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타일 옷을 입은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이 지난 3월 말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에 문을 열었다. 건물 외벽의 타일은 미술관의 제1호 소장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곳의 관장을 맡고 있는 작가 신상호 씨의 작품 ‘Fired Painting’이다. 어느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는 색색의 패턴 타일 작품으로 외관을 장식한 이 이색적인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은 자칫 평범한 전시관에 그칠 뻔했었다. 이 미술관을 건립한 주체인 김해시는 본래 전통 도예 전시관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야토기의 시조이기도 한 김해 토기의 발상지이자 1백여 개의 도자 공방이 밀집된 도자촌이라는 김해 지역의 특성에 걸맞게 도예 마을의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상설 전시관과 도예 테마공원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홍익대학교 도예과 교수이자 뉴욕, 파리 등에서 세계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도예작가 신상호 씨가 계속 고사해오던 관장직을 오랜 기간의 간곡한 청에 결국 수락함으로써 이 공간의 청사진은 달라지게 되었다. 전시관의 콘셉트는 건축도자 미술관으로 변경되었고, 3년의 준비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 지금의 개성 있는 외관과 현대적인 전시 기획의 건축도자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무뚝뚝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에, 내부에는 전통 도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품위와 근엄함은 있지만 흥미는 덜한 그저 평범하고 엄격한 전시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신상호 관장은 박제된 과거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수동적인 구경보다는 관람객과 소통이 가능한 미술관을 꿈꾸었기에 이런 방향 선회는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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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듯 변화 가능한 타일 외벽
“건축도자 미술관은 이곳이 세계 최초입니다. ‘클레이아크Clayarch’란 우리가 미술관을 준비하면서 지어낸 신조어예요. 흙clay과 건축architectural의 합성어인데, 이곳에서 점토 흙을 구워서 만드는 도자로 이룰 수 있는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줄 겁니다.” 그 가능성은 우선 미술관 건물 자체에서 드러난다. 흙과 물과 불로 완성된 도자 타일은 모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알루미늄 프레임을 통해 건물 외벽에 끼워져 고정된다. 그 재료도 자연적인 것일 뿐 아니라 부착되는 과정에서도 건물에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다양한 컬러와 패턴의 타일로 바꾸어 장식할 수 있다. 환경과 실용성, 예술성을 동시에 생각하는 이 미술관의 철학과 비전을 잘 드러내는 상징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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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작가 사토루 호시노의 작품 ‘오래된 층의 후 이미지’. 이곳에는 건축적인 영감을 흙과 도자를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 또한 만날 수 있다. 2 김정범의 작품‘흙 안의 흙’. 모듈화된 도자 타일로 마감한 기둥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이처럼 다양한 컬러를 도자로 표현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힘들었다. 클레이아크 미술관 전시 작품을 통해 다양한 컬러는 물론 형태 또한 다채롭게 완성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미술관 중앙홀은 천장의 유리돔을 통해 자연광이 가득 들어온다. 이는 적극적이고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주로 높고 큰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현재 설치되어 있는 작품은 왼쪽부터 차례로 프랑스 작가 다니엘 퐁토로의 ‘허공을 향해 부드럽게’, 네덜란드 작가 안톤 레인더스의 ‘성장’, 독일 작가 클라우스 오스터발트의 ‘음파 탐지 시스템’. 4 미국에서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 작가 준 가네코의 작품으 ‘무제’. 5 가장 기본적인 집의 형상을 단순화하여 표현한 타다야스 사사야마의 ‘구성’. 이것 역시 도자로 완성된 것이다. 안정적인 집의 형태이지만 도자라는 소재로 인해 긴장감을 갖게 된다. 6 청자의 형상을 통해 한국적인 문을 완성한 토니 헵번의 작품‘코리안 게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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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성에 쓰였던 사각 판석을 깔아놓은 입구를 지나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 돔 천장으로 자연광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현재 개관 기념으로 전 세계 건축도예가 16명의 작품 47점을 선보이는 <세계건축도자전>이 열리고 있다. 건축도자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인 이탈리아의 니노 카루소, 미국의 윌리엄 데일리의 작품이 시선을 끌며, 그 밖에도 미국의 준 가네코, 노르웨이의 올레 리슬레루드, 일본의 사토루 호시노와 우리나라 작가로는 조한기, 신동선, 김정범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커다란 소라 모양의 도자 스피커, 현대적인 사진이 프린트된 타일 등 기능성이 돋보이며 실제 활용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작품부터, 청자 형상을 쌓아 만든 한국의 문, 추상적인 형상의 집 등 건축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작품까지 신선하고 다채롭다. “앞으로 재미있는 기획 전시를 많이 할 겁니다. 지금 전시가 끝나면 위생도기를 주제로 한 전시를 계획 중이지요. 곧 중국에서 세계 각국의 도예작가들을 모아 워크숍을 열 예정입니다. 위생도기를 테마로 각자의 상상력대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것들이 나중에 우리 미술관에 전시될 겁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의 위생도기가 작가들 개성 따라 무궁무진하게 표현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커요. 이처럼 계속 새롭고 흥미진진한 기획 전시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없어요. 낡은 전통 그대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나 아프리카의 고대 조각 등 원시적인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감성으로 재창조하는 도예 작품을 선보이는 신상호 씨. 그도 처음에는 우리 전통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에 호응하지 않으면 당대의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맡고 있는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콘셉트도 이런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흙은 오래 전부터 건축에 사용된 재료이지만,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방식 이상 현대의 요구와 감성에 맞는 형태로 새롭게 변화되고 창조될 수 있음을 미술관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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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예술가와 일반 대중, 그리고 지역 문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개관 기념으로 <세계건축도자전>을 10월 3일까지 전시하며 이후엔 <위생도기전>이 이어지는데 6개월마다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여 선보인다. 세계적인 도예작가와 신진작가를 비롯 건축,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개성 있고 참신한 작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도자와 건축이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도 개최하며, 작가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연구,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일반인들이 직접 도예 작업을 해볼 수 있는 도자 체험 교실도 운영한다.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문화 이벤트를 마련한다. 관람 요금은 어른 2천 원, 청소년 1천 원이며 대중교통이 따로 없으므로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문의 055-340-7016, www.claya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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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건축 소재로 다시 부각된 흙
“우리가 클레이아크라는 단어를 쓰니까 생소하게들 생각하는데, 사실 흙은 오래 전부터 건축에 사용된 재료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인류의 집짓기 방식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마다 기후와 환경의 차이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가운데서도 흙집은 어느 지역에나 공통적으로 있었어요.” 흙집에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 점토를 구운 벽돌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벽돌은 큰 집을 지을 때 매우 유용한 건축자재로 활용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에도 흙벽돌이 사용되었다고 신상호 씨는 전한다. 이어 지붕을 덮기 위한 기와가 만들어졌으며 주방과 화장실 등 물기가 있는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좋은 타일과 위생도기가 생겨났다. 이처럼 집의 안과 밖에서 다양하게 쓰여온 건축도자는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시대의 미의식을 반영하며 발전해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건축 재료가 생겨나자 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강도 높은 유리의 등장으로 작은 창문은 벽 전체 크기로 넓어졌고, 콘크리트는 빠른 속도로 고층 건물을 올릴 수 있게 했다. 또한 금속은 보다 과감한 건축의 형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 같은 신소재의 등장으로 흙은 한동안 건축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콘크리트를 비롯한 각종 화학적인 소재가 사람에게 유해한 여러 질병과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흙은 다시 건축 재료로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흙을 생태학적인 건축에 이용하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뉴멕시코 지역에는 흙을 이용한 고층건물이 세워졌고, 프로젝트 흙집 마을인 프랑스의 ‘일다보’는 해마다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다.
“흙은 자연의 재료이고 그래서 친환경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지요. 또 요즘에는 기존의 도자 분야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화려한 색상과 자유로운 형태 표현도 가능해졌습니다. 도자는 건축에서 필요로 하는 실험적인 시도와 응용에 적합한 재료로 다시 한 번 거듭나게 될 거예요. 건축보다 더 큰 예술 작품이 어디 있겠어요. 건축이 존재함으로써 모든 문화가 존재하는 거죠. 건물 밖이든 안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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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와 건축의 창의적인 중계 역할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앞으로 도자와 건축 분야의 상호 발전적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도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건축에 활용될 수 있다. 단단하게 구워낸 판과 타일로, 건물 안과 밖에 부조와 조각으로 장식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도자는 건축을 통해 그 활용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고 건축은 도자를 통해 예술적, 재료적 다양성을 확보해 서로의 발전을 돕는다. 그 관계를 효과적으로 만들도록 클레이아크 미술관은 중계자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또한 일반인들의 삶이 예술과 가까워지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는 비용이 드는데 이는 ‘클레이아크 사이클’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산업은 작가들의 예술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작가는 산업체에 예술적 생산품, 산업과 연계되어 대중화될 수 있는 상품의 모티프를 제공한다. 대중문화는 이에 영향을 받아 한 단계 발전하고 일반인들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 이러한 사이클 속에 문화가 순환하고 발전하도록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중간 매개체 역할을 맡아 건축도자의 미래를 열어나갈 포부다.
우주선 콜럼버스호의 로켓 외피는 세라믹이었다. 천연가스와 원유의 수송을 위해 바다 밑으로 깔리는 송유관은 소금에 부식될 우려가 없는 세라믹을 소재로 활용한다. 최근 도요타는 세라믹으로 엔진을 만든 자동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강하고 기능성이 뛰어난 소재가 도자이기에, 또한 도자의 재료인 흙과 물은 끊임없이 순환하여 결코 고갈되지 않을 자원이기에, 이런 신상호 관장의 꿈이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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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관의 관장이자 작가인 신상호 씨의 작품 ‘Fired Painting’이 장식된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외벽. 타일에 그려진 그림은 원시미술의 상징적인 패턴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다양한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타일의 패턴은 건축도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미술관의 이념을 담고 있다.
2. 미술관이 있는 언덕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클레이아크 타워. 멀리서도 미술관의 위치와 방향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등대 역할을 한다.
7. 무려 4천4백 장의 타일로 이루어진 이 미술관의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이 타일들은 신상호 관장의 작품으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 흙을 이용해 만든 도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불에 구워 내구성과 내화성을 갖추어 건축 자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미술관 입구에는 고대 중국의 궁이나 성과 같은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사각 판석이 깔려 있다. 원형의 전시관과 어우러져 미술관의 전경을 돋보이게 한다.
9. 건축도자의 대표적인 작가인 니노 카루소의 작품 ‘시실리의 기억’. 고대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부조 기둥은 테라코타로 완성된 것이다.
10. 독일 작가 클라우스 오스터발트의 ‘얼음’. 소라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스피커로서도 쓰일 수 있는 도자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렸을 때 소라 껍데기에 귀를 대고 바다 소리를 기다렸던 기억처럼 도자 또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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