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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대가족 프롤로그] 상처이자 힘인 내 가족

윗세대로부터 삶의 경험과 지혜를 물려받을 수 있고,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 세금이나 작은 혜택이 제도로 정착되어 있다는 것,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 문제나 청소년 문제의 발생을 억제한다는 점 외에도 효孝를 바탕으로 하는 대가족 제도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가족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핵가족이 보편화된 우리나라에 살면서 대가족이 좋다 하면 욕먹고, 나쁘다 해도 욕먹기 쉽다. 효 사상과 더불어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전통이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나, 대가족의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던 윗세대의 권위 는 무너졌다. 경제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도권이 형성되면서 이에 따른 가족 내에서의 갈등도 심각하다. 사회구조와 함께 변화한 가족의 형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을 대가족이라 하는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우리 가족 형태에 대해서다. 아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으면 핵가족이고, 싱글이 한 부모와 살아도 대가족이라는 분류는 어쩐지 동의하기 힘든 구석이 있어서다. 흔히 분가해서 따로 세대를 이루었다고 해서 핵가족이라 부르는 모양인데, 그건 형태상의 분류일 뿐이지 내용상으로는 그렇지도 않다. 명절이나 제사, 상례와 혼례 등 거의 모든 인생사가 혈연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관습이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의 가족 대부분은 여전히 대가족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윗세대라 할 수 있는 부모 세대는 자식을 분가시키고 핵가족을 이루고 난 뒤에도 아랫세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며, 스스로도 핵가족으로 독립하려는 의지가 약한 편이다. 윗세대가 ‘핵가족과 핵가족의 수장 자리’에 있는 한, 우리나라의 가족은 핵가족과 핵가족이 긴밀하게 연결된, 이른바 변종 대가족이다. 결혼과 주거, 직장, 경제성과 효율성 등을 이유로 분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분화된 핵가족은 핵과 핵이 모여 원자를 이루듯 결국은 대가족 틀 안에 있기 마련인 것이다.

변종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핵과 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사회적 연대의 기본을 이룬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가족, 그중에서도 대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사회문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사회를 형성하는 기초 단위인 만큼이나 가족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농축된 집단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이해와 아량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손해를 보지만 누군가는 이득을 챙기며, 또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입는다. 감정의 앙금이 생겨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용서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경우도 잦다. 가족은 사회라는 큰 가족보다 훨씬 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 영역일 수 있다.

딸아들 합해 일곱 중에서 딱 중간인 넷째로 태어나고 자라서 아들만 넷인 집의 맏며느리로 30년을 넘게 살아왔으니, 나는 언제나 대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주장을 관철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불만이 있어도 여럿의 의견에 따르는 일에 익숙했다. 겸손이라고 하기에는 뭣한, 예의 같은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고나 할까. 여럿이 좋은 일이라면 내 불편은 참 아내는 것, 그것은 대가족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세였다. 내 뿌리 깊은 조심성과 소심증은 대가족의 틀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조심성과 소심증은 더러 급한 성미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을 제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가끔은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을 고질병이라 부른다.

대가족의 맏이로 살면서 소설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고, 이제껏 한 번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가족과 불화하고 반목하면서까지 큰 성취를 이룰 만큼 내 재능은 대단하지 않다는 결론에 미리 도달해버리곤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만큼 힘껏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의 힘이라 할 수 있으나, 그 힘은 이해와 조력이 아닌, 상처와 좌절로부터 얻은 것이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내려버렸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어 상이라는 걸 받을 기회가 있을 때에도 시상식에 가족을 초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껏해야 남편이 뒷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을 뿐이다. 별스럽지 않은 상을 받으면서도 가족이 대거 내빈석을 차지하고, 떠들썩하게 축하를 주고받는 광경을 볼 때면 부러워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른 일은 몰라도 글 쓰는 일만큼은 가족 누구도 관여하지 못하는 나만의 영역으로 고수하려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대가족 맏며느리로 살면서 터득한 궁여지책이다.

대가족 안에서 나의 실체를 꼭꼭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힘겨운 노력 끝에 얻어낸 결론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 약점을 콕 찌르며 충고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충고를 가볍게 듣고 있다. 가족은 나의 상처였지만 힘이었고, 나는 상처이자 힘인 가족을 떠나서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으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상을 받을 기회가 있으면 가족을 초대하겠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 ‘아니오’다. 모든 힘을 다해 사랑하지만 내 모든 것을 나눌 수 없는 가족. 이처럼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말이 또 있을까. 가족은, 특히나 여자에게 가족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글을 쓴 조명숙 씨는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났고,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한일 외에는 전업주부와 작가로만 살았다. 서울에서 잠깐, 부산에서 오래 거주하다가 지금은 낙동강 유역의 강마을 도요에서 여러 예술가와 함께 살고 있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농담이 사는 집>을 냈다. 2006년에 MBC 창작동화대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았고, 그림 동화 <샘바리 악바리>를 냈으며, <웹진도요>에 장편동화 ‘아기뱀 꼬물이’를 연재 중이다.


캘리그래피 강병인 자료 협조 걷는 책

기획 최혜경 기자 디자인 안진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