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하루 20~30km씩 한 달 남짓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오른쪽) 최미선ㆍ신석교 씨 부부.
왜 하필 그 길이었을까? 프랑스 남부에서 출발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걷는 순례자의 길. 뙤약볕 아래 하루 20~30km씩 한 달 남짓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말이다. 스페인 북서부 지역에 자리 잡은 산티아고는 9세기 무렵 예수의 제자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후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원래는 가톨릭 성지 순례자들이 주로 찾는 길이었으나 1천 년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은 종교와 상관없이 연간 수백만 명이 몰려드는 ‘인생의 순례길’이 되었다.
2003년, 우리 부부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기자 생활을 접었다. ‘글 쓰고 사진 찍는 부부이니 자유로운 여행자로서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만 간직한 채. 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일거리가 연이어 들어오면서 ‘부부 여행 작가’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살다 보니 그건 또 다른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다한것마저 털어내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탐내고 있지는 않았나 싶다. 그 일상에서 벗어나 뭔가 도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댔다. 또 다른 일상 탈출, 그 탈출구가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이 길을 나선 것은 뭔가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을 걷다 보면 뭔가를 맘 편히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뭔가를 얻기 위한 노력도 힘들지만 뭔가를 버리는 일도 쉽지 않다. 누구나 목적을 안고 오는 이 길은 유독 혼자 걷는 이가 많다. 하지만 난 그 길 내내 뜻을 같이한 남편이 있어, 시어머니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왼쪽)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아들의 배낭까지 짊어지고 가던 아버지.
(오른쪽) 산티아고 가는 길의 출발지인 생장피드포르 마을. 우리의 여정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 로그로뇨 마을의 포도 수확 축제.
2 편안한 휴식을 염원하는 순례자의 마음이 담긴 재미있는 벽화.
3 산티아고 여정 중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밀밭 길을 수시로 볼 수 있다.
800km를 별 탈 없이 걸을 수 있을까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 무렵, 산티아고 가는 길의 출발점인 생장피드포르에 도착했다. 온종일 이동하느라 피곤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부터 어떤 길이 펼쳐질지, 그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일을 맞을지…. 궁금한 게 많은 반면, 800km에 달하는 아득한 길을 별 탈 없이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일었다. 설렘과 걱정, 만감이 교차하는 첫날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다음 날 아침호텔을 나서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사무실로 향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면 순례자 증명서가 필요하다. 이 증명서가 있어야만 순례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에 묵을 수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 이제 출발이다. 10kg이 조금 넘는 배낭을 둘러메니 어깨가 묵직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론세스바예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28km 코스로, 넓게 펼쳐진 초원 풍경은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명성을 지닌 길이다.
그 멋진 초원을 걷던 중 특별히 생각나는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초입에서 만난 50대가량의 아저씨. 이 길을 걷는 이들 대부분이 양말 한 짝이라도 줄이고 싶을 만큼 짐과의 전쟁을 벌이건만, 이 아저씨는 유난히 큰 배낭에 거대한 쌍안경까지 달고 와 출발점부터 연신 주저앉았다. 뭐 도울 거라도 없을까 물으니 오히려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고 짐이 늘면 가는 길이 버겁다. 여행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는 막바지 길목에서 만난 부자지간. 키는 크지만 살집은 없어 보이는 아저씨는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둘러멨다. 내심 ‘이 아저씨는 짐 욕심이 더하네’ 싶었다. 아저씨가 무거운 배낭을 두 개나 짊어진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걸음 더 걸어서였다.
열예닐곱으로 보이는 아들이 맨몸에, 심술이 난 듯한 데다 걷다 말고 수시로 길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그러면 앞서 가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아들을 달래 길을 걷는다. 그런 아들 때문에 되돌아오던 아버지는 우리와 몇 번 마주쳤다. 마주칠 때마다 아버지는 웃음을 보이지만 그 웃음이 서글프다. 눈치를 채고 걸음을 재촉해 앞서 가다 보니 급기야 뒤에서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의 고함이 들려온다.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 아버지가 딱해 보였다. 유럽인에게 이 길은 비행 청소년의 수행길로도 이름난 곳으로 이 부자도 그 일환인 듯싶다. 아들의 배낭,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숙명의 짐이다.
(왼쪽) 순례자를 위해 무료로 와인을 제공하는 곳.
(오른쪽) 비 오는 날 만난 순례자.
전 세계 순례자의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 이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
길에서의 행복은 별 게 아니었다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채 이 길을 찾아온 전 세계 순례자를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산티아고 길의 매력이다. 숙소인 알베르게에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길을 걸을 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다시 마주치면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간혹 늦은 오후가 되면 보이지 않는 경쟁도 펼쳐진다. 이 길에선 온종일 지친 몸을 풀어놓는 알베르게가 무척 중요하다. 오전엔 다들 여유롭게 격려의 말을 외치다가도 오후 4~5시가 되면 알베르게를 앞두고 조바심을 낸다. 늦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고, 더 늦으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 다들 앞서 가려고 걸음이 빨라진다. 그럴 때마다 걸음 빠른 남편과 시어머니가 앞서 나가 자리를 잡아두어 나는 항상 느긋했다. 이 길에서의 행복은 별 게 아니다. 아주 원초적인 것만 해결하면 만사 행복하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그동안 마음대로 먹고 누울 수 있는 내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도착할 때까지 혼자 걸었다. 시어머니는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 여인과 앞서 갔고, 남편과는 아침부터 별것 아닌 일로 서로 뚱해져 각자 가다 보니 하필이면 가도 가도 사람 대신 밀밭만 보이는 황량한 길이다. 뙤약볕 아래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림자를 질겅질겅 밟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불현듯 이 벌판에 나 혼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치밀어 오르며 눈물이 찔끔 났다. 이럴 때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몇 차례 땡볕에 앉아 기다려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알베르게에 도착할 즈음 이제나 저제나 올까 기다리던 남편이 엊저녁에 만난 일행과 얘기를 나누며 다가온다. 은근히 열이 올랐다.
다음 날도 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아무 소리 않고 한참을 걷다보니 뒤따라온 시어머니가 물으셨다. “내가 너한테 뭐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니?” 어제오늘 한마디도 않던 내 행동이 혹여나 당신 때문은 아닌지 오해하신 모양이다.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말은 안 하지만 내내 불편하셨던 게다. 지금 이 길을 걷는 건 우리 부부만이 아니다. 시어머니가 함께한 길이다.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 오해를 풀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길을 걸었다. 많은 얘기도 나누었다. 시아버님의 연속된 사업 실패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신 시어머니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어머니 눈가도 촉촉이 젖어 있다. 그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질금질금 눈물을 흘리며 길을 걸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딸처럼 대하신다. 나 역시 내 엄마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한다 해도 결국은 시어머니요, 며느리라는데….
밤낮으로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은연중 딸 같은 며느리보다는 아들을 먼저 챙기는 시어머니의 원초적 본능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도 어머니를 챙기는 마음이 아들보단 못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었으니 그 미묘한 마음을 시어머닌들 못 느꼈겠는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이가 아무러면 내 아들, 내 엄마 같으랴만 그럼에도 시어머니와 함께 이 길을 걷길 잘한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작은 마을에 들어섰는데 알베르게는 없고 일반 숙소만 달랑 있었다. 마침 결혼기념일이기도 해 숙박료는 들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마을에서 유일한 식당에 들어가니 손님도 우리밖에 없다. 주인이 메뉴판을 내보이는데 스페인어로만 쓰여 있으니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몸짓 발짓 동원해 음식을 주문했다. 손가락으로 코를 짓눌러가며 ‘이거(돼지고기) 하나’, “음매~”소리를 내가며 ‘이거(쇠고기) 하나’ 이런 식으로. 10분이 넘게 걸려 주문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큰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돌아간 주인도 우스운지 주방장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니 주방 안에서도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나의 ‘음매’ 소리는 소였는데 주인은 양으로 받아들였는지 양고기를 내왔다. 이런! 그렇게 엉뚱한 음식을 먹으며 기념일을 자축하다 보니 남편이 슬쩍 내 손을 잡았다. 순간 마음이 짠해지면서 한동안 뚱해 있던 게 미안했다. 말 한마디, 손 한 번 슬쩍 잡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내가 먼저 해줄 걸….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 가끔은, 아니 수시로 남편의 손을 잡아주리라 마음먹었다.
산티아고 길목인 페르돈 고갯길.
(왼쪽) 순례자를 위한 이정표. 건물 벽에, 나무 기둥에, 길바닥에 노란 화살표로 표시해 순례자를 인도한다.
(오른쪽) 순례자라는 표시인 조가비.
순례길에서 인생을 발견하다 파란 바탕에 노란색 조가비, 노란 화살표…. 이런 것이 순례자의 이정표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목 내내 때론 건물 벽에, 나무 기둥에, 길바닥에 표시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우리네 인생길에도 이런 표지판이 있다면 어떨까? 아무 고민 없이 이렇듯 정해진 길로만 간다면? 편하겠지만 사는 재미는 없을 듯한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어느 날인가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걷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맸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벌판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번쩍댔다. ‘일 났다’ 싶어 길도 없는 들판에서 억센 풀에 찔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도 쪽으로 허겁지겁 내려오니 차도 옆에 조가비 표시가 눈에 띄었다. 그 표시가 그렇게 반가웠던 적도 없다. 조가비나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이 길. 가끔은 그 자체가 지루해 벗어나고도 싶었는데…. 한동안 화살표 없는 길에서 헤매다 보니 괜히 불안해져 화살표 찾느라 애쓰는 모습이라니, 우리네 사는 인생길과 비슷하다. 주어진 길로만 가다 보면 일탈하고 싶고 일탈하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산티아고 여정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섭섭함이 크다. 걷기 여행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으면서도 아주 오래된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1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대성당을 볼 수 있다. 원래 이 길은 가톨릭 성지 순례길이기 때문이다.
2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모인 순례자들.
3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을 심심찮게 마주한다.
우리의 첫 인연이던 브라질 여인, 잘생기고 지적인 분위기의 스위스 소설가, 포도 따주시던 할아버지, 달팽이 걸음이지만 이 길을 걷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던 독일 할머니, 기타를 둘러메고 다니며 노래를 불러주던 프랑스 아저씨, 알베르게를 잡지 못했을 때 우리보다 더 염려하던 호주 청년 로비…. 그들은 지금쯤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오후 무렵,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도착해선 그 웅장함에 말을 잃은 채 광장에 주저앉아 성당만 바라보았다. 묘했다. 이곳에 오면 벅찬 감동에 휩싸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담했다. 종착점에 도착한 순례자들 모두 해냈다는 기쁨에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아득히 높은 성당을 바라다봤다.
광장에 적지 않은 순례자들이 있었지만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에서 만나고 또 만나면서 정이 든 사람들을 보면 무척 반가울 줄 알았는데, 그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덤덤한 마음에 허전함까지 더해졌다. 돌이켜보니 이곳을 향해 오는 여정 자체가 내겐 더 없이 소중했고 어느새 그 하나하나가 그리움으로 남았다. 이제 돌아가면 내가 지나온 길 위에서 느낀 마음을 되새겨볼 것이다. 지극히 원초적인 요소를 해결할 때의 기쁨과 행복감…. 작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성당 앞 광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그리웠던 얼굴들이 하나둘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들도 마찬가지인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산가족 상봉처럼 뜨거운 포옹을 하고 반가움의 눈물 끝에 다 같이 모여 저마다의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길 위에서 정을 나누던 이들을 보니 이제야 유종의 미를 거둔 느낌이랄까? 가슴 한구석 지울 수 없던 공허함의 자리가 이들로 인해 비로소 훈훈하게 채워졌다.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고, 정이다. 산티아고 길 종착지에서 사람들은 “삶에서 꼭 필요하다 싶어 움켜쥐고 있던 것이 우리를 걷기 어렵게 만드는 삶의 무게”라고 말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게 보인다.
볼 것이 없으면 나를 바라보게 된다. 카미노(길)는 되돌아갈 수도, 건너뛸 수도 없는 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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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아요! 산티아고로 가려면 파리 몽파르나스 Montparnase 역에서 TGV를 타고 생장 피드포르 St. Jean Pied de Port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파리 공항에서도 TGV를 탈 수 있지만 몽파르나스 역에서 타는 것보다 열차 편수가 적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 Bayonne 역까지 가서(5시간 소요, 교통비는 38.91유로) 일반 기차로 갈아타고 생장피드포르 역으로 가면 된다(50분 소요, 교통비는 8.20유로). 걷기에 좋은 시기는 스페인은 태양의 나라로 알려진 만큼 햇빛의 강도가 세다. 따라서 걷기에 좋은 때는 5~6월과 9~10월이다. 여름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시기로, 지역마다 전통 축제가 많아 볼거리가 많은 것이 장점이다. 겨울에는 추울뿐더러 눈길도 쉽지 않고 문을 닫는 알베르게가 많다. 비용 산티아고 길 위에서 드는 비용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대부분 식사비와 숙박비로, 순례자들 대부분이 아침과 점심은 빵과 음료로(5~6유로) 해결하고 저녁은 알베르게나 인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8~10유로)를 먹는다. 알베르게 숙박비는 3~5유로(공용), 5~8유로(사설) 정도. 하루에 20유로 안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한 달을 걷는다면 6백 유로 정도가 필요하다. 준비할 것 40~45L 정도의 배낭, 옷 두세 벌(알베르게에서 빨아 널면 금세 마른다)과 등산용 양말, 빨랫비누(필수!), 옷핀(빨래가 마르지 않으면 배낭에 꽂고 걷는다), 우비, 방수용 배낭 커버(비 오는 날에도 걷는다!), 침낭(알베르게에 베개만 있는 경우가 있다), 손전등, 헤드 랜턴, 가벼운 등산화(새것보다 길이 잘 든)와 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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