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수, ‘Oreum #11’, 1999
제주의 속살, 어머니의 품
제주에는 ‘오름에서 태어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마을 어디에나 하나쯤 있는 오름은 제주 사람이 한평생 품고 사는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다. 사진가 고남수 씨 역시 오름이 바라다보이는 집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땔감을 구하고, 오름에 올라 들끓는 청춘을 달랬다. 그렇게 오랜 시간 오름의 속살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때로 섬광처럼 스쳐 지나는 경이의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연하디연한 여인네의 속살 혹은 고른 호흡을 반복하는 자연의 숨결. 빛과 내가 정면 승부하는 순간(흔히 말하는 역광)이 아니고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이 신비로운 광경은 가히 ‘침묵의 언어’다. 그의 오름 사진이 모두 흑백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름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회색빛, 가득 차되 넘치지 않는 절제미, 꺼내 보일 수 없어 품고 산 상처와 아픔. 이 모든 것이 한 장의 사진에 녹아 있다.
고남수 'Oreum #45', 2004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바다. 아마도. 게다가 모든 것을 물들이는 녹청의 색조. 제주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스며 있다. 세계의 끝. 기지 旣知의 것이 끝나는 쪽의 문, 태평양의 무한함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가장 넓게 뻗은 대륙의 받침 그 사이에 서 있다. 제주 바다에 온 최초의 서양인 헨드릭 하멜이 난파하기 전에 이 섬을 보았을 때 가졌을 느낌을 상상해본다. 폭풍우에 밀려 번개 사이로 2000m 높이로 솟은 거대한 화산의 실루엣을 보았을 때 그는 지옥의 문 앞에 선 듯한 느낌을 가졌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네덜란드인이 검은 해변을 지나 싱그러운 숲, 용암의 유황 냄새, 칸나와 야생 선인장의 향기를 발견했을 때는 지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가졌을 것이다. 하멜은 10년 동안 포로가 됐다가 섬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제주에서 맞은 최초의 순간에 대한 향수, 웅장한 화산, 처음 몇 날을 보낸 어부의 집, 대나무 통속에 끓인 밥맛, 미역국, 새빨간 김치, 몸을 데우는 소주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제주에는 보람이란 감정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긍지가 섞인 것이다. 이런 감정이 해녀에게 있다. 어릴 적 태평양 섬에서 조개나 진주를 캐기 위해 반쯤 벗은 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여성에 관한 에로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산문적이다. 해녀는 실제로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 하늘과 바다의 상황이 어떻건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잡는다. 오늘날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나이 든 여성이다. 그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 장애를 안고 산다.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들고 그들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다. 그들의 딸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다 그들 덕분이다.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_ 르 클레지오의 ‘제주 찬가’ 중
*이 글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가 프랑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