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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의 중국 기행 배병우, 중국을 가다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적 작가가 된 배병우 선생이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정신과 문화의 뿌리가 되는 나라이자, 세계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이 여행은 출발했습니다. 내밀하고 깊숙한 시선으로 중국의 과거를 찍는 여정은 우리에게 내일을 내다보는 눈을 안겨줄 것입니다.


부처의 땅, 오대산 태초의 땅인 듯 척박하고 황량한 산시 성에 자리 잡은 오대산은 중국 불교의 4대 명산 중 하나다. 이곳에서 수행을 끝낸 자장율사가 신라로 돌아가 강원도의 월정사를 개산하면서 산 이름도 오대산을 그대로 따왔다고 하니 우리와 인연도 깊은 부처의 땅이다. 칼바람 몰아치는 해발 2500m가 넘는 이곳 동대 東台를 내려가면 어머니의 자궁 같은 분지가 나오면서 100여 개의 사찰이 아늑하게 자리 잡은 부처의 땅에 도달하게 된다.


오대산은 어머니 자궁 같은 분지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험하고 척박한, 마치 화성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황량한 지대다. 하지만 사찰들이 들어선 분지 속으로 들어오면 왜 이곳이 부처의 땅이라 하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루 만에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붉은 벽에 망설임 없이 흩날리듯 쓴 ‘佛’ 자 앞에 서면 부처의 얼굴 앞에 맞닥뜨린 듯 마음을 땅으로 낮추게 된다.


오대산 사찰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아이콘’ 역할을 하는 것이 탑원사의 대백탑이다. 라마 불교의 영향으로 하얀 회벽에 56m 높이의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어 천년 고찰의 터 오대산을 하얀빛으로 감싸는 형국이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별 같은 이 탑 앞에 도달하기 위해 승려들은 몇 달을 걸려 오체투지로 황토 고원을 지나고 삭풍을 이기며 찾아온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의 기원을 찾는 노력과 종교적 헌신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한 종교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건축물은 더 아름답다.



우리가 중국의 ‘속’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
건축가 승효상 씨는 중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라 어떤 형이상학적 개념 같아요. 5000년 역사 동안 중원을 차지하는 민족이 패권을 잡으면 중국의 주인이 되었고 중국을 지배한 이민족마저도 결국 중국화되어버리는, 정말 한 번에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나라죠.” 아, 그래서였을까. 중국과 일본은 분명 우리의 오랜 이웃인데 일본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이웃이고, 중국은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이웃처럼 느껴진 이유가. 일본이 불편한 이유야 뻔하다. 우리가 뭔가를 많이 물려주고 건네준 아우 같은 이웃이 영리하고 날렵하게 저만치 성큼성큼 우리를 추월해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배 아픈 불편함이다. 그런데 중국은 좀 다르다. 절대로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 같고 형 같던 이웃이 서양과 아편으로 한판 붙은 후 혁명을 거치면서 말만 인민의 공화국이지 인민 전체가 ‘미싱’을 돌리는 ‘made in china’라는 세계의 저가 低價 공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경 반 두려움 반이던 이웃을 한참이나 무시했다. 우리가 잠시 거대한 착각 속에서 중국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중국은 슬금슬금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두 중국이 세계의 미래 운명을 쥐고 있다면서 초조해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 세계에서 남은 시장은 중국밖에 없다면서 중국 시장으로 뛰어든 세계의 500대 기업이 약속이나 한 듯이 중국 땅에서 무릎을 꿇고 ‘중국이란 나라는 도통 모르겠다’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골목대장을 하고 있는 미국조차 중국을 요리하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이웃일뿐더러 모든 나라가 그 속내를 짐작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나라다.

이 모두가 중국의 ‘속’을 알 수 없어 생긴 일이다. 그 ‘속’이란 바로 형이상학적인 나라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국의 과거일 것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가 일어난 땅, 그리고 그 문명을 5000년 동안 고스란히 유지해온 제국, 20세기 100년을 제외하고는 당나라 때부터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한 경제 대국, 서양인이 알고 싶어 안달하는 동양 정신의 뿌리인 유교와 불교와 도교, 천자 天子와 인민 그리고 지구 상에서 유통기한을 다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아무렇지도 함께 한통속으로 굴러가고 있는 나라, ‘미싱’을 돌리던 14억 명의 인민이 세계의 모든 기업이 군침을 흘리는 ‘소비자’로 대기하고 있는 나라. 그 모든 의문과 답이 중국의 과거에 있다. 중국의 과거는 단순한 역사를 넘어서 세계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이다.

우리가 새삼 이 ‘속’을 알 수 없는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지만 우리 정신의 뿌리, 문화의 뿌리가 그 땅에서 왔다는 사실을 명민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후 30년 동안 세계 변화의 50%가 중국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세계적인 예측이 곧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우리가 어떻게 중국의 마음을 읽어내느냐에 따라 그 현실은 가혹하거나 달콤하게 될 것이다.

*중국 기행은 중국의 문화유산 여행을 통해 다음 세계를 이끌어갈 키워드를 찾아가고자 하는 한샘의 지원으로 계속됩니다.

글 김은주(디자인하우스 단행본팀 편집장) 사진 배병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