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재럿 THE Concert Koln
비가 오는 날, 밤인지 저녁인지 모를 그런, 어둑어둑한 때였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레코드 가게 앞에서 이 연주 앨범을 들었다. 컨템퍼러리 재즈가 뭔지, 키스 재럿이 얼마나 유명한지도 모르면서 단번에 뛰어들어가 이 음반을 샀다. 그때부터 이 음반, 한 곡이자, 백 곡인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비가 내리고 조금 행복해진다._유희경(시인)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나는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에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를 즐겨 부른다.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우선 이 노래 한 가락부터 뽑고 보는 것이다. 노래가 너무 길어 숨이 차거나 중간에 가사를 깜빡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묘약은 막걸리 한 사발이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지리산 골짝의 애환을 품은 시구가 가히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지리산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아니 한 번이라도 인생에 정면 승부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같은 심상에 젖을 것이다. 참 좋아하는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나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나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_배성동(기행 시인)
조하문 ‘같은 하늘 아래’
이제 와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때는 재수 시절이다. 수유리 집에서 학원이 있는 후암동까지 매일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졸기도 참 많이 졸았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조하문의 ‘같은 하늘 아래’를 듣다보면 어느새 학원 앞이었으니까. 버스에서 내려 정신을 차려보면 덜덜거리는 버스 창문에 기댄 한쪽 이마가 통통하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이제는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할 그때 그 시절의 소중한 추억. 조하문의 노래는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_김홍숙(<행복이가득한집> 아트 디렉터)
국보소녀 두근두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늙어서 노망이라며 비웃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레슨 시간이 내겐 아주 기대되고 행복한 시간이다. 요즘 배우는 노래는 국보소녀의 ‘두근두근’이다. 내겐 아직 수준이 높은 곡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완성해 나갈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내 심장은 피아노와 함께 두근두근 뛰고 있다. _이미나(홍보대행사 ‘커뮤니크’ 부장)
남진의 노래들
글쎄, 뭐 우리 세대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팝송 그런 거 모르니까 남진, 나훈아가 최고다. 잘생겼지, 노래 잘하지,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딱 그런 남자하고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나는 다른 노래 안 듣는다. 아들 놈이 남진, 나훈아 노래 컴퓨터에서 다운받아 가지고 만들어준 CD 틀어놓고 재봉틀을 돌리면 힘든 줄도 모른다. _김순자(굿모닝시티 지하 1층 수선실)
18명의 가수가 부른 ‘봄날은 간다’
아버지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술 한잔 걸치시면 어김없이 그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셨는데, 그 추억 때문인지 나 또한 이 노래를 참 좋아한다. 대한민국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무려 18명이나 된다는 것만 봐도 이 노래가 명곡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나에 집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어느 날에는 작정하고 18명이 부른 ‘봄날은 간다’를 모아서 CD로 구웠다. 백설희, 장사익, 한영애, 심수봉 등이 부른 ‘봄날은 간다’는 그 애환이나 서정이 미묘하게 달라 반복해서 들어도 참 좋다.
_박인식(<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저자)
에밀리 루아조 ‘I’m Alive’
아직 증조할머니가 살아 계시다. 미국 플로리다에 살고 계시는데, 2년 전에 1백 번째 생일을 맞으셨다. 선물로 뭘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드렸다. 프랑스 작가이자, 작곡가 겸 가수인 에밀리 루아조의 노래 ‘I’m Alive’ (그는 나처럼 혼혈이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고, 어머니는 영국인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국 배우 페기 애시크로프트다). 우리 아빠가 피아노를 치시고 내가 노래를 불렀는데 증조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내가 불러드린 노래처럼 증조할머니는 아직까지 살아 계시고, 여전히 교회에 나가 반주를 하실 만큼 건강하다. _알렉스 도연 브랜튼(재즈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의 딸)
해바라기의 노래들
친구도 오래 사귀면 정이 들 듯이 음악도 오래 들으면 정이 든다. 손님들 마사지할 때 조용한 음악이 좋으니까 해바라기 노래를 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해바라기 노래를 듣지 않으면 힘이 안 난다. ‘모두가 사랑이에요’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사랑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 같은 노래는 심신을 안정시켜준다.
_민주(압구정동 찜질방 ‘천지연’ 테라피스트)
인도의 명상음악
휘몰아치던 내 인생에 고요와 평안을 안겨준 ‘아주 긴 노래’ 하나. 티베트 친구가 선물해준 이 음악은 국내에선 구할 수도 없으니 이름을 언급할 이유도 없다. 그가 들려준 노래는 일종의 치유 음악인 만트라 Mantra였다. 23분이나 되는 긴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우주 어딘가를 떠도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수련을 하듯 이 음악을 듣곤 했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마음의 수양을 쌓았던 것 같다. _풍각쟁이 은진(가수)
잭 존슨 ‘Better Together’
대학을 졸업하고 단돈 20만 원을 들고 상경했다. 맨 주먹으로 시작해 스튜디오를 꾸리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제일 힘들었던 건,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등을 돌렸을 때였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서울에 올라온 게 다 그 사람들 때문이었는데…. 누군가 등을 토닥거려주길 간절히 원했을 때마다 나는 사람 대신 음악에 기댔다. ‘Better Together’, 이 노래 제목처럼 나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던 적 참 많았다. _하성욱(사진가)
인도의 명상음악 ‘Devi Chant’
‘내게 행복을 주는 노래’, 이 제목에 딱 맞는 노래가 있다. 40대 후반 ‘인도 느리게 걷기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리시케시 골목을 걷고 있는데 마치 운명처럼 이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그 우주적 울림이 내 심장을 건드렸다. 부드럽고 강렬하게. 인도의 명상음악 ‘Devi Chant’는 내 영혼을 조용히 위무해주는,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노래다. _이기웅(‘햇빛쉼터한의원’ 원장)
피시만스 ‘Night Crusing’
사실 일본 밴드 피시만스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땐 도무지 뭐가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노래는 뿌옇고, 우주만큼이나 텅 비어 있었다. 현기증이 나고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느렸다 빨라지고 높았다 낮아지는 불규칙한 멜로디의 반복. 그 매력을 젊은 시절엔 즐기지 못했다. 놀라운 건,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음악이 한없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나는 피시만스의 멜로디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시간의 흐름을 고통이 아닌 설렘으로 기다리는 법도 배웠다. 음악의 힘은 역시 위대한 것이다.
_김동영(여행작가)
가데카루 린쇼의 오키나와 전통 음악
여행을 가면 그 나라 전통 노래 음반을 꼭 구해온다. 10년 전쯤, 도쿄에 전시가 있어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누군가 오키나와 전통 노래 가수 린쇼의 노래를 들려줬다. 당시만 해도 오키나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음악에 매료돼 그 지역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그곳은 일본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왕조 문화를 가진 섬나라였다. 그렇게 우연히 인연을 맺은 린쇼의 음악은 한동안 잊혀졌다가 지난봄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오키나와에 갔다가 나하시장에서 들려오는 린쇼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된 것이다. 내가 잠시 그의 존재를 잊고 지내던 사이, 그는 더욱 강건한 목소리, 흥겹지만 반듯한 노래로 나를 반겨주었다.
_이진경(쌈지농부 아트 디렉터)
영화<서편제> OST
대학을 갓 졸업하고 소설가 이청준 씨와 함께 3박 4일간의 남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바닷가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던 소리꾼으로부터 처음 남도소리를 들었고, 이청준 씨는 남도 지역의 정서와 한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영화 <서편제> OST를 들으면 남도 바다 여행과 사람들의 추억이 떠올라 감상에 젖어든다. _이종국(한지작가)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극보수’ 개신교 목사의 아내로 살아온 엄마는 생의 숨통으로 조용필의 노래를 품었다. 교회당에선 거룩하게 찬송가를 불렀지만 거실 전축에는 늘 조용필의 카세트테이프가 꽂혀 있었다. 철야 기도회가 있는 날 <조용필 리사이틀>에 가기 위해 엄마는 친구의 재혼식(!)을 빙자했다. 앙다문 것 같은 목소리, 다 내지르지 않는 창법이 왜 좋은지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의 엄마처럼,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어지기 시작하고서야 난 그의 노래를 품게 됐다. 특히 ‘그 겨울의 찻집’. ‘우려낸다’는 게 딱 맞는 그 목소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오는 걸까’란 뜨거운 노랫말.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_최혜경(<행복이가득한집> 기자)
알렉산더 멜리코프의 연주곡
건축도 마치 음악처럼 하나의 ‘교양’으로 받아들여진다. 클라이언트와 감성을 공유하며 작업하는 내게 클래식은 무한한 영감을 준다. 음악에는 무궁무진한 디자인이 있고, 오브제가 있다. 정신 없이 바쁘고 지칠 때일수록 알렉산더 멜리코프의 음악은 더 크게 와 닿는다. _최시영(건축가)
아이언 앤 와인 ‘Jesus the Mexican Boy’
스스로에게 한 달의 시간과 여비를 쥐어주며 물었다. 자, 어디로 떠날래? 그랬더니 저 속에서 답했다. 아주 더운 나라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 어느 여름 나는 그렇게 마이애미로 떠났다.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이라곤 해변에 누워 눈을 감고 단백질이 낀 렌즈를 이리저리 굴리며 노는 것뿐이었다. 유일하게 소통이란 걸 했다면 나의 이상형, 나의 털보 아저씨 아이언 앤 와인(샘 빔)의 노래를 들은 것뿐. 그의 노래 ‘Jesus the Mexican Boy’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아, 참고로 그는 마이애미대학교 사진영화과 교수다.
_정세영(<행복이가득한집> 기자)
-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뽑은 내게 행복을 주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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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커피 믹스’뿐인 세상. 음악마저 없었다면 우린 모두 재가 되었겠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고독할 때나, 음악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뜨겁게, 열렬하게 살아온 당신. 이 여름, 문득 ‘당신의 노래’가 궁금해진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