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공주가 아버지 살릴 약물을 구하러 가는 구만 리 길처럼 돌고 돌고 또 돌아 다다른 계룡산 자락. 문필봉 아래 깊숙한 곳에 양지서당이 새집처럼 숨어 있다. 그 집에서 큰훈장 유복엽 씨가 흰 두루마기에 갓까지 갖춰 쓰고 나와 우리를 반긴다. 4월의 햇살에 노곤했던 서울 손님들은 칠순 노인의 환대에 마음이 활짝 개인다.
마침 이 가족은 점심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서당 대청마루에 겸상(두 사람 이상이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차린 상)과 두레상(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큰 상)을 놓고 손맛으로 무친 묵나물과 새봄 나물, 햇콩을 띄운 청국장 찌개를 차려낸다. 유복엽 훈장이 대청마루에 들어서자 미리 밥상머리를 지키던 가족들이 일어나 고개 숙여 어른께 예를 표한다. 그러곤 겸상에 큰훈장 유복엽 씨와 아내, 차남인 작은훈장 유정우 씨가 앉는다. 두레상에는 셋째 아들인 작은훈장 유정욱 씨 부부와 손자들이 둘러앉는다. “순서를 정해 밥상머리에 앉는 것이 요즘 세상에선 권위적으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부모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이 권위는 단순히 힘을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에요.
(왼쪽) 큰훈장님이 수저를 들기 전까지 가족들은 정좌한다.
앉는 순서 같은 작은 것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력을 느낍니다. 또 밥상머리에 자기 자리를 정해주면 돌아다니면서 밥 먹는 요즘 아이들의 버릇도 고쳐줄 수 있어요.” 밥상 주위로 어른의 말씀이 차곡차곡 쌓인다.
“감사합니다. 첫째는 농사지어 먹을거리 생산하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 둘째는 땀 흘려 농사짓는 어르신들께 감사, 셋째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식사 기도 하듯 소리 내어 외고 큰훈장님이 수저를 들자 그제야 나머지 가족들도 식사를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어색함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상머리에 앉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아까 왼 감사 말고도 이 작은 밥상 하나에, 쌀독에 쌀 떨어질까 봐 세상 수모 다 겪으며 사는 아버지의 시간이, 설거지하면서 쌀 한 톨도 수챗구멍에 흘려보내지 않는 어머니의 수고가 담겨 있음을 알고 감사하게 하세요. 또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고 있는 것이니, 그 생명에게도 감사하게 하세요.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 편식이나 밥투정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이렇게 딱 들어맞는 비유로 밥상머리 감사를 설명해주는 유복엽 큰훈장께도 감사.
만 네 살짜리 손녀 효림에게서는 또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으레 보이는 욕심 사나움, 수선스러움을 볼 수 없다. “우리 조상님들의 밥상머리 풍경을 보면 간장이나 김치 같은 기본 반찬 외에는 어른이 손댄 다음에야 아이가 먹고, 특식은 어른이 떠서 밥그릇 위에 얹어주는 것만 먹었어요.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한번에 몰아 먹지 못하고. 아이는 이 ‘밥상 위의 구속’을 통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자기 절제’의 힘을 배우게 되는 거죠. 먹고 싶은 걸 누구보다 먼저, 한꺼번에, 혼자 다 먹겠다는 자기 중심의 사고 대신 내가 조금 덜, 뒤늦게, 몇 번에 나누어 먹으면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모두 즐거운 밥상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는 마음을 얻게 돼요. 바로 타인과의 관계 다지기를 밥상머리에서 깨우쳐 가는 겁니다.” 작은훈장 유정우 씨가 뜸 들이는 말씨로 자분자분 설명을 더한다. 그가 말하는 ‘자기 억제’의 힘은 바로 ‘만족 지연 능력’이다(연구 결과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높은 지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얼마만큼 자제심을 발휘하느냐, 바로 만족 지연 능력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혀졌다).
(오른쪽) 유복엽 훈장의 손녀 효림은 젓가락질이 능숙하다.
양지서당에는 방학 때 70여 명, 평상시에 10여 명의 학동이 기숙하며 생활하는데, 학동들은 유복엽 훈장 가족과 하루 세끼 식사를 함께한다. 처음 서당에 들어온 학동 중에는 반찬 투정을 하거나 식탐을 부리는 녀석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서당에서 공동생활을 한 지 일주일 정도면 그런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서당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에서도 효를 강조합니다. 효가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효가 뭡니까. 부모님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지요. 우리 서당에 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사자소학> 중 몇 구절을 들려드리지요. 밥상을 대하시고서 잡수시지 않으시거든(대안불식 對案不食이어시든) 좋은 음식 장만할 것을 생각하라(사득량찬 思得良饌하라). 나에게 음식을 주시거든(여아음식 與我飮食이어시든) 꿇어 앉아서 받아라(궤이수지 而受之하라). 그릇에 음식이 있어도(기유음식 器有飮食이라도) 주시지 않으면 먹지 말라(불여물식 不與勿食하라). 만약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약득미미 若得美味어든) 돌아가 부모님께 드려라(귀헌부모 歸獻父母하라).부모님 앞에서 음식을 들거든(음식친전 飮食親前하거든) 그릇 소리를 내지 말라(물출기성 勿出器聲하라).음식이 비록 먹기 싫더라도(음식수염 飮食雖厭이나) 주시면 반드시 먹어라(여지필식 與之必食하라).부모님이 드실 음식이 없으시거든(부모무식 父母無食이어시든) 내가 먹을 음식을 생각지 말라(물사아식 勿思我食하라).밥상머리에서 부모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지 않나요? 누군가를 배려하려면 자기 고집과 욕심을 좀 접어야죠. 그러곤 배려의 마음을 형제에게, 친구에게, 타인에게 넓혀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밥상머리 예절이지요.”
공자는 식불언 食不言이라 해서 음식을 먹을 때 말을 하지 말라 하셨건만, 유복엽 훈장 가족의 밥상머리에선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만발이다. “공자님 말씀은 밥상머리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처 주는 말, 험담, 헛소리가 쓸데없는 말이지요. 요즘 세상에선 밥상머리가 아니면 가족끼리 만날 시간이 없으니 밥상머리 대화가 꼭 필요합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식구끼리 밥을 먹는 게 신나는 일이라는 걸 자녀가 느끼게 해주세요. 그러려면 밥상머리에서만큼은 꾸지람 대신 칭찬을, 그것도 아끼지 말고 듬뿍 안겨주어야지요.” 고이지 않고 세상과 함께 흐르는 유연한 한학!
(왼쪽) 유복엽 훈장 가족. 양끝에 선 두 아들 정우 씨와 정욱 씨는 아버지와 함께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1 양지서당의 학동들은 서당 주변의 텃밭에 푸성귀도 가꾸고 닭, 흑염소 등도 키운다.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눈으로 접하면 생명에 대한 예의도 절로 체득하게 된다.
2 서예 시간에는 <사자소학>이나 <소학>을 붓글씨로 쓰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함께 익힌다.
3 교육의 참뜻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회초리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4 유학반 학동들이 인근 초등학교에 등교한 시각, 유복엽 훈장의 손자가 <사자소학>을 읊고 있다.
양지서당에서는 도시에서 먹던 것만 고집하는 학동에게 극단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먹기 싫으면 굶으라’ 하고 내버려두는 것. “조선시대 때 김정국이란 선비가 조석 밥상에 찬을 세 가지 이상 못 놓게 했대요. 그러면서도 매일 다섯 가지 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하고 다녔대요. ‘있지도 않은 두 가지 찬’이 뭐냐고 물으니 ‘반드시 시장할 때 밥을 찾아 먹으니까 시장이 그 한 찬, 반드시 밥을 덥게 해서 먹으니까 따뜻함이 그 다른 한 찬’이라고 대답하더래요. 바로 ‘시장이 반찬’이라는 걸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겐 강수를 두는 거죠. 며칠만 내버려두면 아이 스스로 먹을거리의 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부모의 용기가 필요하죠. 품 안의 자식보다 대견한 인재로 키우려면 더 엄한 부모, 인내하는 부모, 대단한 부모가 되어야 해요.” 작은훈장의 이야기도 밑줄 그으며 들어야 할 것들뿐이다.
두 훈장님의 이야기에 빠져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해가 노루 꽁지만 해졌다. 그동안 점심 밥상과 다과상이 차려지고 치워졌다. 양지서당 학동들은 그 밥상머리 앞의 시간을 신나게, 맛나게 즐겼다. 옛날 어른들이 물맛 알고 밥맛 알면 어른 된 거라고 하셨는데, 이 학동들은 밥맛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건 바로 신나게 어른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한학은 한자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이에요. 밥상머리 교육도 결국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규합총서>의 사대부 식시오관 食時五觀을 들려드릴 테니 뜻을 음미해 보세요. 첫째, (식사를 위해) 공들인 것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 둘째, 충효와 입신의 뜻을 살펴서 음식 맛을 너무 따지지 말라. 셋째, 마음을 다스려서 과하게 먹지 말고 탐내는 것도 막아야 한다. 넷째, 음식을 좋은 약으로 생각하여 모양에 너무 치우쳐 먹지 말라. 다섯째, 도업 道業(군자의 도리)을 이루어 놓고서야 음식을 받을 것이다. 곧 도를 닦기 위해 식사를 하라. ”
양지서당은 전통 한학을 연구하는 유복엽 훈장이 1996년에 설립한 서당으로, 한학을 통해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유복엽 훈장의 3남 1녀는 모두 연산 한학 마을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둘째・셋째 아들이 부친을 도와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큰아들과 딸은 대전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지도하고 있다. 양지서당에 기숙하면서 인근 학교에 다니는 ‘유학반’, 방학 동안 1~4주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방학예절교육반’ 등을 운영한다.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계룡산 범골에 있으며 한문 교육 외에 서예, 검도, 판소리 등도 함께 배울 수 있다.
문의 041-734-3057, www.yangjischool.kr
양지서당은 전통 한학을 연구하는 유복엽 훈장이 1996년에 설립한 서당으로, 한학을 통해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유복엽 훈장의 3남 1녀는 모두 연산 한학 마을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둘째・셋째 아들이 부친을 도와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큰아들과 딸은 대전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지도하고 있다. 양지서당에 기숙하면서 인근 학교에 다니는 ‘유학반’, 방학 동안 1~4주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방학예절교육반’ 등을 운영한다.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계룡산 범골에 있으며 한문 교육 외에 서예, 검도, 판소리 등도 함께 배울 수 있다.
문의 041-734-3057, www.yangjischool.kr
5 서당을 열기 전 건축업에 종사한 유복엽 훈장이 손수 지은 양지서당.
6 밥상머리에서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 법을 가르친다.
마침 이 가족은 점심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서당 대청마루에 겸상(두 사람 이상이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차린 상)과 두레상(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큰 상)을 놓고 손맛으로 무친 묵나물과 새봄 나물, 햇콩을 띄운 청국장 찌개를 차려낸다. 유복엽 훈장이 대청마루에 들어서자 미리 밥상머리를 지키던 가족들이 일어나 고개 숙여 어른께 예를 표한다. 그러곤 겸상에 큰훈장 유복엽 씨와 아내, 차남인 작은훈장 유정우 씨가 앉는다. 두레상에는 셋째 아들인 작은훈장 유정욱 씨 부부와 손자들이 둘러앉는다. “순서를 정해 밥상머리에 앉는 것이 요즘 세상에선 권위적으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부모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이 권위는 단순히 힘을 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에요.
(왼쪽) 큰훈장님이 수저를 들기 전까지 가족들은 정좌한다.
앉는 순서 같은 작은 것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력을 느낍니다. 또 밥상머리에 자기 자리를 정해주면 돌아다니면서 밥 먹는 요즘 아이들의 버릇도 고쳐줄 수 있어요.” 밥상 주위로 어른의 말씀이 차곡차곡 쌓인다.
“감사합니다. 첫째는 농사지어 먹을거리 생산하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 둘째는 땀 흘려 농사짓는 어르신들께 감사, 셋째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식사 기도 하듯 소리 내어 외고 큰훈장님이 수저를 들자 그제야 나머지 가족들도 식사를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어색함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상머리에 앉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아까 왼 감사 말고도 이 작은 밥상 하나에, 쌀독에 쌀 떨어질까 봐 세상 수모 다 겪으며 사는 아버지의 시간이, 설거지하면서 쌀 한 톨도 수챗구멍에 흘려보내지 않는 어머니의 수고가 담겨 있음을 알고 감사하게 하세요. 또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고 있는 것이니, 그 생명에게도 감사하게 하세요.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 편식이나 밥투정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이렇게 딱 들어맞는 비유로 밥상머리 감사를 설명해주는 유복엽 큰훈장께도 감사.
만 네 살짜리 손녀 효림에게서는 또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으레 보이는 욕심 사나움, 수선스러움을 볼 수 없다. “우리 조상님들의 밥상머리 풍경을 보면 간장이나 김치 같은 기본 반찬 외에는 어른이 손댄 다음에야 아이가 먹고, 특식은 어른이 떠서 밥그릇 위에 얹어주는 것만 먹었어요.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한번에 몰아 먹지 못하고. 아이는 이 ‘밥상 위의 구속’을 통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자기 절제’의 힘을 배우게 되는 거죠. 먹고 싶은 걸 누구보다 먼저, 한꺼번에, 혼자 다 먹겠다는 자기 중심의 사고 대신 내가 조금 덜, 뒤늦게, 몇 번에 나누어 먹으면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모두 즐거운 밥상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는 마음을 얻게 돼요. 바로 타인과의 관계 다지기를 밥상머리에서 깨우쳐 가는 겁니다.” 작은훈장 유정우 씨가 뜸 들이는 말씨로 자분자분 설명을 더한다. 그가 말하는 ‘자기 억제’의 힘은 바로 ‘만족 지연 능력’이다(연구 결과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높은 지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얼마만큼 자제심을 발휘하느냐, 바로 만족 지연 능력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혀졌다).
(오른쪽) 유복엽 훈장의 손녀 효림은 젓가락질이 능숙하다.
양지서당에는 방학 때 70여 명, 평상시에 10여 명의 학동이 기숙하며 생활하는데, 학동들은 유복엽 훈장 가족과 하루 세끼 식사를 함께한다. 처음 서당에 들어온 학동 중에는 반찬 투정을 하거나 식탐을 부리는 녀석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서당에서 공동생활을 한 지 일주일 정도면 그런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서당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에서도 효를 강조합니다. 효가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효가 뭡니까. 부모님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지요. 우리 서당에 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사자소학> 중 몇 구절을 들려드리지요. 밥상을 대하시고서 잡수시지 않으시거든(대안불식 對案不食이어시든) 좋은 음식 장만할 것을 생각하라(사득량찬 思得良饌하라). 나에게 음식을 주시거든(여아음식 與我飮食이어시든) 꿇어 앉아서 받아라(궤이수지 而受之하라). 그릇에 음식이 있어도(기유음식 器有飮食이라도) 주시지 않으면 먹지 말라(불여물식 不與勿食하라). 만약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약득미미 若得美味어든) 돌아가 부모님께 드려라(귀헌부모 歸獻父母하라).부모님 앞에서 음식을 들거든(음식친전 飮食親前하거든) 그릇 소리를 내지 말라(물출기성 勿出器聲하라).음식이 비록 먹기 싫더라도(음식수염 飮食雖厭이나) 주시면 반드시 먹어라(여지필식 與之必食하라).부모님이 드실 음식이 없으시거든(부모무식 父母無食이어시든) 내가 먹을 음식을 생각지 말라(물사아식 勿思我食하라).밥상머리에서 부모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지 않나요? 누군가를 배려하려면 자기 고집과 욕심을 좀 접어야죠. 그러곤 배려의 마음을 형제에게, 친구에게, 타인에게 넓혀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밥상머리 예절이지요.”
공자는 식불언 食不言이라 해서 음식을 먹을 때 말을 하지 말라 하셨건만, 유복엽 훈장 가족의 밥상머리에선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만발이다. “공자님 말씀은 밥상머리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처 주는 말, 험담, 헛소리가 쓸데없는 말이지요. 요즘 세상에선 밥상머리가 아니면 가족끼리 만날 시간이 없으니 밥상머리 대화가 꼭 필요합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식구끼리 밥을 먹는 게 신나는 일이라는 걸 자녀가 느끼게 해주세요. 그러려면 밥상머리에서만큼은 꾸지람 대신 칭찬을, 그것도 아끼지 말고 듬뿍 안겨주어야지요.” 고이지 않고 세상과 함께 흐르는 유연한 한학!
(왼쪽) 유복엽 훈장 가족. 양끝에 선 두 아들 정우 씨와 정욱 씨는 아버지와 함께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1 양지서당의 학동들은 서당 주변의 텃밭에 푸성귀도 가꾸고 닭, 흑염소 등도 키운다.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눈으로 접하면 생명에 대한 예의도 절로 체득하게 된다.
2 서예 시간에는 <사자소학>이나 <소학>을 붓글씨로 쓰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함께 익힌다.
3 교육의 참뜻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회초리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4 유학반 학동들이 인근 초등학교에 등교한 시각, 유복엽 훈장의 손자가 <사자소학>을 읊고 있다.
양지서당에서는 도시에서 먹던 것만 고집하는 학동에게 극단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먹기 싫으면 굶으라’ 하고 내버려두는 것. “조선시대 때 김정국이란 선비가 조석 밥상에 찬을 세 가지 이상 못 놓게 했대요. 그러면서도 매일 다섯 가지 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하고 다녔대요. ‘있지도 않은 두 가지 찬’이 뭐냐고 물으니 ‘반드시 시장할 때 밥을 찾아 먹으니까 시장이 그 한 찬, 반드시 밥을 덥게 해서 먹으니까 따뜻함이 그 다른 한 찬’이라고 대답하더래요. 바로 ‘시장이 반찬’이라는 걸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겐 강수를 두는 거죠. 며칠만 내버려두면 아이 스스로 먹을거리의 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부모의 용기가 필요하죠. 품 안의 자식보다 대견한 인재로 키우려면 더 엄한 부모, 인내하는 부모, 대단한 부모가 되어야 해요.” 작은훈장의 이야기도 밑줄 그으며 들어야 할 것들뿐이다.
두 훈장님의 이야기에 빠져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해가 노루 꽁지만 해졌다. 그동안 점심 밥상과 다과상이 차려지고 치워졌다. 양지서당 학동들은 그 밥상머리 앞의 시간을 신나게, 맛나게 즐겼다. 옛날 어른들이 물맛 알고 밥맛 알면 어른 된 거라고 하셨는데, 이 학동들은 밥맛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건 바로 신나게 어른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한학은 한자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이에요. 밥상머리 교육도 결국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규합총서>의 사대부 식시오관 食時五觀을 들려드릴 테니 뜻을 음미해 보세요. 첫째, (식사를 위해) 공들인 것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 둘째, 충효와 입신의 뜻을 살펴서 음식 맛을 너무 따지지 말라. 셋째, 마음을 다스려서 과하게 먹지 말고 탐내는 것도 막아야 한다. 넷째, 음식을 좋은 약으로 생각하여 모양에 너무 치우쳐 먹지 말라. 다섯째, 도업 道業(군자의 도리)을 이루어 놓고서야 음식을 받을 것이다. 곧 도를 닦기 위해 식사를 하라. ”
양지서당은 전통 한학을 연구하는 유복엽 훈장이 1996년에 설립한 서당으로, 한학을 통해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유복엽 훈장의 3남 1녀는 모두 연산 한학 마을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둘째・셋째 아들이 부친을 도와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큰아들과 딸은 대전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지도하고 있다. 양지서당에 기숙하면서 인근 학교에 다니는 ‘유학반’, 방학 동안 1~4주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방학예절교육반’ 등을 운영한다.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계룡산 범골에 있으며 한문 교육 외에 서예, 검도, 판소리 등도 함께 배울 수 있다.
문의 041-734-3057, www.yangjischool.kr
양지서당은 전통 한학을 연구하는 유복엽 훈장이 1996년에 설립한 서당으로, 한학을 통해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유복엽 훈장의 3남 1녀는 모두 연산 한학 마을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둘째・셋째 아들이 부친을 도와 양지서당을 이끌고 있다. 큰아들과 딸은 대전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지도하고 있다. 양지서당에 기숙하면서 인근 학교에 다니는 ‘유학반’, 방학 동안 1~4주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방학예절교육반’ 등을 운영한다.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계룡산 범골에 있으며 한문 교육 외에 서예, 검도, 판소리 등도 함께 배울 수 있다.
문의 041-734-3057, www.yangjischool.kr
5 서당을 열기 전 건축업에 종사한 유복엽 훈장이 손수 지은 양지서당.
6 밥상머리에서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 법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