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 냄새 같은 기운이 감도는 수정동의 양옥집 지하, 이제 노구가 된 전축 바늘이 LP 위에서 찌그덕 찌그덕 먼지를 일으킨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노래,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해풍에 반질반질 씻긴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트로트 한 자락에 그리움이 살팍지게 담긴다. “이 노래 다 알지예? 금순이가 실존 인물인가 아닌가 그걸 한 1년 동안 찾아 헤맸어예. 흥남부두에서 출발한 배가 영도다리 근처 왔으면 영도에 터전을 잡았을 거다, 그래서 그 옛날 전화번호부에서 금순이 이름을 찾고, 영도구ㆍ서구ㆍ중구의 호적을 다 뒤지고예. 그다음에 이제 금순호라는 배가 있나 없나 이런 것들도 선급협회 기록을 찾아보니까 있더라고예. 작사자도 찾아 댕겼지예. 작사자가 그 얘기를 하대예. ‘그 영도다리 옆 항구 다방에서 파이프를 탁 물고 뭔가 생각하고 있는데, 영도다리 밑으로 금순호라는 배가 지나가더라. 그래서 저걸 딱 보고 ‘아! 쓰자’ 이래가 ‘굳세어라 금순아가’ 나왔다.’ 그 얘기만 딱 해주대예.”
박명규 교수는 10년 넘게 대중가요, 특히 바다와 관련된 노래(그는 ‘해양가요’라 부른다)가 담긴 LP를 수집하고, 그 노래에 숨은 서민들의 삶, 조선ㆍ해운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가 수집한 대중가요 LP만 5천 장이 넘고, 그중 2천여 장이 해양 가요다. 사실 그는 한국해양대학교 조선해양시스템공학부의 교수이자, 전공이 ‘선박설계’로 20여 척의 대형 선박을 설계하고 국토해양부와 여러 조선소의 기술 자문을 하는 자칭 ‘배쟁이’다. 그런 그가 우리 대중가요에 담긴 이야기를 좇기 시작한 사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이 젊을 때 영화배우를 꿈꾸셨는데, 돌아가신 후 유품을 챙기다 보니까 레코드판이 꽤 많았어예. 주로 일본엔카 아니면 흘러간 옛 노래였는데, 그걸 정리하다 ‘마도로스 박’이란 레코드판이 탁 튀어나오데예. 그래서 다른 판도 들여다보니까판 한 장에 거의 한 곡씩 마도로스 노래가 담겨 있는 거라예. 우리 가요에 마도로스 노래가, 바다 노래가 많은 게 필시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데예. 그래가 그때부터 레코드판을 수집하고, 자료를 모으게 됐지예.”
그는 LP를 구하러 마니아들도 찾아다니고, 제작사를 스무 군데 이상 돌기도 하고, 가수와 작사가를 수소문해 만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처음엔 가수를 만나는 게 꽤 힘들데예. 전화를 해도 탁 끊어버리고. 그래가 먼 친척 중에 연극배우 하는 손숙이라는 분을 찾아가 도와달라 했지예. 그분이 반야월 선생님을 소개해 주대예. 반야월 선생님은 처음엔 왜 이런 걸 하느냐, 노래는 노래로 끝나는 거 아니냐고 하시다가 내가 이 노래엔 이런 이런 사연이 있다고 조사한 걸 보여드리니 ‘맞다. 이런 걸 해놔야 후대에 전할 수 있다. 참 감사하다’ 하대예.” 그가 나팔관이 달린 에디슨 전축 위에 SP 레코드(LP가 나오기 전에는 사이즈가 작고 1분간 78회전하는 SP가 있었다. 일명 ‘돌판’) 한 장을 건다. 세 평도 안 되는 방 안에 가요 한 자락이 울려 퍼진다. 가끔은 끈적끈적한 진액처럼 흐르기도, 가끔은 쿵짝쿵짝 젓가락 장단 두드리게 만들기도 하는 묘한 노래다. 감상에 취한 우리를 기꺼워하며 그가 LP 몇 장을 보여주는데, 다른 마니아의 것과는 좀 다르다. LP를 열면 그 안에서 수많은 종이가 쏟아져 나온다. 노래 가사와 관련된 신문 기사, 사진, 그 자료를 바탕으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그의 노트 등이 LP 재킷 사이에 빼곡히 들어 있는 것이다. ‘박명규 교수만의 비밀 노트’.
(왼쪽) 그를 대중가요 수집의 길로 들어서게한 ‘마도로스 박’.
(오른쪽) LP 안에 그 노래와 관련된 기사, 사진을 모아뒀다.
“그냥 취미라예. 어떤 레코드판을 봤을 때 그중에 바다 노래가 있을 거 같으면 ‘아, 이거다!’ 싶고, 그 노래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 있나 궁금해지네예.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 노래를 예로 들까예? 1943년 목포항 앞바다에서 연합군들 폭격받아가 침몰된 화물선 푸르트 호를 1951년부터 인양하기 시작했어예. 인양 작업을 위해 목포에 파견된 기술자들이 목포 아가씨들하고 살림을 차렸는데, 이듬해 그 배를 수리하려고 부산으로 현장을 옮긴 거라예. 기술자들의 애인, 부인도 부산으로 따라왔지예. 목포 처자들이 낯선 부산 땅에서 ‘목포는 항구다’로 향수를 달래며 산 거지예.
이런 거 알아내는 게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들지만 재미가 좋아예. 바다 노래가 이래 많은데 논문이 하나 없나 해가지고 192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마도로스 노래가 나온 걸 연대별로 집대성해보기도 했어예. 그게 ‘우리나라 해양 가요 속의 마도로스’ 같은 논문이라예. 해상 사고 관련된 노래도 연구하고 있어예. 제가 선박 설계를 하려면 배의 발달사나 해난 사고의 원인도 알아야 하는데예. 바다 관련 LP를 시대별, 종류별로 구분해보니까 노래에 늘상 시대적 상황이 들어 있어가 우리 조선 해운의 변천사도 담겨 있더라고예.
1967년 한일호 사건이 나고 ‘비운의 한일호(김정애 노래, 백년초 작사, 최명진 작곡)’가 만들어지고, 몇 년 전에 천안함 사건 이후엔 ‘귀항하라 천안함(최용복 노래, 김경철 작사, 작곡)’도 나왔어예. 그런 걸 연구한 글은 <예술부산>이라는 잡지에 연재하고 있어예. 힘들 거라고예? 재미있어예. 요즘에 영화 <7광구>가 개봉했지예? 찾아보니 1970년도에 정난이라는 가수가 ‘제7광구’라는 노래를 불렀어예. 그 노래하고 이 영화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찾다가 배우 하지원 씨하고 통화도 했어예. 참 참하데예.”
저녁마다 녹슨 전축을 틀고 협궤열차처럼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마음을 풀어놓는 박명규 교수. 오래된 가요에서 시장통 아낙네의 젓갈 냄새를 맡기도, ‘수고했다’ ‘쉬어라’ ‘모레 보자’ 마도로스의 외침을 듣기도, 금순이를 만나기도 하며 바다 노래에 풍덩 빠져 산다. 그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항구에는 이별이 없고, 이별이 없으니 손수건에 눈물 찍어 우는 슬픈 여인도 없지만, 그 노래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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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노래한 노래 광복동 거리/구포를 찾으세요/굳세어라 금순아/귀국선/남포동 네거리/남포동 마도로스/남포동 소야곡/눈물의 부산 항구/눈물의 영도다리/다대포의 꿈/다대포 처녀/돌아와요 부산항에/부산 가시내/부산 꽃순이/부산 사나이/부산 아지매/부산은 내 고향/부산에 살리라/부산은 부른다/부산을 떠나야지/부산이여 안녕/비 내리는 충장로/아메리칸 마도로스/안개 낀 부산항/울며 헤진 부산항/을숙도/이별의 부산정거장/자갈치 아지매/자갈치 왈순이/저무는 국제시장/추억의 광안리/추억의 서면 로타리/태종대 에레지/한 많은 오륙도/해운대야 말해다오. *이 외에도 1백50 곡 이상 더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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