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은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10년마다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 매년 열리는 바젤 아트페어가 한 해에 열린 기록적인 때였다.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미술 축제의 황금기였던 것. 며칠 동안 나는 유럽 미술 기행을 고민하다 그 계획을 아내 앞에 꺼냈다. 미술 축제의 현장을 여행하고 싶은 건 화가로서, 교육자로서 예술의 본고장을 느끼고픈 욕구와 의무감 때문이었다. 유학 시절에 여유가 없어 가보지 못한 스페인 구엘 공원과 지중해 연안도 가족과 함께 둘러보고 싶었다. 가족은 내 그림의 주제이자 모티프를 제공하는 최고 자산, 내 존재 이유니까.
온 가족 만장일치로 여행이 결정된 후 아내와 함께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거나 새로운 행사가 진행 중인 미술전을 중심으로 답사 지도를 그렸다. 결국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바젤 아트페어, 스페인 로카 그로사 캠핑장, 구엘 공원을 비롯한 가우디의 건축물들,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 아를의 고흐 카페 등을 거치는 여정이 되었다. 독일에서 시작해 40일 동안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넘나든 우리 가족의 미술 여행! 긴 여정을 다 쓸 수 없으니 오래 남은 기억의 편린 몇 개만 소개한다.
(왼쪽) 지금은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신하순 교수 가족.
고흐의 흔적을 찾아 아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속 장소를 꼭 찾고 싶었다. 프랑스 남동부의 아를, 고흐가 좋은 작품을 그린 시기에 살던 그 도시로 캠핑 카를 몰았다. 아를 시내의 골목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눈앞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바로 그 ‘고흐 카페’였다. 카페의 탁자에는 해바라기를 꽂은 꽃병이 놓여 있고,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의 밤 풍경을 연상시키는 풍광이 펼쳐져 있었다. 노란색 벽면에는 상점 주인이 썼음 직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이 선명했다.
“이곳에서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리면서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에 그는 무명 화가여서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자신의 흔적을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인생 자체가 경이롭다고 할까! 고흐의 그림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어. 수십 년 후 네덜란드 정부와 유족이 세운 ‘고흐 미술관’을 시작으로 고흐의 그림은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진입했지.” ‘미술 가족’다운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노란색 카페를 드로잉하기 시작했다. 고흐는 카페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밤하늘을 묘사했는데, 나는 화가가 새처럼 떠올라 허공에서 풍경과 대상을 내려다보는 부감시 俯瞰視로 카페를 그려나갔다.
(왼쪽) 신하순 교수가 그린 ‘선물’. 수환이가 캠핑장 꽃밭에서 꽃을 꺾어 누나에게 선물했다.
(오른쪽,아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속 실제 카페. 그림은 신하순 교수가 자신의 시점으로 그린 ‘고흐 카페’.
베로나의 ‘벨라 이탈리아 캠핑장’
이탈리아에서 첫 아침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 한국에선 한창 잘 시간인데, 우리도 캠핑족이 다 된 모양이다. 일찍 밥을 먹었더니, 군것질 생각이 간절했는지 첫째가 제 엄마를 졸라 10유로를 받아냈다. “걱정하지 말고 슈퍼에 가서 과자 사오면 돼.” 잠시 머뭇거리던 첫째. 곧바로 둘째에게 말을 붙인다. “수환아, 같이 갈래?” 조금 뒤에 아이들은 과자를 사들고 왔다. “쉬워. 과자 들고 돈 내밀며 ‘How Much’라고 하면 돼.”
첫째는 의기양양했다. 수환이가 있어 용기가 났단다. 첫째의 마음속에 ‘해냈다’라는 자신감과 동생에게 맛있는 걸 사줬다는 뿌듯함이 교차하는 듯했다. 슈퍼에 다녀온 뒤 둘째는 한동안 제 누나의 말을 잘 들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캠핑장 부근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다. “도마뱀은 꼬리가 잘리면 또 자라난대.” “와! 그러면 꼬리가 잡혔을 때는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캠핑장 안,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도마뱀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도 신기했다. “얘들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뭐야?” “캠핑카 여행!” 두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아이들에게 웃음과 흥분, 설렘을 안겨준 캠핑카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만, 짧은 일정으로 유럽을 두루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왼쪽) 신하순 교수의 그림 ‘ 피카소 미술관’.
(오른쪽) 프랑스 앙티브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왼쪽) 신하순 교수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창작열을 꿈틀거리게 한 가우디의 건축물. 바르셀로나에 있다.
(오른쪽)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서 느낀 감동을 그린 신하순 교수의 그림 ‘구엘 공원’.
내 꿈의 무대, 베니스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베니스 인근의 푸지나 캠핑장을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관에 도착하니 인파로 붐볐다. 가족 티켓(어른 2명, 어린이 2명)을 35유로에 구입해 들어가니 본관에는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초대된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회화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하지만 관람객들과 섞이다 보니 금세 아이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 했다. 아이들과의 전시 관람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재미 있는 작품이 있으면 잠깐 집중하다가도 금세 무언가 먹고 싶다며 아이들이 보채는 것은 흔한 일이다. 회화 작품에는 대부분 흥미를 잃기도 한다. 이럴 땐 아쉽지만 작품과 잠시 이별해야 한다.
(왼쪽) 보름달이 베니스 시내를 감싼 풍경을 그린 ‘베니스의 밤’.
미국관에 들어서니 캐러멜이 바닥에 직사각형으로 깔려 있었다. 참여 미술이었다. ‘놀이’로 이해한 아이들이 캐러멜을 옮기면서 자기만의 기호를 만들어갔다. 아이들이 이 현대미술 작품을 즐겁게 관람한 이유는 달콤한 캐러멜처럼 그들을 배려하는 미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핀란드관에서 다트판이 걸려 있는 또 다른 체험 미술을 만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내 작품에 돌을 던지시오!’ 하며 버티고 있는 다트판에 화살을 던지며 즐거워했다.
프랑스관, 영국관, 일본관, 한국관을 거치며 길고도 짧은 관람을 마친 후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은 식당에 앉아서 전망도 보고 비엔날레 이야기도 나눴다. “조각과 설치에, 영상에…. 작품의 홍수 속에 빠졌다 나온 것 같네요.” “영상이 대세는 아닌 듯해. 회화, 설치, 조각이 많이 보이던걸.” ‘미술 가족’다운 대화가 오간 후 우린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연주가 멋지게 흘러나왔다. 베니스에서 이렇게 낭만적인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천국에서의 유람도 잠시. 계산서를 받아들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맥주가 왜 이리 비싸?” 알고 보니 연주 가격도 포함돼 있는 거란다. 가격은 일반 카페의 두 배. 자리에 앉으면 무조건 내야하는 가격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 자리는 모두 비어 있다. “기분 좋게 마셨으니 잊어버립시다.” 툭툭 털고 일어나 골목길로 접어들 때였다. 팔뚝에 비둘기 똥이 떨어졌다. “아빠 팔에 똥 묻었네.” “하늘에서 똥이 내려왔으니 좋은 징조 아닐까요? 혹시 베니스에 당신 작품이 입성하는 거 아니에요?” 내심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하는 꿈을 꾸지 않는 화가가 있을까?
(왼쪽) 다트판이 걸린 체험 미술을 선보인 베니스 비엔날레 핀란드관.
(오른쪽) 캐러멜 더미를 발견한 아이들이 설치 미술에 일조하고 있다.
‘펭킨카’가 심어준 꿈
캠핑카 여행은 처음인 데다,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인 어린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저질러 놓고 보니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같다. 둘째는 아직도 캠핑카를 ‘펭킨카’라고 발음하며 또 가자고 보챈다. 두 아이는 낯선 이들과 몸짓으로 대화하며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아 여행한 추억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 아트페어와 비엔날레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뿌듯함이 용솟음친다. 정말 인생의 많은 의미를 얻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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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과 사진 신하순(서울대 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