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에서 5등을 전교 5등으로! 늘 10등 밖에서 맴돌던 아들 녀석이 어느 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5등 성적표를 내밀었습니다. 그럴 땐 인정사정 보지 말고 칭찬해줘야 합니다. 치킨과 피자를 원 없이 안겨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뭘 좀 아는 엄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엄마의 무차별 칭찬 샤워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에게 속삭입니다. “우리 아들 담에도 5등 한번 더 하지?”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한 녀석에게 말합니다. “반에서 말고 전교에서 5등 말이야. 한번 해보자.”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이 결심한 듯 외칩니다. “오케이. 전교 5등 코~올!” 평범한 도전은 평범한 결과만을 낳습니다. 도전의 수준을 몇 단계 확 끌어올리고 필요한 에너지를 급속 충전해주십시오. 기적은 이렇게 일어납니다. 과연 그럴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은 아무 말씀 마시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보십시오. 박정희 대통령이 이 길을 뚫자고 했을 때,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는 겁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들 기막혀 했습니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첫 삽을 떴을 때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 경제 기적의 대역사가 시작됐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울산 모래밭에 조선소를 지을 때도 그랬고,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도 그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배를 끌고 노량으로 향했을 때, 세종대왕이 어전회의에서 한글을 창제한다고 했을 때,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업적 그 이면에는 바로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도전이 있었습니다.
천 리 길을 왜 가야 하는데? 17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정치가가 사고를 쳤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다리를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멋진 폭포를 테마파크로 만들기 위해서는 관광 열차가 다닐 수 있는 현수교가 꼭 필요하고, 그렇게만 되면 우리 지역의 발전은 탄탄대로라고 보랏빛 풍선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교량 전문가와 공사 감독들은 입을 딱 벌렸습니다.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도 문제지만 폭 250m의 강물 유속이 너무 엄청나서 도저히 배를 띄울 수 없었습니다. 강을 가로지르는 기본 케이블을 놓아야 그것을 발판으로 굵은 강철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겁니다. 젊은 공사 책임자 찰스 엘렛 주니어는 전전긍긍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현지 주민 한 사람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큰 연에 줄을 매서 강 건너로 날려 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찰스는 당장 연 날리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상금은 10달러(당시로는 꽤 큰돈이었다). 목표는 강 너머에 연을 안착시키는 것. 몇 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또 날렸습니다. 마침내 호먼 월쉬라는 미국 소년이 직경 1.3cm의 줄을 연에 매 강을 넘겼습니다. 1848년 1월 31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1855년 3월 18일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놓인 우람한 현수교로 관광객을 가득 실은 첫 기차가 통과했습니다. 기적도 처음엔 가느다란 연줄 하나에서 시작됐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합니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큰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천 리 길을 걸어야 하는 분명한 목적입니다. 누군들 고생길을 걷고 싶겠습니까. 숨이 턱 막히는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마른침 꿀꺽 삼키고 한 걸음 내딛을 때, 우리에게 기적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