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집
두 달 전 ‘비담 김남길’을 만나러 나고야 게로 온천에 갔다. 그는 5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나쁜 남자> 촬영차 수이메이칸 호텔에 머물며 일본어 공부와 촬영을 병행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엔 일본 중년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중 50대 여성 한 명은 그에게 초콜릿(그날은 2월 14일이었다)을 전달하기 위해 사흘 밤낮을 기다렸다고 했다. 나 또한 두 시간의 인터뷰를 위해 하루 반나절이나 그를 기다렸다.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영화와 광고 촬영 외에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배우 김남길은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미국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에는 패션 사진가 조남룡이 유일하게 동행했는데, 그는 뷰파인더를 통해 배우가 아닌 ‘인간 김남길’의 일상을 여과 없이 포착해냈다. 사진가 조남룡의 사진에 배우 김남길이 써 내려간 일기를 더한 화보집
(왼쪽) 그간 써 온 일기와 여행 사진으로 엮은 화보집.바람의 사생활화보집.
실제로 만난 김남길은 역시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진중함과 소신을 가졌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삐삐를 선물하는 아날로그적 정서도 지녔다. 게다가 그는 모든 여자의 로망인 손가락이 가늘고 긴 남자다.
“저 초콜릿 안 주세요?” “오늘 무슨 날이에요?” “밸런타인데이요.”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날 아닌가?” “그거 너무 슬픈 이야기인 거 아시죠?” 농담으로 던진 말에 그가 속는다. 그리고 그의 말에 나도 허를 찔린다. 초콜릿 나눠 먹으며 사랑 확인하는 거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낭만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고 꼬집는 이 남자. 꽤 철이 들었다.
“어릴 때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어 친구들 집을 전전하면서 살았어요. 생활비 벌려고 신문배달을 했는데 방금 자고 나온 친구 녀석 집에 신문을 넣자니 눈물이 나는 거예요. 설움에 복받쳐 새벽 공기에 대고 막 소리를 질렀어요.” 그가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보육원을 찾아 다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소외된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이번 여행의 막바지에 지진 피해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을 모 방송사와 함께 방문해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도왔다. 그는 4월 말에 옛 고려 유민 집성촌인 고마향을 찾기 위해 또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어렵게살고 있는 집성촌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선 기금 마련 이벤트를 열기 위해서다. 영화 <폭풍전야>가 개봉하고 드라마 <나쁜 남자>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 그는 아쉽게도 군대에 가 있을 예정이다. 성격 좋고 마음씨 착한 완소남, 군대 안 갔다 온 거 하나가 딱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