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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행복의 샘물, 늦둥이] 여보 , 늦둥이 하나 낳을까? 덕혜옹주부터 율곡이이, 아브라함까지
늦둥이는‘나이가 많이 들어서 낳은 자식’이란 뜻입니다. WHO와 국제산부인과연맹에서 35세 이후 아이를 낳으면 고령 임산부로 보므로, 늦둥이의 기준도 이에 맞추면 될 듯합니다. 결혼 연령이 점차 늦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늦둥이 가족이 늘고 있습니다. 유타 대학교 인구통계학과의 조사에 따르면 45세 이후 아이를 자연분만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50세 이후 사망률이 14~1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물론 고령 임신의 경우 기형아 출산 빈도, 유산율이 훨씬 높지만 의술이 발달하면서 그 위험도는 줄고 있습니다. 집안에 활력을 선사하는 새내기 가족, 늦둥이.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오늘밤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우리 늦둥이 하나 낳을까?”
우리 어렸을 적 시골 외가엔 ‘나도 아홉 살, 삼촌도 아홉 살’인 이웃이 꽤 많았습니다. 그 늦둥이들은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라다 보니 왈패로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할아버지・할머니뻘의 부모, 삼촌・고모뻘의 형제들은 그 어린 녀석을 어르고 달래느라 고심했고, 그 녀석은 나이 많은 부모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작가 최인호 씨의 묵상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의 ‘칭찬’이란 글에 바로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늦둥이인 소년 최인호는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가 학교에 찾아오는 걸 가장 싫어했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들 어머니처럼 예쁜 양장을 하지도 않고, 늘 쪽 진 머리에 회색 두루마기 차림이었기 때문이지요.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이가 몽땅 빠져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곤 하던 어머니가 학교엘 찾아왔답니다. 교정을 걸어오는 어머니를 보자 그는 뒷동산으로 숨어버렸다지요. 나중에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의 말씀을 전하길 “우리 인호는 칭찬을 해주면 잘하는 아이입니다.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라고 했답니다. ‘까막눈인 엄마가 어떻게 내 마음을 꿰뚫어보셨을까’라며 속으로 울었다는 그 이야기. 늦둥이 녀석들은 부모의 거친 주름살만 부끄러워했지, 그 주름살에 깃든 삶의 깨달음과 지혜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 녀석들은 제일 어린 처지여서, 좌충우돌 철부지로 사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과거 역사를 뒤지다 보면 이름난 늦둥이 몇 사람이 눈에 띕니다. 먼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이야길 해볼까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늦둥이 딸이 덕혜옹주입니다. 고종은 유난히 이 딸을 사랑해 강보에 싼 아기가 깰까 봐 아기 옆에 누워 있던 유모도 그 자세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지요. 옹주인데도 황제가 머무는 함녕전 앞에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늦둥이 딸을 위해 덕수궁 안에 유치원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은 옹주만큼은 조선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1919년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결국 강제로 유학길을 떠나고 일본인과 혼인을 하게 되자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죽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덕혜옹주는 결국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릅니다. 한 나라의 늦둥이 황녀로 태어나 넘치는 사랑과 영욕의 세월을 산 덕혜옹주, 이 늦둥이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군요.
조선의 대표 현모양처인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도 늦둥이였습니다. 신사임당의 나이 32세에 낳은 아이로, 열서너 살 넘으면 혼인해 출산하던 풍습으로 볼 때 대단한 늦둥이지요. 신사임당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할 때 율곡은 겨우 16세였다고 합니다. 효심 갸륵한 소년 율곡은 3년의 시묘살이를 한 후 공부에 매진해 장원급제합니다.
조선의 풍류남 단원 김홍도에게는 40대 후반에 얻은 늦둥이 아들 연록이 있었습니다. 김홍도가 충청도의 ‘연풍’에서 ‘녹봉’을 받는 공직자로 살 때 낳은 아들이라는 뜻에서 연록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백석미남(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남, 요샛말로 꽃미남)’김홍도는 여인들의 마음만 거두고 자식은 거두지 않았는지, 연록은 가난 속에 내동댕이쳐지고 맙니다. 그래도 그 아들이 자라 아버지 김홍도의 편지와 글을 정리해 <단원유묵첩>을 펴냈는데, 그나마 김홍도의 작품 세계를 헤아릴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합니다. 연록은 김정호까지도 그의 그림을 극찬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화가였다고 합니다.
구약성서 속 아브라함은 100세에 건강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 귀한 늦둥이를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에 그는 순종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됐지요. 물론 아들의 목숨도 구했고요.
요즘 시대로 넘어오면 61세에 딸을 얻은 폴 매카트니(그것도 아내인 헤더 밀스가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임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낳은 늦둥이), 81세에 딸을 얻은 앤서니 퀸, 35세 연하의 아내를 임신시킨 72세의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뇌출혈로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늦둥이를 본 70세의 영화배우 장폴 벨몽도가 대표적인 늦둥이 아빠입니다. 아, 네 번 결혼해 73세에 막내를 낳을 만큼 스태미나를 자랑한 찰리 채플린도 있군요. 이들에 비하면 40대 후반에 늦둥이 아들을 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젊은이에 속합니다. 마돈나(43세 출산), 샤론 스톤(44세), 지나 데이비스(46세), 줄리안 무어(41세)도 할리우드의 이름난 늦둥이 엄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늦둥이는 부모의 경제력과 성적 능력을 상징합니다. 왕과 권력자, 부유한 상인들은 첩을 통해 늦도록 자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시공을 초월해 유명 인사들이 늦둥이를 낳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중년 이후 생긴 삶의 여유, 젊어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함, 권력의 무상함, 정력 과시 등의 심리가 깔려 있다.”삶의 소중함을 아는 여러분, 늦둥이 하나 낳으시렵니까?
기획 최혜경・김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