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이 쑥잎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그림 같다. 주영이, 유라는 행복이(장애 아동의 인권을 위해 가명으로 기재합니다)와 공원 뜰을 낙서처럼 뛰어다닌다. 신희년·황광식 씨 부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웃음을 문다.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 (인천 연수구 자원봉사센터의 가족 봉사 모임 1기)이 장애인 영유아 시설인 동심원 아이들과 만나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이 가족은 행복이와 소풍 같은 하루를 보낸다. 자폐 아동인 행복이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6년째 인연을 잇고 있는데, 이제는 수레처럼 어느 바퀴 하나 없으면 안 되는 가족이 됐다.
이날은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이 결연한 동심원 아동들과 수상 택시를 타고 송도국제도시 중앙공원의 인공 수로를 구경하는 날이다. ‘놀토’에 하는 모임이어서 모두들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로 생각한다. 일대일 결연을 맺고 피붙이처럼 살가운 관계, 바로 가족이 되었으니 오늘 나들이는 정말 ‘놀토’의 가족 나들이다. “행복이가 우리와 마음 통하는 사이가 된 지, 우릴 보고 웃고 눈도 마주치게 된 지 채 1~2년이 안 됐어요. 처음엔 얼굴도 마주 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으니까요. 살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접한 적이 별로 없어 남편과 저도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어요. 하지만 주영이와 유라는 제 동생인 양 거리낌 없이 행복이를 대하더라고요. 행복이가 지금은 함께 만나는 날 봉사자 가족 중 빠진 아이를 용케 찾아내 ‘성룡이 형아가 안 왔어요’ 하고 툭 던지고 갈 만큼 대화도 돼요.” 아내 신희년 씨의 표정이 아주 흐뭇하다.
(왼쪽) 이 가족과 행복이의 인연을 이은 사람이 막내딸 유라다(노란색 옷).
(오른쪽) 11세 행복이는 글을 배울 정도로 인지 발달이 빨라지고 있다.
이들이 가족 봉사를 시작하게 된 내력은 막내 유라에서 시작됐다. 남과 더불어 사는 걸 모태 신앙으로 갖고 태어난 사람처럼 유라는 배려심이 깊고, ‘내가 참고 마는 것’도 잘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장애우의 식사 도우미 당번을 도맡아 자청하기도 했다. 가족이 함께 봉사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이가 계속 꺼내자 신희년 씨는 사심 좀 보태 봉사활동 점수도 딸 요량으로 어린이재단 한사랑장 애영아원을 함께 찾았다. 그곳에서 연수구에도 가족 봉사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수구 자원봉사센터에 신청을 했더니 1년만에 자리가 났다. 그렇게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의 일원이 되어 동심원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고 행복이를 만났다.
(오른쪽) 신희년·황광식 씨 가족. 그리고 일대일 결연으로 가족이 된 행복이(장애 아동의 인권을 위해 행복이의 얼굴과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행복이를 만나는 그 시간을 가장 많이 기다리는 사람도 유라예요. 만나는 날짜가 다가오면 잊지 말라고 엄마에게 귀띔까지 하죠. 행복이를 만나러 혼자 동심원에 들르기도 할 정도예요. 한 번은 동심원에 전화를 걸어 ‘봉사 점수 안 받아도 되니까 동심원에 가서 애들하고 놀게 해주세요’ 하더라고요. 주영이도 행복이를 유달리 귀여워해서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내기도 해요. 유라나 주영이는 장애아를 만났다기보다는 그냥 자신보다 나이 어린 아이, 동생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아이들은 그래요. 예전에 우리가 결연을 맺은 아이 중 손의 일부가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얘들은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어른인 우리만 또 허둥댔지. 유라는 ‘이 애기 손 너무 부드러워’ 하고 손잡고 놀러 가더라고요.” 아이들은 풀밭에 장미도, 애기똥풀도, 클로버도 있는 것처럼 그저 세상에는 몸이 좀 불편한 아이도,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산도, 구름도 어깨동무하고 몰려 다니는 것처럼 사람도 사람과 어깨동무하며 몰려 다니면 되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 틀리지 않다.
“가족이 오랫동안 함께 봉사하려면 봉사활동할 때만큼은 아이가 ‘대장’이 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성인이 되면 이해관계가 없는 낯선 이와 만나서 한 뜻으로 활동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알고 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은 수줍은 데가 많고, 다른 가족과 어우러져 봉사하는 게 생색 내기 같아 부끄럽다며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럴 때 아내가 강권하거나 설득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만 아이가 적극적이라면 아빠도 마지못해 따라오게 돼요. 아이끼리 더 빨리 친해져 어렵지 않게 ‘대장’이 될 수 있고, 가족 봉사도 오래 지속되죠.”
(왼쪽) 대학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들 주영 군과 대전에서 근무하느라 주말부부로 살지만 행복이를 만나는 날만큼은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황광식 씨.
주영이가 14세, 유라가 11세 때 행복이를 처음 만났는데 지금 주영이는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대학생이 됐고, 유라는 입시 전쟁을 앞 둔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행복이를 만나러오는 일만큼은 빼먹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짬, 숨 쉴 수 있는 시간인걸요.” 대체 이 부부는 신에게 어떤 공을 쌓아 이런 아들딸을 갖게 된 걸까.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성자로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행복이를 만난 후 서로 부딪히고, 또 달래면서 세상이 자기중심으로만 돌아가면 안 된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은 것 같아요. 서로 쓰다듬고, 스스로 깨우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가족 봉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보물입니다.” 이 부부도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배려, 인내, 용기를 되새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의 무신경함, 이기심, 실수를 일깨우는 아버지 같은 아이들.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결연 아동과 함께 무료로 개방하는 도서관에서 음악회도 열고, 생태 공원도 가고, 풍선 만들기도 배우고, 영화도 본다. 회원 중에 학교 선생님들이 있어서 과학실을 빌려 체험 학습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대회도 연다.“웬만해선 봉사 모임에 빠질 수가 없어요. 우리 가족이 안 가면 행복이가 다른 가족 사이에서 혼자 섬처럼 있을 텐데, 그 재미난 활동을 함께해줄 형과 누나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떻게 빼먹어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와서 아이를 만나려고 해요.” 직장이 대전이라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황광식 씨도 이날만큼은 만사 제치고 행복이를 만나러 온다.
(오른쪽) 이날 동그라미 가족봉사단은 수상 택시를 함께 탔다.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 총 14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사실 취재를 위해 이 가족을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열심히 봉사하는 가족이 무척이나 많고,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는 게 진심을 해치는 일 같다고 겸손히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아마 세상의 ‘진짜 착한 가족’들은 대개 이와 같을 것이다. 이들은 봉사가 자신들보다 어려운 약자를 구제하거나 자선을 베푸는 게 아니라, 또 한 사람과 ‘서로 기대기’라고 생각한다. 쑥잎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념사진 한방 찍는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을 바라보며, 오늘 이들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를 생각했다. 그 메시지는 아동문학가 한상순 선생의 동시 ‘서로 기대기’와 통한다. “ ‘자, 내게 기대봐.’ 무화과나무가 넝쿨장미에게 어깨를 살포시 내밀었습니다. 꽃 없는 무화과나무에 기대 장미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이 다 지고 가시가 세어질 때쯤 열매 없는 장미 넝쿨에 무화과 열매 조랑조랑 달렸습니다.”
가족 봉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신청하세요
아이들과 함께 봉사할 곳을 찾는다면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가족 봉사단에 가입하세요. 2인 이상 가족이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건강가정지원센터 가족봉사단입니다. 한 달에 1~2회 활동을 하며 지역별로 활동 내용이 다양합니다. 보육원, 양로원 등에서 가족 봉사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새터민 가족, 다문화 가족처럼 소외된 계층을 지원하는 활동, 농어촌 돕기, 재활용품 수집, 담벽 칠하기 등 아주 다양합니다. 1577-9337로 전화하면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센터로 연결해줍니다. www.familynet.or.kr로 접속해 가까운 지역 센터를 검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족 봉사단은 센터별로 연중 모집하거나 모집 시기가 정해져 있어 우선 가까운 센터에 문의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외에도 부모와 조부모, 부부, 조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친척과 같이 등 다양한 형태로 가입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가입은 받지 않습니다. 자원봉사 인증서가 발급됩니다.
전국 자원봉사센터에서도 신청할 수 있어요
전국 시도, 시군구에 2백48개가량 설치된 자원봉사센터를 통해서도 가족 자원봉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희년·황광식 씨 가족도 연수구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모인 가족 봉사 모임에서 행복이와 일대일 결연을 맺었습니다. 자원봉사센터는 가족 봉사뿐만 아니라 개인과 단체의 봉사도 지원하므로 프로그램을 찬찬히 살피면서 우리 가족에게 맞는 봉사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전국 어디서나 국번 없이 1365로 전화하면 됩니다. www.kfvc.or.kr에서도 신청 가능합니다.
다솜이 가족 자원봉사도 좋아요
교보생명의 재단법인인 다솜이재단에서 주관하는 다솜이 가족 자원봉사는 이웃을 위해, 농촌을 위해, 환경을 위해 가족이 함께 봉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대개 봄에 2회, 여름에 3회, 가을에 2회, 겨울에 2회 정도 봉사활동을 진행합니다. 계절별로 프로그램이 달라지는데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서 에코테라피 및 가드닝 봉사, 독거노인과 함께하는 여행,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 등 매우 다양합니다. 참가 동기 등이 기록된 신청서를 심사해 2배수 선발한 후 추첨을 통해 최종 선정합니다. 참가 신청은 가족당 최대 5명까지(5인 이상의 가족일 경우 별도 문의) 할 수 있습니다. 1인당 5천 원의 참가 후원금을 내야 하는데, 이 후원금은 환경보전과 사회복지를 위해 가족의 이름으로 기부됩니다. 자원봉사활동 확인서가 발급됩니다. 문의 02-925-8925, nanumfamily.kbed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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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협조 동그라미 가족 봉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