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피부병을 제외하고 96세까지 병원 출입 한 번 하신 적 없는 할머니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식사 후 퇴수물까지 깨끗하게 비우시고 고물 라디오 옆에 신줏단지처럼 모셔둔 칫솔통 들고 이 닦으러 가기. 하루 세 번, 같은 시간에 반복되는 할머니의 규칙은 깨지는 법이 없었다. 이를 닦고 나오면 30분에서 1시간가량은 어떤 주전부리도 하지 않으셨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는 스카치 캔디나 냉장고 속 박카스도 그때만큼은 사절이다. 규칙적인 양치질이 할머니의 건강은 물론 범상한 행복까지 보장했을 거라는 짐작은 그저 나만의 생각이다. 하지만 얼마 전 보건복지가족부가 실시한 흥미로운 설문 조사는 무릎을 치게 한다.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23만 명의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점심식사 후 양치질 실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 광양시(67.6%)이고, 가장 낮은 곳은 제주시(32.2%)다. ‘왜 제주시 주민은 광양시 주민보다 현저하게 양치질을 안 할까’라는 궁금증에 서른 장이 넘는 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보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주 사람의 ‘흡연율(평생 5갑 이상 흡연한 사람 중 현재 흡연하는 사람의 분율)’은 전국 16개 시도 중 강원 태백시(33.4%) 다음으로 높은 28.3%였고, ‘고위험 음주율(최근 1년 동안 음주한 사람 중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7잔 이상, 여자는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 마신다고 응답한 사람의 분율)’ 또한 상위권에 속했다. 반면 ‘걷기 실천율(최근 일주일 동안 1회 30분 이상 걷기를 주 5일 이상 실천한 사람의 분율)’은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29.3%를 보였다. 경기 의왕시(90.1%)에 비하면 거의 3배 낮은 수준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제주 사람이 ‘스트레스 인지율(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사람의 분율)’이 가장 높은 것도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다. 스트레스 인지율이 가장 낮은 전남(22.8%)에 비해 10%나 높은 33.3%를 기록하고 있다. 제주 사람 중 9.5%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우울감이나 절망감을 겪고 있으며, 의사로부터 뇌졸중 진단을 받은 50세 이상의 인구는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5.8%나 된다.
할머니의 오래된 습관을 단초로 분석해본 ‘양치질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아주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듯 보인다. 하버드 대학이 실시한 장수 노인의 생활 습관 분석에는 ‘지난 30년간 양치질한 횟수’나 ‘치실 및 가글 사용 유무’를 묻는 질문이 있다. 아마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진 부지런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일 게다. 양치질을 안 한다고 해서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니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다만 하루 세 번 규칙적으로 양치질하는 사람은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그들은 무분별한 음주나 흡연으로 비만과 질병에 시달릴 확률도 낮을 것이다. 무병장수하며 큰 걱정 없이 살다 간 내 할머니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말했다. 행복은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이란 선물에 숨어 있다고. 그리고 내 할머니가 가르친다. 행복은 양치질과 같은 아주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숨 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