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중년이라면 친구들과 불국사, 첨성대 앞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경주’는 양철 도시락을 흔들어 먹던 검정 교복 차림의 까까머리, 단발머리 고교생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이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그러나 경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요하며 첨성대와 불국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요즘 그곳 경주에서 참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옆구리에 책가방을 낀 남학생들과 치마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수학여행 단골 코스 근처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머리에 희끗희끗한 시간이 더해진 장년이라는 점이다.
“교복을 입으니 ‘야, 인마. 너 학교 다닐 때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 피고 있을 때 말이야. 교장 선생님이 문을 두드린 건지도 모르고 두 대만 빨고 나갈게 했다가 엄청 두드려 맞았잖아. 기억나?’ 하면서 서로 놀리고, 고무줄 끊은 이야기며 커닝할 때 안 보여줘서 싸운 이야기 등 몇십 년 만에 만났지만 어색할 새 없이 이야기가 줄줄 나오더군요.” ‘추억의 수학여행’을 만든 사람, 시간을 뭉텅 잘라 장년층을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의 이야기다. 그는 경주 토박이로 자라 고향을 지극히 사랑해 세운 ‘신라문화원’을 운영하면서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그래서 개발한 프로그램이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이고, 추억의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은 여건상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웠지만 수학여행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을 다시 경주로 불러들였다. 영화 <신라의 달밤> 소품용 교복을 제작한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교복 120여 벌을 준비했고,벼룩시장 등을 뒤져 가방과 모자도 구했다.
1 신라문화원의 진병길 원장. 경주 토박이라서 그는 정작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따라서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 콘셉트로 첨성대 앞에 서보는 건 처음이다.
2 자세히 보면 첨성대가 약 5도 기울어져 있다. 그 이유는 경주에서 찾아보길.
3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을 위해 서울, 광주, 순천 등 전국에서 경주를 찾아온다.
“교복을 입고 유적지에 가면 학생 요금으로 표를 끊어줘요. 첨성대는 성인이 5백 원, 고등학생이 3백 원인데 겨우 2백 원 덜 내는 거지만 ‘와, 우리 고등학생이다’ 이렇게 환호성을 질러요.” 추억의 수학여행은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 코스는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답사를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친구들과 쌓인 회포를 풀고 옛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더 마련한 까닭이다. 불국사 앞 잔디밭에서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천마총 내 벤치에 앉아 달걀을 까먹는 것이 추억의 수학여행의 묘미다. 교복 입는 것을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교복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 “50대에 접어든 여고졸업생들이 온 적이 있는데, 사람 수보다 교복 수량이 적었어요.
당연히 몇 분은 안 입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서로 입으려 하더라고요.” 남자 교복 하의는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검은바지를 입고 와달라고 사전에 이야기해도 꼭 흰 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오는 분들이 있다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창 시절‘농띠(농땡이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의 무리가 형성돼 정말 수학여행 온 것 같은기분이 든단다. 얼마 전에는 포스코에서 단체로 추억의 수학여행을 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때는 사장도 동기, 부장도 친구가 되는데, 동창들과 오는 수학여행과는 또 다른 감상에 빠질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삶. 잠시나마 풋풋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삶의 쉼표를 찍고 돌아오는 것,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4 이른 아침부터 체험 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첨성대로 향하고 있다.
“교복을 입으니 ‘야, 인마. 너 학교 다닐 때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 피고 있을 때 말이야. 교장 선생님이 문을 두드린 건지도 모르고 두 대만 빨고 나갈게 했다가 엄청 두드려 맞았잖아. 기억나?’ 하면서 서로 놀리고, 고무줄 끊은 이야기며 커닝할 때 안 보여줘서 싸운 이야기 등 몇십 년 만에 만났지만 어색할 새 없이 이야기가 줄줄 나오더군요.” ‘추억의 수학여행’을 만든 사람, 시간을 뭉텅 잘라 장년층을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의 이야기다. 그는 경주 토박이로 자라 고향을 지극히 사랑해 세운 ‘신라문화원’을 운영하면서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그래서 개발한 프로그램이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이고, 추억의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은 여건상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웠지만 수학여행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을 다시 경주로 불러들였다. 영화 <신라의 달밤> 소품용 교복을 제작한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교복 120여 벌을 준비했고,벼룩시장 등을 뒤져 가방과 모자도 구했다.
1 신라문화원의 진병길 원장. 경주 토박이라서 그는 정작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따라서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 콘셉트로 첨성대 앞에 서보는 건 처음이다.
2 자세히 보면 첨성대가 약 5도 기울어져 있다. 그 이유는 경주에서 찾아보길.
3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을 위해 서울, 광주, 순천 등 전국에서 경주를 찾아온다.
“교복을 입고 유적지에 가면 학생 요금으로 표를 끊어줘요. 첨성대는 성인이 5백 원, 고등학생이 3백 원인데 겨우 2백 원 덜 내는 거지만 ‘와, 우리 고등학생이다’ 이렇게 환호성을 질러요.” 추억의 수학여행은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 코스는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답사를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친구들과 쌓인 회포를 풀고 옛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더 마련한 까닭이다. 불국사 앞 잔디밭에서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천마총 내 벤치에 앉아 달걀을 까먹는 것이 추억의 수학여행의 묘미다. 교복 입는 것을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교복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 “50대에 접어든 여고졸업생들이 온 적이 있는데, 사람 수보다 교복 수량이 적었어요.
당연히 몇 분은 안 입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서로 입으려 하더라고요.” 남자 교복 하의는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검은바지를 입고 와달라고 사전에 이야기해도 꼭 흰 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오는 분들이 있다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창 시절‘농띠(농땡이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의 무리가 형성돼 정말 수학여행 온 것 같은기분이 든단다. 얼마 전에는 포스코에서 단체로 추억의 수학여행을 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때는 사장도 동기, 부장도 친구가 되는데, 동창들과 오는 수학여행과는 또 다른 감상에 빠질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삶. 잠시나마 풋풋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삶의 쉼표를 찍고 돌아오는 것,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4 이른 아침부터 체험 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첨성대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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