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봄이 오고 있다. 풀과 벌레와 공기가 뒤섞인 봄의 냄새가 훅 끼쳐오고, 마른 나뭇가지에선 튀밥 터지듯 꽃망울이 터진다. <행복> 3월호 표지에도 생명의 계절이 왔다. 꽃 몇 송이가 알큰한 숨결을 내뿜고, 그 사이로 새 몇 마리 날아다닌다. 그 새는 창공을 나는 봉황 같기도, 또 다른 한세월을 시작하며 홰치는 닭 같기도, 참새 같기도 하다.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물리는 작품이다. ‘사는 나날은 다 꽃답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작품.
“저는 긍정의 힘을 믿어요. 학습된 낙관주의가 인생을 바꾸잖아요. 믿는 대로 다 된다! 작품에 그 긍정의 힘을 담아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누군가 내 작품을 보면 새로운 긍정의 힘이 탄생 한다’, 멋진 꿈이지 않나요?”
알고 보니 봉황(새끼 봉황)인 그 새들은 ‘럭키 lucky’라는 이름까지 가졌다. 가슴에 하트를 매단 녀석도 있다. 순정한 악동의 눈을 가진, 그리 순해 보이진 않지만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표정의 럭키. 이 또한 보는 이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 그가 만든 상징물이다. “새는 유한한 세상을 초월하려는 우리의 염원을 담은 대상, 인간을 지켜주는 영물, 정신적 자유 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어요. 민화 속 모란을 모티프로 만든 꽃은 부귀, 기복의 뜻을 가졌고요. 미지의 세계와 에너 지를 통하게끔 하는 존재들이죠. 그 또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말하죠.” 최근 그가 도쿄에서 연 개인전 작품에는 그 럭 키들이 입에 꽃을 물고 있다. 원하는 것을 드디어 획득한 녀석의 뿌듯한 표정이란! 게다가 전시 제목은 <카스토르 폴룩스 castor pollux>였다. 행복을 부르는 그 주문, 카스토르 폴룩스!
슬쩍 흘려 보면 그의 작품은 서툰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그만의 영리한 전략 같은 거다. 그는 가방끈 긴 작가가 빠지기 쉬운 누를 범하지 않는다. 암호에 가까운 기호를 꽁꽁 숨기고 들어 가지도 않고, 흔적이 낭자한 자기 고백서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으라차차, 기운을 북돋는다. 또 그의 작품은 원근법이나 명암으로 주·조연을 나누지 않고, 꽃과 새가 평화롭게 질서 있게 작품 안에서 제 몫을 살 뿐이다. 아이의 낙서나 민화에서처럼 단순 명쾌하게, 선과 면이 규모 있게 새겨져 있다.
(왼쪽) ‘secret garden 10’, 혼합재료, 116.7×91cm, 2007
(오른쪽) ‘secret garden 21’, 혼합재료, 47×40×74cm, 2007
연금술사의 주문, 카스토르 폴룩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진희 씨는 어느 날부터인가 2차원의 캔버스에 3차원적인 부조(평면상에 형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조형 기 법) 조각을 붙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조물주의 첫번째 재산, 흙으로 빚어 구운 도자 조각이다. 그래서 단지 조각이라고 하기엔 평면적이고(부조처럼 한 방향에서만 보이므로), 단지 회화라 하기엔 입체적인 작품, 도자 의 경계까지 넘나드는 작품이다. 그는 이걸 ‘조각적 회화, 회화적 조각’이라 부른다. “처음 도자의 세계를 엿보았을 때 너무 신비로웠어요. 말랑말랑한 흙이 돌처럼 단단한 조각이 되기까지 스스로 구조를 유지하면서 불에 융해되고, 재결정을 이루는 변화가 신비로움 그 자체였지요.
그건 마치 연금술사가 되는 듯한 기분이기도 했어요. 고대의 연금술사는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를 결합해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봤죠. 그렇게 만든 황금은 물질적 황금만이 아니라 정신적 황금, 곧 영적인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어 요. 도자도 물, 불, 흙, 공기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미지의 힘이 부여된 생명체’를 만들어내잖아요. 저는 아직 미술 판에서 보면 약병아리 정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물, 불, 흙, 공기를 결합해 영적 으로 충만한 정신의 황금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겠죠? 유약과 불은 아직도 제게 처절하고 외로운 절망을 안겨주지만요.” 앞으로도 그가 ‘바보 같은 긍정, 바 보 같은 낙관’이라는 그만의 미덕을 지켜나가기를.
그는 ‘한국 도자 예술의 리더’로 묘사되는 신상호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빈 들에 홀로 깨어 있는 것처럼,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신상호 교수를 보며 인생의 에너지와 창작의 에너지를 얻는다. 외로운 창조의 길에서 가끔 실족할 때마다 선생에게 달려가 투정도, 강짜도 부리다 오면 다시 무릎 펴고 일어날 기운이 생긴단다. “그래,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 외치게 된다. 그에게 트임의 시간을 주는 또 하나의 존재는 얼마 전 태어난 늦둥이 둘째다. “예전 작품에서는 ‘난 복 받을 거야!’ ‘잘해봐야지!’라고 이 앙다문 결심이 보였죠.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 ‘이 복은 네가 가져’ ‘이 복 줄게’라는 수더분한 마음이 작품에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생명을 창조한 그에게 신이 준 덤일 것이다.
왠지 한번 손으로 쓰다듬어보고 싶은 그의 작품, 보고 있으면 생명 있는 것들의 계절은 모두 봄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작품. 그 조각적 회화, 회화적 조각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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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씨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2007 년 첫 개인전 (시크릿 가든 secret garden)을 가졌고, 1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지난 2월 금산갤러리 도쿄에서 (Castor Pollux: spell for calling happiness)전을 열었고 현재 홍익대 도예유리과에 출강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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