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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날아라! 기러기 가족
우리 사회엔 3만~5만 명에 달하는 기러기 아빠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제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기러기 가족의 행복 찾기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지요. 기러기 가족으로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의 조언, 기러기 가족이 겪는 심리적·물리적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전문가의 제안을 들려드립니다.


이명숙, ‘밴쿠버의 기러기 가족’ 시리즈, 디지털 프린트, 각각 61×76cm, 2009

너무 외롭다 보니 집에 날아다니는 날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겠습니다. 텅 빈 집에 맨정신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멀쩡한 침대 놔두고 매일 밤 소파에서 TV를 보다 리모컨을 쥔 채 태아처럼 웅크리고 잠듭니다. 9할의 외로움과 1할의 자유를 밥처럼 비벼 먹는 기러기 아빠를 위해 방학 때 가족이 잠시 한국에 돌아오지만, 이때도 기러기 아빠는 ‘외딴섬’입니다. 아내 왈 “남의 집에 누워 있는 것 같아.” 채송화처럼 보들보들하던 성격의 딸은 “퐈덜, 돈 터치 미!” 까슬한 수염이 돋기 시작한 아들 왈 “괜히 왔네.” 한 달 정도 지내다 가족이 되돌아가
면 기러기 아빠는 사무치는 외로움 한쪽에 묘한 안도감이 생겨나는걸 느낍니다. 그렇게 기러기 생활 1년여가 지나가면 ‘시한부 홀아비’의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빨래처럼 소파에 널려 보내는 주말이 기막히게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가끔 두렵기도 합니다. 9할의 자유, 1할의 외로움이 고착될까 봐서요. ‘한솥밥 먹고 사는 게 식구 아이가!’ 싶고 아이의 유학 비용도 점점 부담이 되자 기러기 아빠는 가족을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그들은 왠지 낯섭니다. 2년 동안 기러기 생활을 한 윤용인 씨(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는 이 낯선 상황을 “유
부녀에게 장가가는 심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기러기 가족은 1990년대 외환 위기 이후 생겨난 ‘신 新 이산가족’입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자 중산층이 자녀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택한 게 바로 ‘교육 투자-조기 유학’이라는 연구도 있지요. 그 발생 원인이 무엇이든 기러기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가족 해체, 자살, 희생 등 부정적 면만 부각하는 바람에 이 시대의 ‘문제’로 비치기도 했지만, 기러기 가족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현상’일 뿐입니다. 캐나다의 기러기 가족을 관찰한 사진으로 Family>라는 전시를 연 작가 이명숙 씨는 말합니다. “기러기 가족은 우리의 가족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공허는 그들에게서 더 두드러지지 않더군요. 실제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도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렇게 바쁜 아버지와 비교해서 어머니는 덜 바쁜 사람으로 간주하고 ‘나는 돈을 벌어오니 당신은 아이 교육을 책임져라’ 하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 가족 사이에 생겨납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를 홀로 조기 유학 보내느냐, 따라가느냐의 갈림길에서 ‘기러기 가족’의 삶을 택하죠.
아버지의 부재, 자식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동일시하는 어머니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가족 형태지요.” ‘딸라 빚’을 내서라도 부모가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어’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조기 유학을 보낸 학부모 3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어 습득이 28.2%, 국제적 안목을 위해 24.7%, 경쟁 위주의 교육과 대입 제도 10.7%, 학생의 재능에 적합한 교육을 시키지 못해서 8.4%, 과다한 사교육비 4.9%, 기타(한국의 미래가 불확실해서, 외국어 학력을 더 인정하는 풍토,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23.1%로 나타났습니다.

또 이 기러기 아빠에도 등급이 있더군요. 경제력이 ‘빵빵해’ 언제든지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는 ‘독수리 아빠’, 1년에 한두 번 건너가 만나는 ‘기러기 아빠’, 살림이 빠듯해 만나러 가지 못하는 ‘펭귄 아빠’. 그 등급이 어떠하든 모든 기러기 아빠는 외로움, 식사·청소 등 일상의 문제, 경제적 압박 등을 홀로 해결해야 합니다. 기러기 엄마도 남편의 정신적 지원과 모국어의 편안함이 없는 낯선 세계에서 아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도 새로운 교육 방식과 문화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기러기 가족 생활을 끝내고 재결합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습니다. 소원해진 가족 간의 관계를 가다듬어야 하고, 대입 위주의 대한민국 학교 교육에도 다시 적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존재의 알리바이가 되는 ‘가족’이니까요. 지금 기러기 가족으로 살고 있는 분, 앞으로 기러기 가족이 될 분, 지금 막 재결합한 기러기 가족을 위해 <행복>이 준비한 솔루션입니다. 훨훨 날아라, 기러기 가족!




 디자인 여유미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조경택 캘리그래피 강병인

기획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