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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 여자,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
세상에 피었다 지는 사람 꽃이 되려고 그렇게 여자는 뜨겁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긴장을 비수처럼 숨기고 있었을까요. 20세기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다간 네 여인을 추억합니다. 그 뜨거운 인생을 경배합니다. 초상 사진의 거장 세실 비튼이 촬영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 여자의 모습입니다.

오드리 헵번(1929~1993)
따지고 보면 오드리 헵번처럼 인생의 뜨거운 물집을 많이 가진 사람도 드물 겁니다. 파시즘의 신봉자로 나치에 동조하다 수용소 생활까지 한 아버지는 첫 번째 물집이었습니다. <로마의 휴일>로 스타덤에 오른 후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전력이 세상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했답니다. 무용수를 꿈꿨지만 170cm의 큰 키 때문에 그 꿈을 접은 것이 두 번째 장애입니다. 농익은 관능미(당시 사랑받는 여배우들의 기본 공식) 대신 수숫대처럼 마르고 큰 키는 여배우로서는 장애라 할 만했고요. 성층권까지 오르던 그의 명성은 또 다른 물집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같은 눈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아보고 결혼했지만 결국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의 외도로 두 번의 결혼 생활이 망가져버린 것도 모두 남자를 주눅들게 한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은 그 뜨거운 물집들을 기적 같은 반짝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영화 팬들의 가슴에 닦기 힘든 흔적을 남겼고, 일 년 연봉 1달러인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가난한 아이들의 숙제 같은 나날을 축제로 바꿔주었습니다. “기억하라. 네 손이 두 개라는 걸.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이를 돕는 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이승에서의 사명을 다한 그. 인생이라는 염증의 소염 방법을 알아낸 사람의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메릴린 먼로(1926~1962)
‘섹스 심벌의 작열하는 웃음’이라 가두기엔 부족합니다. 이 표정 속엔 아홉 구비 인생이 다 스며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2년 동안의 고아원 생활과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21살 때 한 첫 결혼과 이혼, 단역을 전전하다 1949년 <러브 해피>로 얻은 유명세, ‘전당포에 맡긴 차를 되찾기 위해 50달러가 필요해서’ 찍은 무명 시절의 누드 사진, 그게 뒤늦게 공개되면서 받은 치명타와 <플레이보이> 창간호 모델로 다시 얻은 자존감, 조 디마지오・아서 밀러와의 결혼, 케네디 대통령・이브 몽탕과의 염문…. 숨차고 뜨겁게 산 생의 끝, 1962년 8월 5일 아침 메릴린 먼로는 알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수면제 과용으로 고통스러워 한 흔적도, 주삿바늘 자국도 없었지만 사인은‘약물 과다 복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어질머리 같은 생을 앓은 메릴린 먼로, 아니 노마진 모르텐슨의 일생입니다.


사진은 모두 영국 왕실 초상 사진가이자 패션지 <보그>의 사진작가로 유명한 세실 비튼이 촬영한 것이다. 세실 비튼의 여배우 사진은 초현실적인 구성과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세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7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V갤러리에서 열리는 <세실 비튼-
세기의 아름다움>전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02-580-1300

마를렌 디트리히(1901~1992)붉은 꽃들의 눈물 같은 입술, 세기말적인 분위기, 20세기 최고의 각선미, 가시를 다 따버리고 배시시 웃는 미소…, 이 모두를 한 몸에 가진 여자입니다. 그 요염한 자태에 그만 히틀러도 반해 산속 은신처에서 혼자 마를렌 디트리히의 영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결국 히틀러는 1937년 파리로 게슈타포를 보내 “최고의 가수로 대접해줄 테니 조국(독일)에 돌아오라”라고 명령했지만 마를렌 디트리히의 대답은 언제나 ‘No!’였다고 합니다. 대신 영화를 그만두고 연합군과 함께 종군해 전장에서 노래했는데‘릴리 마를렌(고향에 애인을 남겨둔 채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슬픔을 그린 노래)’이란 곡은 독일군들까지 애창했다고 합니다. 파시즘에 대항하는 그를 두고 히틀러는 ‘고국을 배신한 창녀’라는 비난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 시나리오 작가 겸 제작자인 루돌프 지버와 결혼했지만 무려 40년 동안 별거 상태로 지내다 90세에 쓸쓸히 자살하고 맙니다. 이제는 흑맥주 거품 같은 목소리로 부른 ‘릴리 마를렌’만 세상에 남았습니다.


그레타 가르보(1905~1990)
그림자 있는 불꽃 같은 얼굴이라고나 할까요? 퇴폐미와 애잔함, 서늘함이 모두 담긴 이 얼굴은 스웨덴 출신의 일개 백화점 점원을 일약 할리우드의 무성영화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마른 웃음소리, 바스락거리는 발음으로 감성의 들숨과 날숨 사이를 오간 그의 연기는 불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올드 무비 팬이라면 누구나 <마타하리>의 마지막 클로즈업에 압도당했고, <춘희>와 <안나 카레니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를 보며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기가 정점에 오른 36세에 그는 세상으로 열린 창에 짙은 커튼을 치고 맙니다. 그 후 50년 동안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수도하듯 혼자 살았습니다. 꽃과 채소를 기르고, 홀로 책을 읽으며 고독한 성채의 여신이 되었습니다. 연예 흥행업의 천국에서 스타 중의 스타가 감행한 50년 동안의 고독. 자기 안의 깊은 동굴을 들여다본 사람만의 깨달음 아니었을까요. 돈과 명성, 욕심이 소용돌이치는 그곳을 떠나 자신만의 경건의 땅을 택한.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