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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요즘 단편소설집<대설주의보>로 돌아온 소설가 윤대녕 씨
그는 더 이상 연애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보다 깊은 사유를 들려주는 것’, 쉰을 바라보는 소설가의 각오는 단단했다.
생각해보니 한동안 소설가 윤대녕 씨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3년 전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이후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데다 전화 인터뷰 외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오랜만에 잡지 인터뷰를 수락한 건 ‘등단 20주년’이라는 대목이 걸려서였다. 그에겐 등단 20년이라는 게 그닥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출판사 담당 에디터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우리는 4월 8일 오후 3시, 그가 교수로 재직 중인 동덕여대 인문대학 715호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그는 30분쯤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시각, 나는 동덕여대 입구에 있는 ‘일층 카페’에서 블랙커피를 마시며 그의 신간 <대설주의보>를 읽고 있었다.
3년 전부터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대녕 씨는 최근 학과장까지 맡아 분주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지난 13년간 일산에서 살았지만 2008년 임용되면서 정릉으로 이사를 나왔다. “일산에서 이곳까지 출퇴근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내부순환로가 막힐 때면 수업에 늦을까 봐 식은땀이 났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창을 열면 북한산이 바라보여요. 제가 산을 좋아하니까 글쓰기에도 좋고…. 저한테 집은 ‘소유’ 개념이 아니라 ‘거주’ 개념인 것 같아요.” 그는 노트북, 손톱깎기, 토스터까지 바리바리 챙겨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오는 식의 글 쓰기 습관을 10여 년째 고수하고 있다. 이번 단편소설집 <대설주의보> 또한 속초, 영덕, 원주, 백담사 등 전국 각지에 머물며 집필한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펜션, 호텔, 산장, 콘도, 민박집 등 어둡고 답답한 모텔을 제외하곤 안 가본 숙박 시설이 없고, 소설가가 모여 글을 쓰는 창작촌과 문학관에도 머물러본 경험이 있다. 동료의 권유로 찾아간 원주 토지문학관은 그중 특별했던 곳이다. “동료 작가가 좋다고 해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내려가보니 처음엔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다 같이 밥을 먹고, 똑같은 방에 들어가 글을 쓰는 거예요. 일주일쯤 지났을 땐 너무 이상해서 나가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거기 박경리 선생님이 계셨어요. 조용히 부르시더니 그러시더라고요. “꼭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쉬는 것도 중요하다.” 그 후로 한동안 그곳에 머무른 것 같아요.”
그는 토지문학관 앞의 야트막한 산을 산책하다가 문득 푸른 보리밭에 눈이 갔다. 청명 淸明(24절기 중 봄에 해당하는 여섯 절기의 다섯 번째) 즈음이었을까. 세상 모든 일이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푸른 보리밭’ 같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 순간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떠올랐다.

(오른쪽) 일곱 개의 단편을 엮은 윤대녕 씨의 신간 <대설주의보>.

<대설주의보>에 실린 첫 번째 단편소설 ‘보리’는 그렇게 비롯되었다. “해마다 청명이 되면 지방의 어느 온천에서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수경과 남자. 얼마 전 그녀는 유방암을 얻었고 이 불안정한 인연의 행사 行事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킨다. 7년 전 청명에 남자는 봄비가 내리면 고향의 보리밭이 그리워진다며 제 결락을 슬쩍 내비쳤고 여자는 그에게 어리석고 가난하고 무서운 자기 생을 의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남자는 여자를 ‘보리’라 부르겠노라고 했고, 이듬해부터의 청명은, 생명의 기운을 상징하는 저 절기의 의미와는 아이러니하게 엇갈리는, 아무런 기약도 없는 저 인연의 근거가 된다.”
“수경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관처럼 몸을 누이는 슬픈 제의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그를 보내줘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은 가슴을 도려내는 일만큼 안간힘이 필요하죠.” 7년의 관계를 아프게 도려내는 것으로 끝나는 ‘보리’와는 상반되게 ‘대설주의보’는 희망적인 결론을 맺는다. 우연처럼 만나 허탈한 오해로 헤어진 윤수와 해란.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끊어질 듯 다시 드문드문 이어지는 둘의 관계는 해란의 자살 기도로 다시 인연으로 이어진다. 해란을 만나기 위해 백담사로 가는 택시를 탄 윤수는 폭설로 인해 20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하는데, 이 장면은 고작 두어 달이면 될 일을 12년 동안이나 헤맨 뒤에야 비로소 원래 자리로 되돌린 두 사람의 인연, 그 오랜 시간을 닮아 있다. “친구가 책을 읽고 그러더군요.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아마 우리 나이가 그런 때인 것 같아요.” 원주의 푸른 보리밭과 폭설이 내린 백담사에서 그가 떠올린 삶의 인연들은 어떤 단계를 지나 모든 걸 받아들이고 편안해진 ‘성숙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면 아마 윤대녕 씨는 지금 ‘성숙의 시간’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 이상 연애에 관해 쓰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곧 쉰 살이 되는데 그 때가 되면 남녀 관계에 대한 일들이 주변에서 점점 사라질 것 같아요.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변화할 때가 된 거죠. 내 안의 감수성을 정리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는 오래전부터 불교와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그를 지탱해준 힘이다. 윤대녕의 삶에 짙게 밴 우울과 서정이 어떤 방향으로 날아가 또 다른 향기를 낼까. 그는 ‘보다 깊은 사유를 들려주는 것’만이 목적이라 했다. 소설가의 각오는 단단했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