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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골목산책] 소년의 마음으로 걷는 계동길
1980년대의 정감 어린 골목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종로구 계동의 ‘계동길’.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장으로 유명한 중앙고등학교에서부터 계동길이 시작된다. 언덕을 따라 쭉 걸어 내려오면 작은 음악살롱, 떡볶이와 고가구를 파는 이모네 식당, 빈티지 숍 빈티지타임즈를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보물 같은 곳이니 계동 나들이길에 꼭 들러보시길.


1 중앙탕 앞 골목에 서 있는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 씨.
2 계동길을 따라 걷다 작은 골목에서 보물 같은 한옥집과 정원을 발견했다.

3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공 던지며 노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4 옛 만화방 느낌의 책 대여점.방과 후 아이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5 아침에 막 뽑은 떡을 창 쪽에 주르륵 진열해놓은 계동 떡집.


“이달은 옛 추억을 따라 걷는 재미가 있는 계동길을 소개합니다.
골목골목 예쁜 한옥 구경도 할 수 있고, 어릴 때 다니던 동네 목욕탕도 그대로이고, 참기름 냄새 솔솔 풍기는 기름집과 방앗간, 무협지와 만화책이 가득한 책방도 있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 틈에 껴서 떡볶이를 먹고, 공방, 꽃집, 책방에 들어가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고 떡집에서 막 뽑은 가래떡을 사고 나면 계동길 산책이 끝나지요. 욘사마 때문에 중앙고등학교를 찾은 일본 아주머니들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것도 해야 할 일중 하나랍니다. 외국 관광객이 유난히 많은 이 골목에는 게스트하우스도 꽤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잠시 머물며 불교 잡지를 만들던 만해당도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고요.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계동길, 그새 갤러리 겸 카페, 스튜디오, 옷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더군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이 골목을 지켜보는 것도 제가 이 곳을 찾는 이유입니다. 계동길에서 발견한 음악살롱, 이모네 식당, 빈티지타임즈는 계동길의 따뜻한 정서와 잘 맞는 곳입니다.” _최시영(공간 디자이너 )

(왼쪽) 옛 서점의 모습 그대로인 문화당.

음악살롱
간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고 뭘하는 곳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음악살롱. 계 동길에 간판이 없는 가게는 정말 이 집 하나다. 바닥, 천장, 벽은 모두 옹이가 박힌 나무로 둘렀 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을 두어 마치 동화 속 에 나오는 예쁜 다락방 같은 이곳은 파이프오르 간을 전공한 임에스더 씨가 주인이다. 오르간과 피아노를 가르치고 클래식 수업도 하는 이 작은 음악살롱은 석 달 전 문을 열었다. 어릴 적,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연상케 하는 소박한 공간.

“계동은 처음이었는데 첫인상이 따뜻하고 정겨웠 어요. 오르간 소리와 참 잘 어울리는 동네란 느낌 이 들었죠.” 옆집 방앗간 아주머니와 앞집 꽃집 언니는 덕분에 오르간 연주 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음악살롱 오픈을 반겼다. 게다가 맞은편 가 게 주인 아저씨는 화장지를 사들고 먼저 인사를 왔다. 정이 넘치는 계동에 서 임에스더 씨는 그간 꿈꿔왔던 음악살롱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믿음 이 생겼다고.

(왼쪽) 음악살롱의 주인장 임에스더 씨.

현재 교습생은 10명 정도다.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데 대부 분 여자이고, 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도 있다. 어떻게 알고 이곳 계동까지 클래식 수업을 들으러 오냐고 물었더니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란 다. 알고 보니 그는 2년 전 1백 명의 커플을 인터뷰한 <인연>이란 에세이 집을 낸 작가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블로그도 명성을 얻었다.

“제 글이나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와 감성이 잘 맞는 편이에요. 굳이 간판을 달 생각은 없어요. 이렇게 찾아오시는 분들과 함께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이 면 좋겠어요.” 그는 피아노에 비해 소외받는 오르간을 더 많은 이에게 알 리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오르간이나 피아노 교습 후에 차를 마시며 클래 식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편안하고 쉽게 클래식을 즐기면서 오르간 연주 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교습 방식이다. 클래식 수업은 음악만 아니라 관련된 미술 작품,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함께 감상한다. 단순한 클래식 수업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 수업인 셈이다. 요 즘 한창 클래식에 빠져 있는 최시영 씨가 바흐의 첼 로 연주곡 이야기를 꺼내자 에스더 씨는 오르간을 사랑한 유일한 음악가가 바로 바흐라며 바흐의 오 르간 연주곡 CD를 선물했다. 그리고 최시영 씨는 ‘계동스러운’ 음악살롱을 위한 공간 디자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왼쪽) 창가에 악보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풍경.
(오른쪽) 클래식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왼쪽) 파티션 뒤에 숨겨놓은 오르간.
(오른쪽) 레슨 후 감상을 적는 음악살롱 일기장.


최시영(이하 최) 온통 나무로 마감한 것이 인상 깊어요. 저기 좁은 벽은 악보를 다닥다닥 붙여 가득 채워보는 게 어때요? 악보 자체가 감각적인 디자인이 될 거예요.
임에스더(이하 임) 안 그래도 벽이 좀 휑해서 그림을 걸까 고민했는데 악보가 좋을 것 같네요.
벽에 나무 선반을 달고 책을 쭉 꽂아보세요. 밋밋한 벽에 풍부한 표정이 생기고 흡음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리고 작고 예쁜 하이파이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정말 음악살롱 분위기가 제대로 나겠는데요?
네. 돈을 좀 모아서 하이파이 하나 장만하려고요.
앞으로 음악살롱은 어떻게 꾸려가실 건가요?
오르간을 편하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음악살롱으로 만들어야죠. 오르간의 깊은 울림에 더 많은 이들이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제 최종 꿈은 오르간 연주자로 남는 것이고요.
계동에 오르간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음악살롱이 있다는 사실이 흐뭇합니다.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는 건 정말 음악이에요.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계동길 지나가는 사람들도 들을 수 있게 오르간 연주도 자주 해주시고요.


황금알 식당의 정감 어린 외관. 지나가는 사람마다 안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곤 한다.


이모네 식당
계동의 명물 중앙탕 옆에 떡하니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모네 식당’은 이 골목에서 떡볶이를 파는 유일한 식당이자 계동 사람들의 오랜 사랑방이다. 주인 박상례 씨는 계동길의 든든한 ‘이모’로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그런 그가 몇 달 전 ‘황금알 식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의 촬영장으로 식당을 통째로 빌려주고 있기 때문.

사실 ‘이모네 식당’이란 이름 역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2>의 여주인공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촬영하게 되면서 감독이 붙인 이름. 한창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계동으로 장소 헌팅을 나온 감독이 영화 촬영장으로 제안을 했고 그 덕에 인테리어도 영화사 측에서 해줬다. 시작부터 명성을 얻은 이모네 식당의 진짜 스토리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떡볶이와 함께 고가구를 판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식도 만들고 가구도 팔아요. 가구 판 값은 제가 꿀꺽하고요.” 수더분하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맘씨 좋은 ‘이모’다. 결혼 전, 봉제 장난감 디자인을 하던 그는 남편의 공방에서 밑작업을 도와주면서 어깨너머로 배워 이제는 가구 맞춤 제작 견적도 척척 낼 수 있게 되었다.

점심에는 근처 현대건설 직원들이 와서 주로 양은 도시락에 밥과 달걀, 콩나물을 넣어 비빈 ‘추억의 도시락’을 먹고, 오후에는 수업이 끝난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떡볶이판을 싹싹 비운다. 군대 가기 전에 떡볶이를 먹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남학생들, 학교 다닐 때부터 뭉쳐 다니던 여고생 5명은 지금도 이곳을 찾는 오랜 단골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박상례 씨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잠시 쉬었다 가라고도 하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빌려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팔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는 ‘이모네 식당’에서 최시영 씨 또한 양은 도시락의 옛 추억에 잠겼다.

1 진짜 나무를 가게 중앙에 기둥으로 세웠다. 기둥 주변의 테이블은 남편 작품.
2 이모네 식당의 안주인 박상례 씨. 계동길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다.

3 가게 한쪽에 고가구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4 하루 종일 북적거리던 이모네 식당이 잠잠해졌다. 박상례 씨의 늦은 점심 식사시간.


최시영(이하 최) 정말 옛날에 먹었던 양은 도시락 생각이 나네요. 뚜껑 딱 열었을 때 밥 위에 달걀프라이가 올라와 있으면 기분 정말 좋았어요. 참기름 몇 방울 넣어주면 더 기가 막혔고요.
박상례(이하 박) 10년 전만 해도 그냥 도시락이었는데 지금은 추억의 도시락이에요.
주방 선반 위에 양은 도시락을 착착 쌓아 올려두면 어떨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 인테리어가 될 거예요. 그리고 떡볶이판이 작아서 아쉬워요. 큰 판으로 바꾸면 밖에서도 떡볶이를 보고 먹고 싶어져 안으로 들어오니 더 좋을 것 같아요.
골목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은 판에 만들었는데 이제 조금 판을 키워봐야겠네요.
떡볶이 맛있다는 소문만 나면 가회동, 인사동, 삼청동에서 이제 떡볶이 먹으러 몰려들 거예요. 떡볶이는 순대, 오뎅이랑 삼총산데 메뉴도 늘리시면 좋겠고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어른들에게도 떡볶이는 추억의 간식이잖아요. 그리고 아무리 배불러도 떡볶이 배는 따로 있어요.
여름에는 팥빙수도 파는데 학생들에게 인기 최고예요.
저 팥빙수 정말 좋아하는데 여름에 꼭 먹으러 와야겠군요. 

빈티지 숍, 빈티지타임즈
계동길에는 오래된 서양 물건을 파는 빈티지 숍이 하나 있다. 세계 3대 스탠드로 꼽히는 지엘드, 카이저 이델, 앵글 포이즈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작지만 저력 있는 빈티지 숍이다.

계동의 작은 골목길에 빈티지 숍을 연 주인장의 이력 역시 독특하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다 상업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로 전향했다. 하던 일을 접고 무작정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떠나 보석 캐는 일도하고 여행도 다녔다. 대학 시절부터 빈티지 카메라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여행을 하며 빈티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사용했다던 관절 지엘 등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설계 도면을 펼치고 스탠드를 켠 채로 작업을 했을 그 시절의 르 코르뷔지에와 조우하는 것 같았다고. 주인장 정호식 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품의 스토리를 자분자분 들려준다. 종종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이런 중고를 누가 사가냐고 묻는 손님도 있는데 그럴 땐 그저 허허허 웃으며 한마디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것도 다 중고라고!

“부담 없이 구경하시라고 숍을 비울 때도 불을 켜놓고 나가요. 가끔 옆 가게 주인들과 대낮에 막걸리를 한잔씩 할 때가 있는데 앞에 있는 떡집 아주머니가 가게를 대신 봐주기도 하시고요.” 인정 넘치는 동네 계동, 그는 이곳에 가게를 열길 참 잘했다며 흐뭇하게 웃는다. 게다가 지금 가게 자리는 어사 박문수의 생가가 있던 뜻깊은 터란다. 직접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완성되면 떡집, 꽃집, 카페 주인장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다. 애정 어린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기 때문. 나중에 임대료가 오르면 다 같이 같은 동네로 이사 가자는 농담도 다들 반은 진심이다.

(왼쪽) 세월의 소중함을 아는 빈티지타임즈의 주인장 정호식 씨.


1 산업 디자인의 산물, 세계 3대 스탠드를 숍 구석에 모아두었다.
2 정호식 씨가 하나둘 모은 빈티지 소품이 자유롭게 제멋대로 걸려 있다. 오래된 만물상에 들어선 느낌.


최시영(이하 최) 직접 소품을 디자인하고 만들기도 하시는군요.
정호식(이하 정) 네. 저쪽에 콘크리트 조각에 보일러 파이프를 꽂아 전구를 달아 만든 스탠드가 제 작품이에요. 제일 처음 만들었던 건 섬유 디자이너가 벌써 사갔어요.
정말 멋진 스탠드네요. 만드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맘먹고 작업을 시작하면 3, 4시간이면 돼요. 다만 콘크리트 조각을 보고 어떤 물건을 만들지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죠. 고물 취급받는 물건을 구해다가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것, 정말 매력적이에요.
나중에 다시 건축을 해볼 생각은 없어요?
하고 싶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접었지만 가슴속에는 건축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지금 당장은 빈티지 숍을 잘 꾸려나가는 게 목표고 작품 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건축으로 시작해 사진가를 거쳐 빈티지 숍 사장까지 그리고 다시 건축으로. 정호식 씨의 스토리도 참 재밌어요.
그런가요? 물건을 단순히 기능이나 디자인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그 안의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상이 조금 더 의미 있고 재미있어질 겁니다.


*지하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길을 쭉 걷다가 현대건설이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오세요.
그 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계동의 자랑 ‘계동길’을 만나게 됩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포토그래퍼 출신의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무이(02-766-8184)는 한옥을 개조한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베이비 샤워와 돌잔치도 열어 줍니다. 그 맞은편에는 노란색 벽이 인상적인 만듦새(02-747-2460)라는 금속 공예 공방이 하나 있는데, 귀고리ㆍ목걸이ㆍ팔찌 등 소박한 은 장신구를 구경할 수 있어요. 계동커피(www.bookbus.co.kr)는 LP판, 오래된 타자기와 재봉틀 등 1970, 1980년대의 소품들로 가득 차 있어요. 정감 있는 이름의 파스타 가게 이태리면사무소(02-3676-0233)는 점심 저녁 모두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계동의 명소랍니다. 그 옆에 보고, 먹고, 마시는 갤러리 카페 사계(02-743-6171)가 얼마전 문을 열었는데, 그림도 보고 맛있는 일본 요리도 맛볼 수 있는 곳이에요.

 

촬영 및 취재협조 음악살롱(blog.naver.com/esther810), 이모네 식당(02-744-8130), 빈티지타임즈(070-4098-9991)

 

글 기원재 기자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