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역사를 뒤지다 보면 이름난 늦둥이 몇 사람이 눈에 띕니다. 먼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이야길 해볼까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늦둥이 딸이 덕혜옹주입니다. 고종은 유난히 이 딸을 사랑해 강보에 싼 아기가 깰까 봐 아기 옆에 누워 있던 유모도 그 자세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지요. 옹주인데도 황제가 머무는 함녕전 앞에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늦둥이 딸을 위해 덕수궁 안에 유치원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은 옹주만큼은 조선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1919년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결국 강제로 유학길을 떠나고 일본인과 혼인을 하게 되자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죽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덕혜옹주는 결국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릅니다. 한 나라의 늦둥이 황녀로 태어나 넘치는 사랑과 영욕의 세월을 산 덕혜옹주, 이 늦둥이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군요.
조선의 대표 현모양처인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도 늦둥이였습니다. 신사임당의 나이 32세에 낳은 아이로, 열서너 살 넘으면 혼인해 출산하던 풍습으로 볼 때 대단한 늦둥이지요. 신사임당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할 때 율곡은 겨우 16세였다고 합니다. 효심 갸륵한 소년 율곡은 3년의 시묘살이를 한 후 공부에 매진해 장원급제합니다.
조선의 풍류남 단원 김홍도에게는 40대 후반에 얻은 늦둥이 아들 연록이 있었습니다. 김홍도가 충청도의 ‘연풍’에서 ‘녹봉’을 받는 공직자로 살 때 낳은 아들이라는 뜻에서 연록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백석미남(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남, 요샛말로 꽃미남)’김홍도는 여인들의 마음만 거두고 자식은 거두지 않았는지, 연록은 가난 속에 내동댕이쳐지고 맙니다. 그래도 그 아들이 자라 아버지 김홍도의 편지와 글을 정리해 <단원유묵첩>을 펴냈는데, 그나마 김홍도의 작품 세계를 헤아릴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합니다. 연록은 김정호까지도 그의 그림을 극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화가였다고 합니다.
구약성서 속 아브라함은 100세에 건강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 귀한 늦둥이를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에 그는 순종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됐지요. 물론 아들의 목숨도 구했고요.
요즘 시대로 넘어오면 61세에 딸을 얻은 폴 매카트니(그것도 아내인 헤더 밀스가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임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낳은 늦둥이), 81세에 딸을 얻은 앤서니 퀸, 35세 연하의 아내를 임신시킨 72세의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뇌출혈로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늦둥이를 본 70세의 영화배우 장폴 벨몽도가 대표적인 늦둥이 아빠입니다. 아, 네 번 결혼해 73세에 막내를 낳을 만큼 스태미나를 자랑한 찰리 채플린도 있군요. 이들에 비하면 40대 후반에 늦둥이 아들을 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젊은이에 속합니다. 마돈나(43세 출산), 샤론 스톤(44세), 지나 데이비스(46세), 줄리안 무어(41세)도 할리우드의 이름난 늦둥이 엄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늦둥이는 부모의 경제력과 성적 능력을 상징합니다. 왕과 권력자, 부유한 상인들은 첩을 통해 늦도록 자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시공을 초월해 유명 인사들이 늦둥이를 낳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중년 이후 생긴 삶의 여유, 젊어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함, 권력의 무상함, 정력 과시 등의 심리가 깔려 있다.”삶의 소중함을 아는 여러분, 늦둥이 하나 낳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