람들을 울고 웃게 했던 그가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를 설립하고 경제력 없는 음악인을 돕는 일에 나섰다. 이 가을, 그의 목소리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