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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수, ‘Oreum #13’, 2001
하늘이 열리면 알오름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일렁이는 파도의 무늬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사막의 구릉지대 같은 이 풍경의 정체는 ‘알오름’이다. ‘팥죽이 끓을 때 옹심이가 보글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재미난 이름이다. 고남수 씨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한 시간 이상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찰라를 찍기 위해 억겁의 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오름의 표피 위에 한 줄기 빛이 닿았을 때 거짓말처럼 알오름의 형상이 드러났다. 꿈속에서 놀던 무릉도원 같은.
반짝반짝 빛나는 개민들레
만물이 소생하는 5월이 되면 제주의 오름엔 개민들레가 만발한다.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필 무렵’이 그러하듯, 오름의 꽃이 필 무렵도 ‘달빛에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사진 속 개민들레는 서양 민들레의 일종으로 목재에 섞여 우리나라에 흘러든 것이다. 이 꽃은 자라면서 토종 꽃들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작가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우리 토착종을 몰아내는 개민들레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자본 때문에 제주의 자연이 훼손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가졌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아름답다. 그의 사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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