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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인터뷰] CJ그룹 브랜드전략 노희영 고문 진정성있게 세상을 즐겨라
하는 일마다 세상의 이목을 끄는 컨설턴트 노희영 씨. 그가 작년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으로 취임해 ‘세상을 바꿀 만한 딴생각’을 시작하더니, CJ의 ‘푸드’를 소관하는 계열사들이 초심을 찾았고, 17개의 CJ 외식 브랜드가 하나로 뭉쳐 식문화 공간 ‘CJ푸드월드’를 선보였다. 가히 상상 그 이상이다.

구슬을 알아보는 안목, 구슬을 꿰는 기술
노희영 씨는 컨설턴트다. 식문화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인생의 조언자요, 집요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잡았다 하면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뚝심의 일꾼이다. 그가 만들어내거나 새로이 손을 봐서 세상에 내놓는 브랜드의 면면에는 서서히 진화해가는 그의 삶과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하지만 세상만사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법. 오랜 세월 생명처럼 여겨온 자존自存이,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스스로 단련되었으리라.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브랜드 마케팅의 귀재로 또다시 진화하는 그 삶의 궤적은 이렇다.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의사 자격도 취득했지만, 가지 않을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3개월 만에 과감히 떠났다. 돌연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지만, 의대 시절 해부도를 그렸던 실력이 전부였던 그는 창의력과 감각에 대하여 고민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졸업 후 단추 디자이너가 되어 한국에 입성해 제법 성공한 사업가 소리도 들었지만 이 자리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 끝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2년간 여행기고가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 후 맛과 비즈니스에 남다른 감각이 있었던 그는 푸드 컨설턴트로 ‘궁’ ‘호면당’ ‘느리게 걷기’ ‘트라이베 카’ 등을 선보이며 업계에 이름을 알리다 본격적으로 먹는 것부터 즐기는 것까지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컨설턴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오리온의 ‘마켓오’를 맡았을 때부터다.

(왼쪽) 노희영 고문에게 영감을 주는 엽서, 팸플릿과 책 등으로 빼곡한 사무실 전경.

실제 레스토랑 브랜드를 이용한 프리미엄 제과 브랜드 마켓오가 소위 ‘대박’ 나면서 오리온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고자하는 CJ그룹에 합류하여 브랜드전략 고문으로 비빔밥 전문 레스토랑 ‘비비고’ 등 전에 없던 브랜드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인생길도 길이건만 그는 매번 곧은 신작대로가 펼쳐지면 일부러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만 같다. 워낙에 변덕이 심하고 싫증을 잘 내는 성격 탓이라지만 그 흠은 오히려 그를 고인 물에서 썩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흐르는 물 따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랐더니 유수 같은 세월이 눈 깜짝할 새 이미 흘렀다. 그는 외식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거물이 되었다. 한데 천생 팔자 같은 변덕이 그를 또 진화의 길로 이끈다.

“변덕이 심해 여러 가지를 바꾸면서 살아왔는데, 늘 트렌드와 연결이 되어 제게는 ‘트렌드세터’라는 수식어가 꼭 붙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트렌드가 지겨워요. 요즘 눈에 띄는 것들은 죄다 복고적이고 빈티지한 것들이에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광고 문구는 ‘10년 돼도 새것 같고 새로 샀는데도 10년 같은’ 이라는 문장이에요. 그것이 바로 빈티지의 매력이거든요. 이젠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1 책상에는 늘 책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2 수납공간은 의외로 간소해서 다이어리와 책 등만 꽂혀 있다.


사람은 항상 가지 못한 길을 동경하는 법이라던가. 그에게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있으니 바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이 사랑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것. 어쩐지 대중적이기에는 ‘너무 튀는’ 그이지만, 평범한 것이 아닌 ‘즐기세요’를 화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담아내는 데는 그만한 이도 없을 듯.

“CJ에서 7개의 계열사가 모여 어떤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딴생각’이었죠. 월급쟁이끼리 뭔가를 만든다는 건 ‘누군가’ 책임지고 밀어붙 이지 않으면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CJ 회장님이 내게 기회를 줬느냐? 그건 아니에요. 그저 모두에게 ‘CJ의 푸드를 컨트롤하는 3개사의 4천 명이란 직원이 모였으니, 그 지하 아케이드에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나?’라는 화두를 던졌을 뿐이에요. 화두는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잖아요. 근데 ‘내가 하겠다’고 했죠. ‘백설’이란 구슬이 굴러다니고, ‘다시다’라는 소중한 것이 있었고. 오래 묵어 진정성 있는 것들이 내 눈에는 보였어요.”

오래된 것에는 그 안에 힘이 있는 법. 세월의 켜는 그냥 쌓이는 것이 아니란다. 그는 그것을 ‘진정성’이라 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곧 초심에 있기 마련이라고. 사람도 때를 벗고 다시금 순수해지고 싶다면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백설’을 가만히 관찰했더니 늘 우리 곁에 있었더라고요. 60여 년을 한결같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전통’이 있는데, 싫증나고 늙었다고 젊게만 바꾸면 그 속의 진정성은 다 사라지잖아요. 그게 아 쉬웠어요. 그래서 바로잡자 했죠. 로고도 정감 있게 전통을 살리고, 맛도 싹 다 리뉴얼했어요. 뚜레쥬르도 마찬가지예요. 뚜레쥬르의 처음 시작은 자연 친화적인 것이었어요. ‘우리는 밀가루부터 다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특색이 사라졌어요. 초심을 되 찾는 게 우선이었죠. ‘기본을 지키는 것’이 제 철학이거든요. 빵집은 빵집답고 스테이크집은 스테이크집다워야 하니까 뚜레쥬르며, 빕스며 식재료부터 담음새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챙겼죠.”

(오른쪽) 명함, 영수증, 지도,메뉴판 등은 물론 담음새까지 그림으로 그린 다이어리는 스크랩북이나 다름 없다.


CJ푸드월드가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의 놀이터가 되기를 바란다는 노희영 고문.


초심에서 시작되는 ‘세상을 바꾸는 딴생각’
“어릴 때 별명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였어요. 지금에야 연속극 재방송도 있고 그렇지, 옛날에는 한 번 놓치면 그만이니까. 혹여 놓치는 날이면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듣는데, 꼬치꼬치 눈에 보이듯이 들어야 했어요. ‘남자가 문을 연다. 담배를 껐다.’ 그리고 다른 얘기로 넘어가려고 하면 ‘그럼, 어떻게 껐냐? 재떨이에 비벼 껐냐, 마시던 종이컵에 넣어 껐냐’까지 물어보니까 애들이 ‘쟤, 또 시작이야’하며 혀를 내두르곤 했어요.”

호기심이 많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다 꿰고 있어야 했기에, 가려운 데 박박 긁듯 궁금증은 꼭 풀어야 잠도 푹 잘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영화 줄거리를 미리 다 알고 가야 한단다. 인테리어, 음식, 패션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걸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을 모르면 이야기를 따라가다 세심한 장치들을 놓치게 되어 영화를 본 것 같지가 않단다. 하물며 일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잠자기 전에 전 매장 매출을 전부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어요. 매출을 올려 ‘역시 노희영’이란 소리 들으면서 칭찬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브랜드 전략이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직원들이 신이 나지를 않잖아요. 기업에서 완성은 매출이니까. 이러쿵 저러쿵 변명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브랜드전략을 한 다음에는 레시피를 죄다 점검하고 매대 디자인까지 관여하고 쓴소리도 하죠. 말 그대로 오너십 마인드로 디테일을 챙기는 거죠.”

오너십의 밑바탕에는 책임감이 있다. 하지만 매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완성’보다는 우선 직원들의 놀이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곳이 있으니, 바로 CJ푸드월드다. 얼마 전에 쌍림동에 오픈한 이곳은 식품업계 최초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로 CJ의 17개 외식 브랜드들이 한 곳에 어우러진 식문화 테마파크. 외식은 물론 쿠킹 클래스, 쇼핑, 창업 상담까지 식문화의 모든 것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니 화제가 될 수밖에. 그런데 그는 이곳을 CJ 직원들의 구내 식당이라 이른다. 이곳에는 직원들의 긍지를 심고자 하는 속내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CJ푸드월드가 ‘짠!’ 하고 등장하니까 전에 없던 거라 여기저기서 관심을 많이 가져줘 고마웠지요. 그런데 이것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에요. 진정한 진화는 직원들이 CJ 제품으로 만든 음식을 즐기고, 그 맛을 평가할 수 있는 혀와 눈을 코를 가지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메뉴까지 개발하는 거죠. 고객이 와서 즐기는 것은 물론 이 곳이 직원들의 놀이터가 되기를 원해요.직원들이 주말이면 식구들을 데려와서 보여준다는 말을 들으면 막 흥분되는 거예요. 직원이 먼저 즐기고, 손님이 즐기면서, 최고의 식품업계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는 ‘맛’을 찾겠다는 의지를 CJ 직원들과 함께 불사르고 싶거든요. 초심으로 가서 말이지요.”


1 CJ푸드빌의 새로운 외식 브랜드 ‘제일제면소’.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면발의 식감이 최고다.
2 17개 CJ 외식 브랜드가 모인 식문화 테마파크 ‘CJ푸드월드’의 로고.


3 CJ의 모든 제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프레시 마켓’은 노희영 고문이 가장 좋아하는 곳.
4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들.


타깃은 더 이상 ‘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단다. 이제는 라이프스타일로 고객을 구분해야 한다고. 요즘은 음식도 인테리어나 패션과 묶여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사는 방식이요, 모양새다. 옛날에는 ‘주부’를 직업란에 쓸 정도로 ‘업業’이기도 했으나 요즘은 주부라는 직업은 없어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주부라는 호칭은 너무 많은 것을 대변해요. 요즘은 주부가 사는 삶이 사람마다 저마다 다르거든요.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빅뱅 콘서트에 가는지 안 가는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지 디지털을 좋아하는지… 이젠 특정 짓고 타깃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이젠 라이프스타일로 소비자를 봐야 해요. 그들은 제품을 그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브랜드로 자신만의 ‘라이프’를 만들어나가다 보니 우리가 먼저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에 관심을 끄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삶은 일과 여가에 구분이 없다. 그의 라이프스 타일이 그렇다. 큰 원이 그려지듯 일과 여가가 동그랗게 이어져 있어 요일도, 휴가 개념도 없다. 그렇다고 쳇바퀴 돌듯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말만 기다리는 여느 월급쟁이와 달리 일도 여가와 함께 그의 삶을 이루는 것이니 열심히 즐길 뿐이다. 다만 누군가 짜준 계획이 아닌 나름대로의 계획대로 움직인다.

“남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스트레스가 없어요. 하고 싶은 거다하고, 화날 때도 거침없이 화도 내니까 쌓일게 뭐가 있겠어요. 가장 나다울 때, 노희영은 노희영다울 때 마케팅도 힘을 받는 법이니까요. 그게 나의 진정성이에요.”

촬영 협조 CJ푸드월드(1577-9622, www.cjfoodworld.co.kr)

글 신민주 기자 사진 이우경,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