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까요? 많은 사람이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할 겁니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기도, 본능이기도 하니까요. 더구나 자살이 급격하게 느는 ‘우울증 공화국’에서 행복은 필연적 구세주이기도 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다양합니다. 쾌락 또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일이나 직업에서의 성취를 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쾌락과 성취는 일시적입니다. 잠깐은 행복이라 착각하지만, 곧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그 허무함을 잊기 위해 더 자극적인 쾌락을 좇고, 더 커다란 성취를 위해 현실을 희생합니다. 중독이 늘고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입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의식주가 해결되는 정도, 그러니까 GNP가 약 4천 달러 정도까지는 경제적인 풍요와 행복은 비례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돈은 행복에 별 도움이 못 됩니다.
김진세 원장은 ‘글 쓰는 정신과의사’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하다. 현재 고려제일정신과 원장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만나며, 기업체를 대상으로 긍정과 행복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 등이 있다.
그렇다면 가족은 어떨까요? 행복에 관한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연구 결과, 가족만큼 행복에 큰 기여를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미혼 또는 이혼의 경우,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보다 불행합니다. 결혼 생활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 의지, 배려 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되겠지요. 그런데 자녀 문제는 좀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미국처럼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자녀는 행복의 큰 조건이 안 됩니다. 이런 심리적 배경 때문에 딩크족이 생겨났겠지요. 하지만 동양적 사고에서 자녀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의 죽음인 것과도 일맥상통한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있으면 좀 더 행복할 것이고, 자녀가 없다면 좀 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주장하는 사고뭉치 자식을 둔 부모가 있듯이, 부부간의 사랑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게 사는 ‘잉꼬부부’도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보다 행복에 도달하는 길이 조금 멀고 험할 수 있는 무자녀 부부에게는 말 못할 상처와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상처는 주위 사람에게서 받습니다. 부모로부터의 압력은 고문 수준입니다. 이 문제로 의절하고 왕래를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좋은데 그러냐, 한 번 낳아 보기나 해라 등 상대의 의사는 아랑곳 않고 주장을 늘어놓습니다. 대화의 소재도 달라집니다. 아이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그나마 즐거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 학교와 학원 외에는 이야기 소재가 없어질 때쯤 되면, 아이 걱정만을 하는 친구 때문에 만남 자체가 짜증스러워집니다. 이런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거나 또는 친구를 멀리하기도 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녀가 없다고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면, 자아실현과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자녀를 안 낳겠다는 본래 취지에 어긋납니다. 아파도 친구들과의 관계는 유지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런 상처를 겪지 않고 치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솔직해지기’와 ‘기다려보기’입니다. 되도록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십시오.
꾹 참기만 하다가는, 큰 화가 되어 터지고 맙니다. 무슨 잘못이나 한 것처럼 불편을 참으면서까지 함께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솔직히 표현해서 상대가 당신을 배려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약’입니다. 어차피, 모두가 무자녀가 되지 않겠어요? 아이는 자라서 독립하게 마련이니까요. 그때가 되면, 빈 둥지를 지키는 친구에게 둘만이 사는 방법을 한 수 가르쳐줄 수 있겠지요.
두 사람 사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겠지요. 사이가 좋을 때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양육 비용이 들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릴 것이고, 양육에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으니 둘에게 집중하면 부부 사이는 더 좋아지겠지요. 하지만 사랑의 깊이만큼 미움과 반목의 골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격렬하게 싸울 일도 자제가 됩니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해서 참아야 하니까요. 자녀는 긴장을 풀어주는 갈등 해소의 역할도 합니다. 심리적으로도 자신과 닮은 자녀를 키운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됩니다. 문득 아이와 내가 닮았다는 것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 애비에 그 자식이야’라고 할 때 느끼는 뿌듯함과 책임감이 있으니까요. 자녀가 없을 때면 그 반대가 되기 쉽습니다. 격렬한 싸움과 오랜 냉전 그리고 ‘이제 끝이야’라는 책임감 없는 결론에 덜컥 도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무자녀 부부에게는 특별한 갈등 해소법이 필요합니다. 우선,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상대의 의견에 반한 일은 되도록 삼가야 합니다.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관계가 지속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요. 관계가 유지돼야 갈등을 풀 수 있겠지요.
두 번째, 대화를 즐겨야 합니다. 대화는 유희입니다. 서로 즐겁게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대화지요. 그러려면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은 드라마를, 아내는 스포츠를 즐겨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화를 즐길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깊이 있는 대화로 넘어가야 합니다. 깊이 있는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는 여가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여가 시간마저 다르다면, 특히 맞벌이 부부는 얼굴 보기도 힘듭니다. 같은 취미를 갖는다면 함께하는 시간도, 대화도 늘게 됩니다. 되도록이면 스포츠를 즐기십시오. 건강도 좋아지고 사랑도 깊어집니다.
네 번째는 기호를 맞추는 것입니다. 특히 먹는 것의 코드가 맞으면 화목해집니다. 같은 브랜드의 커피를 마신다거나, 서로를 위해 요리를 해준다면 좋겠지요. ‘사랑은 위장을 통과한다’는 독일 속담처럼 말입니다. 다섯 번째는 인내심입니다.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의 해법이라 씁쓸하기는 하지만 현실입니다.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부부만 있어 참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잘 참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습니다. 성숙한 성인 남녀라면 죽도록 다툴 일은 감정싸움밖에는 없고, 인내는 감정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방책이니까요. 물론 일방적이고 무제한적인 인내는 희생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서로 합의하여 언제까지는 참아보자고, 선언적이고 상호적이며 제한적인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른쪽) 오순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130×97cm, 2007
이 갈등 해소법은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도 해당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무자녀 부부에게 갈등 해소는 다른 문제보다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사회집단이 생긴 것은 인류 존속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것은 자녀가 없으면 인류가 끝이 나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무자녀 가정이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둘러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노력한다면, 자녀를 둔 부부와 무자녀 부부 모두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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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