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쌈짓길에 흑백 인물 사진이 벽을 빼곡히 메운 ‘황진 사진관’이 있다. 전문 모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인데도 이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꾹꾹 눈도장을 찍게 된다. 우연히 들른 손님이건, 오래 정을 나눈 지인이건 사진가의 렌즈에 자신의 ‘날표정’을 들켜버린 것 같다. 한바탕 재채기 하듯 말이다.
무장해제된 얼굴들 틈에 진돗개 사진이 듬성듬성 걸려 있다. 역시 모델처럼 포즈를 정돈한 진돗개가 아니다. 뒷다리로 목덜미를 긁어대는 일이 그 순간 지상 과제인 듯 열중하는 모습,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힘주어 ‘큰일’을 보는 모습, 너무 더워서 혀를 빼물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 등 개의 ‘날생활’이 담겨 있다. 마치 진돗개를 너무 잘 알아서 다음 찰라 이어질 개의 행동을 미리 짐작하고 셔터를 누른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만든다. 추측은 옳았다. 사진가 황진 씨는 20여 년간 진돗개 약 1백50마리를 길러왔다. 그러니 제 자식 표정 읽듯 진돗개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진돗개와 인연 맺고 풀기 황진 씨는 대학 졸업 무렵 북한산 밑으로 이사 가면서 뒷집 사람이 키우던 훌륭한 진돗개와 처음 만났다. 우연히 이 개의 새끼 한 마리를 데려다 키우며 진돗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금세 각별한 사이가 되었지만, 인체상을 빚는 데 몰두해온 조각도였던 그가 얼마 뒤 미국 유학 길을 떠나며 진돗개와 헤어졌다. 타지에서 조각과 드로잉을 공부하는 동안 진돗개가 못 견디게 그리웠단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북한산 자락에 다시 집을 짓고는 그때부터 작품 만들 듯 열심히 진돗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사진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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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마리의 진돗개를 기르며 이들이 새끼를 배고, 낳고, 키우는 모든 순간을 곁에서 지켜봤다. 1년쯤 지나자 수가 꽤 늘어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팔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미가 낳은 새끼 여럿 중 마음에 드는 두 마리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끝까지 남겨두었다. “둘 중 하나는 친한 사람에게 주지요.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훌륭한 개를 알아보는 눈이 정확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요.” 나머지 한 마리는 황진 씨가 직접 키웠다. 그 뒤 태어날 개들의 좋은 씨가 되어주었다.
어지간하면 새끼 진돗개를 거저 주곤 하는 황진 씨도 어떤 이들에게는 팔기조차 마다한 적이 있다. 손님이 선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에게 개를 줄 때 두 가지를 살핍니다. 주인 될 사람의 성품과 개가 클 만한 장소를 확보하였는지 여부입니다.” 그래서 성품 좋고 아늑한 터를 가진 사람이 진돗개 한 마리 달라고 청하며 찾아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까지 진돗개를 들려 보냈다. “물론 새 주인에게 개를 영원히 돌보지 못할 형편이 닥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개를 내다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만나본 그 순간 제가 기른 개에게 최소한 밥 한 끼는 정성껏 내어주리라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다음은 둘 사이의 인연에 달린 일이니, 제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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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진 씨와 부인 최인화 씨가 진돗개를 데리고 근처 인왕산으로 나들이했다.
2. 새끼를 돌보는 어미 진돗개. 어미의 따뜻한 눈빛과 새끼의 애교스러운 표정이 황진 씨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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