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내외와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형수가 남편 흉을 본다. “글쎄, 아이가 아프다고 해도 술자리 다 챙기고 새벽에나 들어오던 사람이 그제는 7시 30분에 퇴근을 한 거예요. 요즘 한창 사춘기인 작은애 때문에 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날 위로해주려고 착한 퇴근을 했나 싶었지? 웬걸, 월드컵 대표 평가전이 8시부터라나. 아니, 그까짓 축구 중계한다고 저러는 게 말이 돼요?” 얼굴까지 벌게지며 찬 맥주를 들이켜는 형수를 보며 나는 꼬랑지를 돌돌 말아서 의자 밑에다 감추었다. 왜냐하면, 지금 형수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만일 이 자리에 내 아내가 있다면 두 여인은 “어머”와 “저머”를 주고받으며 신나게 두 남편의 흉을 봤을 테니까.
몇 년 전 태국 사무이의 코팡안이라는 섬에서 벌어지는 풀문 Full moon 축제를 취재(윤용인 씨는 <딴지일보> 기자 출신이다・편집자 주)하러 간 적이 있다. 보름달이 휘영청 뜨면 남녀가 해변에 몰려나와 밤새워 맥주 마시고 춤추며 광기에 가까운 축제를 벌였다. 그런데 그 축제 풍경보다 더 경악스러운 기억은 한국에서 온 40대 여교수의 한마디 말이었다. 당시 사무이의 술집에선 어딜 가나 프리미어 리그 축구가 생중계되고 있었고, 현지인과 관광객 너 나 할 것 없이 침을 질질 흘리며 호나우두와 드로그바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TV 화면을 훔쳐봤는데, 조금 전까지 ‘보름달이 인간의 일탈 본능에 미치는 상관관계’ 혹은 ‘<왕과 나>를 통해 본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끌던 여교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윤 기자님,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 큰 사내들이 왜 떼로 몰려다니면서 저 작은 축구공을 쫓아다니고, 그걸 왜 저렇게 좋다고 쳐다보고 있는 거죠? 유치하고 한심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집게손가락을 쭉 내밀어 그녀의 검지에 맞출 뻔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순간, ET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ET는 여기저기, 너무나 많았다. 당장 내 선배의 부인이 ET고, 바로 내 아내도 ET다. 아내는 새벽 2시에 생중계하는 박지성의 출전을 보기 위해 커피 3잔을 원샷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참는 나를 보며 여교수와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할 거면서 웬 생고생이야. 스포츠 뉴스 보면 하이라이트로 골 들어가는 것 다 보여주던데. 그래 봐야 박지성 벤치에 앉힌 늙은 감독 욕이나 할 거면서.”
이런 외계인을 자꾸 만나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도졌다. 왜 선배들과 나와 내 친구들은 저렇게 축구, 야구, 골프, 배구에 환장하는 걸까? 주변 남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오는 답변도 그들이 좋아하는 운동 종목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누구는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폼 나게 대답한다. 이기기 위해 반칙을 하는 선수도 있고, 죽으라고 수비만 시키는 감독도 있고, 설령 지더라도 페어플레이를 강조하거나 화끈한 공격 축구를 고집하는 팀을 보면서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답하는 이도 있다. 어떤 남자는 감정 이입을 이야기한다. 김연아와 박세리, 박찬호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에 취하고, 방금 본 야구 경기를 복기하면서 자신이 주전 투수가 되어 놓친 게임을 역전승시키는 상상에 빠진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중독이라고도 말한다. 드라마에 빠진 여자가 한 회를 건너뛰었을 때 전전긍긍하며, 홈쇼핑 채널에 심취한 여자가 자기가 보지 않는 사이에 대박 할인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닐까 초조해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놓쳤을 때 천지개벽할 빅 게임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강박이 생긴다고도 한다. 더러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며, 경기를 많이 본 사람은 선수 개개인의 프로필과 특성 등을 데이터화하며 게임을 더 즐길 수 있다고도 하고, 남자의 유전자 자체가 승부욕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의견까지 백인백색의 스포츠 옹호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가지 공통된 말이 있다. “재미있으니까. 왜? 뭐? 어때서?” 아아, 저 경쾌하기 짝이 없는 명료함이라니. 재・미・있・으・니・까!
남자가 왜 그렇게 스포츠를 처자식보다 좋아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재미있으니까’라는 답 앞에서 ‘왜?’라는 물음표는 돌아이 취급을 받을 뿐이다. 갈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갈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똑같다. “좋으니까 좋은 거지. 왜? 뭐? 어때서?”
그런데 남자들이 정말 처자식보다 스포츠를 좋아할까? 옆집 아줌마와의 수다에 폭 빠져서 아이의 질문에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그 여자가 자식보다 수다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지! 그러므로 “여보, 오버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게 내버려둬. 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밥이고,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며? 그 좋아하는 술도, 친구도 다 포기하고 TV 앞에 앉은 건 정말 운동 경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내가 개보다 못해?”
몇 년 전 태국 사무이의 코팡안이라는 섬에서 벌어지는 풀문 Full moon 축제를 취재(윤용인 씨는 <딴지일보> 기자 출신이다・편집자 주)하러 간 적이 있다. 보름달이 휘영청 뜨면 남녀가 해변에 몰려나와 밤새워 맥주 마시고 춤추며 광기에 가까운 축제를 벌였다. 그런데 그 축제 풍경보다 더 경악스러운 기억은 한국에서 온 40대 여교수의 한마디 말이었다. 당시 사무이의 술집에선 어딜 가나 프리미어 리그 축구가 생중계되고 있었고, 현지인과 관광객 너 나 할 것 없이 침을 질질 흘리며 호나우두와 드로그바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TV 화면을 훔쳐봤는데, 조금 전까지 ‘보름달이 인간의 일탈 본능에 미치는 상관관계’ 혹은 ‘<왕과 나>를 통해 본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끌던 여교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윤 기자님,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 큰 사내들이 왜 떼로 몰려다니면서 저 작은 축구공을 쫓아다니고, 그걸 왜 저렇게 좋다고 쳐다보고 있는 거죠? 유치하고 한심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집게손가락을 쭉 내밀어 그녀의 검지에 맞출 뻔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순간, ET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ET는 여기저기, 너무나 많았다. 당장 내 선배의 부인이 ET고, 바로 내 아내도 ET다. 아내는 새벽 2시에 생중계하는 박지성의 출전을 보기 위해 커피 3잔을 원샷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참는 나를 보며 여교수와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할 거면서 웬 생고생이야. 스포츠 뉴스 보면 하이라이트로 골 들어가는 것 다 보여주던데. 그래 봐야 박지성 벤치에 앉힌 늙은 감독 욕이나 할 거면서.”
이런 외계인을 자꾸 만나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도졌다. 왜 선배들과 나와 내 친구들은 저렇게 축구, 야구, 골프, 배구에 환장하는 걸까? 주변 남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오는 답변도 그들이 좋아하는 운동 종목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누구는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폼 나게 대답한다. 이기기 위해 반칙을 하는 선수도 있고, 죽으라고 수비만 시키는 감독도 있고, 설령 지더라도 페어플레이를 강조하거나 화끈한 공격 축구를 고집하는 팀을 보면서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답하는 이도 있다. 어떤 남자는 감정 이입을 이야기한다. 김연아와 박세리, 박찬호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에 취하고, 방금 본 야구 경기를 복기하면서 자신이 주전 투수가 되어 놓친 게임을 역전승시키는 상상에 빠진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중독이라고도 말한다. 드라마에 빠진 여자가 한 회를 건너뛰었을 때 전전긍긍하며, 홈쇼핑 채널에 심취한 여자가 자기가 보지 않는 사이에 대박 할인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닐까 초조해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놓쳤을 때 천지개벽할 빅 게임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강박이 생긴다고도 한다. 더러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며, 경기를 많이 본 사람은 선수 개개인의 프로필과 특성 등을 데이터화하며 게임을 더 즐길 수 있다고도 하고, 남자의 유전자 자체가 승부욕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의견까지 백인백색의 스포츠 옹호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가지 공통된 말이 있다. “재미있으니까. 왜? 뭐? 어때서?” 아아, 저 경쾌하기 짝이 없는 명료함이라니. 재・미・있・으・니・까!
남자가 왜 그렇게 스포츠를 처자식보다 좋아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재미있으니까’라는 답 앞에서 ‘왜?’라는 물음표는 돌아이 취급을 받을 뿐이다. 갈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갈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똑같다. “좋으니까 좋은 거지. 왜? 뭐? 어때서?”
그런데 남자들이 정말 처자식보다 스포츠를 좋아할까? 옆집 아줌마와의 수다에 폭 빠져서 아이의 질문에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그 여자가 자식보다 수다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지! 그러므로 “여보, 오버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게 내버려둬. 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밥이고,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며? 그 좋아하는 술도, 친구도 다 포기하고 TV 앞에 앉은 건 정말 운동 경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내가 개보다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