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군요. 엄마와 아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방학이란 ‘놓을 방, 배울 학’, 학교에서 배우던 것을 놓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잘 쉬고 많이 놀아야 행복해서 새 학기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지요. 방학 동안 든든하게 충전한 힘으로 다음 한 학기를 지탱할 수 있어요.
겨울방학은 특히 새 학년을 준비하는 때라 뒤떨어지는 성적을 올리려 분주할 수도, 춥다고 집에서만 지낼 수도 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2011년 첫 방학을 그냥 흐지부지 보내기엔 너무나 아쉬워요. 그러니 겨울에 제격인 눈싸움으로 채우는 1월은 어떨까요?
우리 아들은 방학 때마다 코가 삐뚤어지게 자는데 점심때가 되어서야 깨우면 “엄마, 제가 아침 안 먹어서 한 끼 벌어드렸네요” 하며 일어나곤 했어요. 이에 난 “무슨 소리, 어린이가 제때 먹고 잘 자라는 것이 더 효도다” 하며 맞받아쳤지요.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게으름을 피울 땐 눈싸움으로 아이를 일으켰어요. 아시죠? 눈싸움은 두 가지가 있어요. 아이와 시간이 많을 때, 겨울에 하기 안성맞춤이죠. 알아차리셨나요? 긴소리 눈싸움과 짧은 소리 눈싸움. 좋아하는 눈이 펑펑 오래도록 내렸으면 하고 바라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으로 하는 눈(雪)싸움은 길고, 눈과 눈을 마주하고 하는 눈(目)싸움은 깜빡이기 쉬워 짧아요.
눈이 펑펑 내릴 때는 이때다 하며 완전군장한 뒤 아이와 밖에 나가 온몸으로 눈을 맞고 뛰어 놀아야지요. 밤새 사박사박 내린 눈이라면 눈 비비고 달려나가 쌓인 눈에 발도장, 손도장을 찍고 나서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눈을 꽁꽁 뭉쳐 던지는 눈싸움으로 마무리하지요. 눈을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 아이 머리에 퍼부으면 씩씩거리긴 해도 하얀 이를 한껏 드러내며 활짝 웃어요. 엄마는 장난기가 발동해 눈덩이를 옷 안으로 밀어 넣으려 덤비는 아이를 이리저리 피해다니기 바쁘고요. 이런 엄마와 아이에게 추위, 움츠림이란 말은 없어요. 몸 부딪쳐 하는 눈싸움만큼 좋은, 마음 두드리는 눈싸움도 있어요. 집 안에서 하는 눈싸움으로는 서로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서로 눈과 눈을 맞대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맞히는 놀이예요. 마음 읽기가 쉽지 않아 오답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인 나는 못 맞히는 데 상대인 아이가 정직하게 말해줘 답을 알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모자지간의 정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마음을 열어 보이니 그 안에 들어가볼 수 있거든요.
아이를 놀리기도 어르기도 하고, 내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방학을 보내요. “너, ◯◯ 보고 싶어서 걔 생각하고 있구나?” “다음 학기에는 성적을 더 올려야지 하고 궁리하고 있구나” “엄마는 왜 이렇게 예쁘지 하고 생각하고 있지?”라며 장난스럽게 아이 생각을 넘겨짚어도 좋아요.
아이가 거꾸로 “엄마는 오늘 똑똑한 우리 딸에게 무슨 맛있는 요리를 해줄까, 우리 아들 나날이 멋있어지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요?” 해도 좋아요. 서로 눈을 맞추고 하는 놀이에 재미를 붙이다 보면 차차 눈으로도 참말을 하게 되요.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거든요.
2000년 밀레니엄 해돋이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군요. 우리 아이와의 시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갈 테니 오늘을 맘껏 즐겨요. 비디오나 사진을 보며 “너 그때 귀여웠어. 예뻤어”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희희낙락 겨울이 신나고, 하하호호 방학이 행복할 테니….
- 자녀와 함께 읽는 글 눈 : 싸움, 눈싸움하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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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