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은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옥 여기저기에 놓인 키와 두레박을 머리에 쓰고 장난질에 분주했다. 아빠는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넋 놓고 바라보다 닦고 또 닦아도 금세 다시 맺히는 이마의 땀방울을 연신 부채로 식히느라 분주하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아내는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마룻바닥 소리가 재미있다며 함박 웃는다. 토요일 오후 3시, 계동에 위치한 어느 한옥에 외국인 가족이 모여들었다. 촬영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각기 한옥을 온몸으로 체험하느라 바쁜 이들, 쉐라톤 인천 호텔 총지배인 알랭 리고덴 Alain L. Rigodin 씨 가족이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어제부터 드디어 한옥에 간다는 사실에 마냥 들떴어요. 모두들 아침부터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채비했지요. 저희가 사는 연희동 근처에는 한옥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한 번쯤 한옥이 많이 모여 있는 이 동네에 와서 진짜 한국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창덕궁, 경복궁 등에서 한옥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어떤 곳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폐쇄돼 있기도 하고, 그저 눈으로만 경험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알랭 씨는 인도네시아인인 아내 티카 리고덴 Tica L. Rigodin 씨와 함께 한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이 특별한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냈다. “레노베이션을 하긴 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있던 한옥 같아요. 언제 지은 집이죠?” “이 기둥의 색깔과 저 문지방의 색깔이 다르군요. 이건 비교적 최근 것 같고, 저건 아주 오래된 나무 같아요. 레노베이션 때문이겠죠?” “지붕 위에 앉은 저 인형 같은 작은 동상은 뭐죠?” 그런데 벽안의 이방인에게 가장 이색적인 것은 다름 아닌 들쇠에 걸어 올려놓은 분합문 分閤門. 알랭 리고덴 씨는 들쇠 하나로 대청이 서양의 리빙 룸처럼 열린 공간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한다. “우리 집도 중문을 열어놓을 때 들쇠를 이용해볼까? 미닫이문보다 맞바람이 잘 들어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겠는걸?”
붓글씨로 씌여진 한글을 신기한듯 쳐다보며 상상에 의존해 책 내용을 해석하고 있는 아이들. 쉐라톤 인천 호텔 총지배인 알랭 리고덴 씨 가족에게 한옥은 음식, 한글, 도자기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체험장과 같다.
연말연시 지인들에게 보내는 카드에 이 사진을 넣을 것이라며 가족 모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포즈를 취했다.
한옥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 얼마 전에 큰맘 먹고 DSLR 카메라를 구입한 티카 리고덴 씨는 한옥을 둘러보다 창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한옥의 창이 마치 카메라 렌즈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이유로 창의 프레임을 꼽으며, 창밖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벽면에 별다른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지만 집 안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티카는 단연 창의 역할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도자기에 대한 심미안을 자랑한다. 장식장에 놓인 백자를 보고는 탄성을 내지르며 남편을 부른다. “여보, 이 도자기 어때요? 새 네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새 옆의 꽃나무 생김새가 제각기 달라요. 그냥 여러 나무를 한데 그려놓은 게 아니라, 계절별로 분류한 것 같아요. 자, 보세요. 이 새가 앉아 있는 나무는 퍼시시어(개나리)잖아요? 이 도자기 작품의 주제는 한국의 사계절임에 틀림없어요.” 티카 리고덴 씨는 동양의 도자기 가운데 한국 도자기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아까 그 도자기만 봐도 그래요. 백자에 새를 그려 넣는다고 가정할 때 중국은 하얀 면을 수십 마리의 새로 빼곡히 채울 거예요. 너무 많이 그려 넣어 새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일본은 백자의 크기와 상관없이 덩그러니 새 한 마리를 그려넣을 거예요. 심플함을 가장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이에 반해 한국은 중국의 과도함도 아니고, 일본의 어딘지 모를 부족함도 아닌 딱 그 중간이에요. 한국인은 예부터 무엇이든지 조화를 가장 염두에 두고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평소 엄마의 고상한 취미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건만 오늘만큼은 엄마의 비교 문화 강론(?)을 귀담아듣는다.
1 전통차를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정원에 심혈을 기울인 티 게스트하우스.
2, 4 다식 만들기 체험에 열중인 아이들.
3 아빠와 아들이 한옥을 마치 집처럼 편히 여기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외국인도, 아이도 쉽게 즐기는 궁중 다식 체험 아까부터 틈만 나면 ‘쿠킹 타임’을 외치는 아이들 덕에 온 가족이 좌식 탁자를 앞에 두고 둘러앉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송홧가루, 깨, 꿀 등의 요리 재료에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은 그 용도를 하나하나 캐묻고 손끝으로 맛을 보기도 한다. 알랭 리고덴 씨 가족이 선택한 체험 프로그램은 궁중 다식 만들기. 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고, 다 만든 후 온 가족이 차와 함께 곁들이며 대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다. 준비한 가루에 깨와 꿀 등을 넣고 적당히 반죽해 적당량씩 떼어 다식판에 채워넣고 꾹 눌러 문양을 찍어내는 시간. 잠시 긴장한 찰나 아이들은 마치 쿠키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며 이내 팔을 걷어붙인다. 그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딸아이가 소반에 얌전하게 다식을 담아 내놓는다. 이때 엄마는 진지한 딸아이의 움직임에 아랑곳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전통 그대로 어른에게 먼저 절하고 다과를 대접하라며 “바우! 바우!”를 외친다. 엄마의 뜬금없는 요구에 온 가족이 한바탕 웃는다. 지금껏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머리 장식부터 신발까지 ‘풀 세팅’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딸은 자신이 입은 한복이 지금까지 입어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든다며 푹푹 찌는 더위에도 한동안 한복을 벗을 줄 몰랐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배우는 시간이 있어요. 그때 한옥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다양하게 접했지요. 하지만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참 다르네요. 이 곳에서 와서 처음으로 알았어요. 방, 마당, 마루 등이 한옥 안에서 어떤 구조로 펼쳐지는지요.” 한복을 입은 모녀는 마당에서 마치 군인처럼 넓은 보폭의 걸음을 걸으며 장난을 친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의상인 카바야는 몸에 착 달라붙어 앉거나 걸을 때 다소 불편한데, 한복은 겉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편해서 놀라는 눈치다. 옛날에 한국 여인들이 한복을 입고 부엌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모녀는 농을 떤다.
5 담장으로 뻗은 덩쿨이 멋스러운 티 게스트하우스 입구.
베트남, 싱가포르 등 전 세계를 누비는 호텔리어인 남편, 아빠를 두었건만 지금까지 이 가족의 거주지는 사실 그리 다이내믹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 가든 가족은 늘 호텔에서 살았다. 대개 총지배인 가족의 보금자리는 호텔 내 어느 객실로 정해지는 까닭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 한국에 와서 “내 집’을 갖게 됐다.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에 호텔 측에서 호텔 밖에 집을 마련해준 덕이다. 그런 이들이기에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있는 동안 마당 있는 주택은 물론 아파트 등 거주지를 바꿔가며 여러 곳에 머물러보고 싶다고. 이번에 한옥에 머물면서 가족은 미래의 거주지에 한옥을 추가했다. 더위가 한풀 꺾이자 가족은 굽이진 한옥에서 다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미로처럼 통로가 얽혀 있고, 공간이 분할돼 있는 탓에 숨바꼭질하기에 제격이라며…. 알랭 리고덴 씨 가족에게 한옥은 온몸으로 문화를 체험하는 작은 박물관이자 놀이터다.
6 큰딸이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에게 정성스럽게 다과상을 올리고 있다.
붓글씨로 씌여진 한글을 신기한듯 쳐다보며 상상에 의존해 책 내용을 해석하고 있는 아이들. 쉐라톤 인천 호텔 총지배인 알랭 리고덴 씨 가족에게 한옥은 음식, 한글, 도자기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체험장과 같다.
연말연시 지인들에게 보내는 카드에 이 사진을 넣을 것이라며 가족 모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포즈를 취했다.
한옥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 얼마 전에 큰맘 먹고 DSLR 카메라를 구입한 티카 리고덴 씨는 한옥을 둘러보다 창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한옥의 창이 마치 카메라 렌즈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이유로 창의 프레임을 꼽으며, 창밖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벽면에 별다른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지만 집 안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티카는 단연 창의 역할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도자기에 대한 심미안을 자랑한다. 장식장에 놓인 백자를 보고는 탄성을 내지르며 남편을 부른다. “여보, 이 도자기 어때요? 새 네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새 옆의 꽃나무 생김새가 제각기 달라요. 그냥 여러 나무를 한데 그려놓은 게 아니라, 계절별로 분류한 것 같아요. 자, 보세요. 이 새가 앉아 있는 나무는 퍼시시어(개나리)잖아요? 이 도자기 작품의 주제는 한국의 사계절임에 틀림없어요.” 티카 리고덴 씨는 동양의 도자기 가운데 한국 도자기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아까 그 도자기만 봐도 그래요. 백자에 새를 그려 넣는다고 가정할 때 중국은 하얀 면을 수십 마리의 새로 빼곡히 채울 거예요. 너무 많이 그려 넣어 새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일본은 백자의 크기와 상관없이 덩그러니 새 한 마리를 그려넣을 거예요. 심플함을 가장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이에 반해 한국은 중국의 과도함도 아니고, 일본의 어딘지 모를 부족함도 아닌 딱 그 중간이에요. 한국인은 예부터 무엇이든지 조화를 가장 염두에 두고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평소 엄마의 고상한 취미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건만 오늘만큼은 엄마의 비교 문화 강론(?)을 귀담아듣는다.
1 전통차를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정원에 심혈을 기울인 티 게스트하우스.
2, 4 다식 만들기 체험에 열중인 아이들.
3 아빠와 아들이 한옥을 마치 집처럼 편히 여기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외국인도, 아이도 쉽게 즐기는 궁중 다식 체험 아까부터 틈만 나면 ‘쿠킹 타임’을 외치는 아이들 덕에 온 가족이 좌식 탁자를 앞에 두고 둘러앉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송홧가루, 깨, 꿀 등의 요리 재료에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은 그 용도를 하나하나 캐묻고 손끝으로 맛을 보기도 한다. 알랭 리고덴 씨 가족이 선택한 체험 프로그램은 궁중 다식 만들기. 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고, 다 만든 후 온 가족이 차와 함께 곁들이며 대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다. 준비한 가루에 깨와 꿀 등을 넣고 적당히 반죽해 적당량씩 떼어 다식판에 채워넣고 꾹 눌러 문양을 찍어내는 시간. 잠시 긴장한 찰나 아이들은 마치 쿠키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며 이내 팔을 걷어붙인다. 그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딸아이가 소반에 얌전하게 다식을 담아 내놓는다. 이때 엄마는 진지한 딸아이의 움직임에 아랑곳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전통 그대로 어른에게 먼저 절하고 다과를 대접하라며 “바우! 바우!”를 외친다. 엄마의 뜬금없는 요구에 온 가족이 한바탕 웃는다. 지금껏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머리 장식부터 신발까지 ‘풀 세팅’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딸은 자신이 입은 한복이 지금까지 입어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든다며 푹푹 찌는 더위에도 한동안 한복을 벗을 줄 몰랐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배우는 시간이 있어요. 그때 한옥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다양하게 접했지요. 하지만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참 다르네요. 이 곳에서 와서 처음으로 알았어요. 방, 마당, 마루 등이 한옥 안에서 어떤 구조로 펼쳐지는지요.” 한복을 입은 모녀는 마당에서 마치 군인처럼 넓은 보폭의 걸음을 걸으며 장난을 친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의상인 카바야는 몸에 착 달라붙어 앉거나 걸을 때 다소 불편한데, 한복은 겉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편해서 놀라는 눈치다. 옛날에 한국 여인들이 한복을 입고 부엌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모녀는 농을 떤다.
5 담장으로 뻗은 덩쿨이 멋스러운 티 게스트하우스 입구.
베트남, 싱가포르 등 전 세계를 누비는 호텔리어인 남편, 아빠를 두었건만 지금까지 이 가족의 거주지는 사실 그리 다이내믹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 가든 가족은 늘 호텔에서 살았다. 대개 총지배인 가족의 보금자리는 호텔 내 어느 객실로 정해지는 까닭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 한국에 와서 “내 집’을 갖게 됐다.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에 호텔 측에서 호텔 밖에 집을 마련해준 덕이다. 그런 이들이기에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있는 동안 마당 있는 주택은 물론 아파트 등 거주지를 바꿔가며 여러 곳에 머물러보고 싶다고. 이번에 한옥에 머물면서 가족은 미래의 거주지에 한옥을 추가했다. 더위가 한풀 꺾이자 가족은 굽이진 한옥에서 다시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미로처럼 통로가 얽혀 있고, 공간이 분할돼 있는 탓에 숨바꼭질하기에 제격이라며…. 알랭 리고덴 씨 가족에게 한옥은 온몸으로 문화를 체험하는 작은 박물관이자 놀이터다.
6 큰딸이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에게 정성스럽게 다과상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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