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원래 지도에 없던 도시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물자 수송을 위해 철도를 만들고자 바다를 메워 만든 곳이 지금의 중앙동이지요. 중앙동을 중심으로 번져나가 도시로 발전한 게 부산의 시초입니다. 부산은 다른 도시를 위한 매개체 역할만 했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 적이 없어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부모님이 피란민촌에서 저를 낳았고, 저는 ‘이방의 도시’ 부산을 그대로 보고 느끼며 자랐죠. 피란민촌은 이후 부산의 주거 형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태극마을이라 불리는 감천동 문화마을도 과거엔 중앙동 바로 위 부민동 산동네였어요. 겹겹이 주택이 쌓인 판자촌 풍경이 아직도 부산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또 바다 가까이 언제든지 배를 타고 떠나기 좋은 곳에 집을 지어 선형 도시가 형성되었어요. 해운대, 광안리 등 해안 일대에 발달한 아파트 단지는 선형 도시로서 자라난 부산의 면면을 보여줍니다. 부산이 골고루 발전하려면 ‘도시 중심부 재생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을 함께 조명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외국의 경우도 외곽에 고층 건물을 마구 짓다 도시 재생 계획으로 되돌아 가는 경우가 많아요. 도심 전체를 계획하는 것이 미래 부산을 위한 건축이라 생각합니다.”
승효상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종합 건축사 사무소 이로재의 대표인 승효상 씨.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자신의 사무소인 이로재를 1989년에 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를 무대로 작업 활동을 활발히 진행해온 그는 구덕교회, 부산극동방송 등을 설계했다.
1 감천동 문화마을
감천고개에 서면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을 따라 지붕 낮은 주택이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닮았다. 레고 블록을 쌓은 것처럼 알록 달록한 이 마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감천초등학교 근처. 푸르고 빨갛고 노란 지붕이 물탱크와 어우러져 건축가가 공들인 공간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마을은 ‘예술 도시 프로젝트’ 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문의 070-4219-5556 주소 사하구 감천2동 태극마을
2 유년의 추억, 구덕교회
건축가 승효상 씨에게 구덕교회 마당은 놀이터였고 종탑의 다락은 공부방이었다. 그는 교회 마당의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예배당에 엎드려 마지막 기도를 하고 구덕교회와 이별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후 승효상 씨는 낡은 구덕교회를 새로 짓는 역할을 맡았다.“집을 나서서 교회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가 예배의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승효상 씨는 교회를 찾아오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교회로 향하는 마당과 길, 이어지는 지면과 다른 레벨의 덱, 십자가와 빛의 침묵 등은 모두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되었다. 골목부터 찬찬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문의 051-255-1304 주소 서구 서대신동 3가 539
3 임시 수도 대통령관저
부산이 임시 수도였을 때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던 건물. 도지사 관사로 쓰이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 됐다. 서양식과 일본식 건축 양식이 결합된 목조 건물로 도지사의 대외 활동을 위한 대현관 大玄關과 응접실은 서양식으로, 침실이나 부엌 등 주거 공간은 일본 전통 가옥으로 꾸며졌다. 현재까지 보존이 잘돼 있어 건축 자료는 물론 역사 공부를 위한 학습 현장으로도 추천한다.
문의 051-244-6345 주소 서구 부민동3가 22
4 복합 전시 컨벤션 센터, 벡스코
해운대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벡스코는 복합 전시 컨벤션 센터로 국내에서 유일한 단층 무주 單層無柱 (건물 중간에 기둥이 없는) 전시장이다. 전면을 강화 유리로 설계해 미래적 이미지를 형상화했고 2002년 월드컵 조 추첨, APEC 정상회의 등 국제 행사를 수 차례 치렀다. 2012년엔 오디토리움과 제2전시장을 완공해 지금 면적의 2배 정도로 넓힐 예정이다.
문의 051-740-7300 주소 해운대구 우1동 1291
5 공공 미술 프로젝트, 안창마을
60년 세월만큼 굽이진 골목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동네. 한국전쟁 때 가파른 수정산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피란민촌으로 아직까지 당시 판자촌이 남아 있다. 안창마을은 2007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마을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작품으로 회색 건물 벽에 수박 넝쿨이나 탐스러운 꽃, 노는 아이 등을 천연색 스프레이로 그려 넣어 마을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주소 동구 범일동 1513
6 최초 여학교, 부산진일신여학교
부산ㆍ경남 지역에 생긴 최초의 신여성 교육 기관인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905년 호주 선교사들이 건립 했다. 건물은 1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1백여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로서 비례와 균형미가 돋보인다. 부산시 기념물로 지정된 뒤 지붕과 교실, 벽체, 담장 석축 등을 보수 정비했고, 내부는 1백 년 전 신교육을 받던 여학생들의 생활과 3·1운동 자료, 근대 기독교 자료 등을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꾸몄다.
주소 동구 좌천동 768-1
7 소통하는 건물, 부산극동방송
기독교 복음 라디오 방송인 극동방송이 센텀시티 안에 새로운 부지를 마련했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주변의 고층 건물을 고려한 건축 계획을 세웠다. 방송국은 고층 아파트가 있는 북쪽에 배치하고, 넓은 면적의 공개홀은 저층 건물이 있는 미디어 산업 단지 측으로 배치해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 내ㆍ외부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유리를 사용하고 경량 콘크리트 패널을 리듬 있게 배치했다.
문의 051-759-6000 주소 해운대구 재송동 1208
- [부산_문화기행]건축가 승효상 씨 추천 타임머신 타고 떠난 건축 기행
-
건축가 승효상 씨는 한국전쟁 때 부산 피란민촌에서 태어났다. 과거 ‘스스로를 위한’ 도시로 제 역할을 못해본 부산에서 인생 3분의 1을 보낸 건축가는 고향의 추억을 작품에 반영한다. 그가 직접 설계한 부산의 현대 건축물은 물론 유년 시절을 더듬으며 찾아본 역사 속 건축물까지. 건축가 승효상 씨와 타임머신을 타고 부산 건축 기행을 떠나보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