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가 아니라 13도 경사진 곳에 비스듬히 세워진 노보리가마에 불을 때면 온도는 시간당 100℃씩 올라간다. 그러니 9시간 동안 불을 때면 초벌구이의 온도인 900℃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관건은 다음. 중벌구이를 하는 1300℃까지 올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흙은 건조되는 과정에서 크기가 16%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지점이 되면 불을 빼야 할지, 조금 더 올려야 될지를 판단해야 되는 때가 온다. 말 그대로 순간의 선택이 완성도를 좌우하게 되는 것.
그는 그래프를 그린 다음 일정하게 위로 올라가다 불꽃처럼 가물거리며 이어지는 선을 그린다. “계단식 가마에 불을 지피면 산화와 환원이 계속되기 때문에 온도가 지그재그 형태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기계식인 가스 가마는 온도가 고르게 쭉 올라갑니다. 그래서 가스 가마에서는 100%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단식 가마에서 작품을 구워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은 70% 정도입니다. (완성률은 낮지만) 정말 제 혼이 담긴 채색을 내려면 계단식 가마를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 심씨는 두 나라 모두를 버릴 수 없습니다”심수관 씨의 가문은 줄곧 한 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 아들들은 한국계 여성과 결혼을 했기에 가업을 잇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15대 심수관 씨의 아들은 둘. 중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두 아들도 초등학생 때부터 가마에 불 지피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듯 여겨지는 두 아들 가운데 도공의 일을 하고자 하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줄 생각이다.
“저는 두 아들에게 아주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할 때마다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아이들은 ‘아빠가 저렇게 힘들고 어려워하는데 나는 안 해야 되겠다’고 느낄 것입니다. 저 또한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들은 모두 공부보다 가마 일 돕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둘 다 가업을 하고 싶어 한다면 같이 하게 할 겁니다.”
때는 늦은 봄, 앞뜰에 심어놓은 동백나무에 마침 붉은 꽃 몇 송이가 피어 있다. 그 꽃을 보자니 4백여 년을 지나오는 동안 수십 명의 심수관가 사람들은 봄마다 붉은 동백꽃을 보며 전라도 남원 땅을 그렸을 것 같아 울컥해진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서러움과 뼈마디 사무치는 향수를.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고향 땅에 대한 원망과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 그러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솟구치는 그리움을. 조선 도공들의 일본살이도 필시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 땅의 흙도, 선조부터 내려오던 불도 없는 열악한 화산지대에 불시착해 그래도 혼불만은 놓지 않았던 한민족의 저력. 그럼에도 ‘뿌리’를 준 한국과 ‘존재’의 터전이 되어준 일본, 두 나라 모두 따뜻하게 품으려 했던 겸손한 자세가 없었다면 지금의 심수관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화산 폭발 때 분출된 용암이 응고된 것이 돌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그 돌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치며 다시 흙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흙을 이용해서 다시 돌을 만듭니다. 도공의 일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흙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후 4시 45분. 인터뷰가 예정보다 길어지자 “다른 일이 늦어졌다”며 끝내기를 재촉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으로 간다. 그리고 마당을 쓸고 있는 직원들 사이로 들어가 낙엽을 쓸기 시작한다. 자신이 빌려 쓰는 지구의 자원을 귀하게 여기고 마당 쓰는 일 하나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모습에서 조선 도공의 혼을 본다.
* <15대 심수관展> 심수관요의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의 글씨 ‘한 손 한 손一手一手’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물어보니 ‘한 손 한 손, 마음을 담아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심수관요의 철학인가봅니다. 15대 심수관 씨가 한 손 한 손 정성들여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고치현高知縣 다이마루백화점大丸百貨店에서 열립니다. 이 전시에는 다완, 차의 통, 향로, 화병 등 차도구들이 전시됩니다. 문의 (81)099-274-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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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
15대 심수관 씨의 인터뷰와 심수관요 탐방은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공부하는 한양대 최고 엔터테인먼트 과정(원장 손대현, the eep)의 협조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KTF 김연학 전무, 패션디자이너 박윤수, 변재용 한솔교육 대표이사, 윤재승 대웅제약 대표이사, 정성모 인평 상무이사, 가수 진미령 씨 등 10기 원생 30여 명이 참가하는 해외선진학습 체험 프로그램이 가고시마 현지에서 열렸습니다. the eep는 엔터테인먼트, 영화, 애니메이션, 디자인, 패션, 공연, 미디어, 한류, 식문화, 도서 저자와의 대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관한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머물다 보니 원생들의 자유롭고 열려 있는 마인드가 최강점인 듯싶었습니다. “우리는 樂과 함께 움직이며 樂은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는 모토를 원생 한 명 한 명에게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배움과 나눔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역시 학이시습 불역열호學而時習 不亦說乎입니다.
“심수관 씨의 ‘품격이 바로 혼’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이분들이 한국에 계셨다면, 조선시대 도자기의 맥을 4백여 년 이어오며 전통을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손대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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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대 심수관 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달려간 곳은 정원. 떨어진 낙엽을 쓸며 말했다. “저와 직원들은 아침이 아니라 퇴근 무렵에 청소를 합니다.” 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아침 나절부터 무언가를 쓸고 닦는 것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듣는 빗자루 소리가 반갑다. 그의 보통 아침 8시부터 6~7시까지 작업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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