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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아버지가 전하는 제언 21세기엔 네티켓을 아는 사람이 문화인
손일락 교수가 들려주는 세 번째 ‘삶의 매너론’은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나누는 매너, 바로 네티켓이다. 인터넷 천재, 네티켓 바보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 사이버 인격을 쌓아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악플과 선플 사이에 선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아들 손동운 군에게 그리고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에게 전하는 사이버 인격론.
아들아! 아빠는 솔직히 연예인이 공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공인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또 만약 연예인이 공인이라면, 연예인은 법률적 범위를 뛰어넘어 고도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지닌 성인군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해서는 100% 완벽한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것 같더구나. 거의 신이나 절대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을 말이다.
아빠는 공직자나 정치인, 교육자나 언론인 그리고 기업인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말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생업으로부터 강제로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패가망신한 사례는 정말 드문 것으로 알고 있고. 그저 위법을 하고 범법 행위를 했다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지. 그러나 연예인의 경우는 그게 그리 간단치 않더구나. 가수 유승준 군과 2PM 멤버인 박재범 군이 좋은 사례다.
도대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선 너무나 관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에 대해서는 이처럼 서슴없이 돌팔매질을 하고, 마음껏 단죄할 수 있는 건지 아빠는 정말 이해할 수 없구나.

(왼쪽) 서보람, ‘상상-들여다보기 2’, 장지에 채색, 112×145.5cm, 2007

일부 누리꾼들의 행태를 보아도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물론 대부분의 누리꾼은 지식과 지혜를 구해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순수하고 선량한 이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익명의 그늘에 숨어서 비열한 짓을 일삼는 극소수의 저질 누리꾼들이지. 이들은 자신의 악플(악성 댓글)에 당사자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슬퍼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더구나. 그저 자신의 비뚤어진 심사와 성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며 쾌감을 느끼거나, 정확한 근거나 정보도 없이 뜬소문을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이지.
이제 와 얘기다만 아빠도 실은 악플의 가벼운 피해자란다. 얼마 전 아빠는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빠는 아빠의 인생 역정에 대해 얘기하고, 몇몇 정치인의 매너에 대해서도 언급했지. 이 과정에서 아빠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매너에 대해서도 촌평을 했단다. 김 위원장이 ‘악의 축 ’으로 규정될 정도로 최악의 독재자이긴 하지만, 권좌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외국의 정치가와 면담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 의전 절차나 국제적인 매너가 시대에 아주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지.
그런데 이것이 와전되어 아빠가 세계에서 가장 매너 있는 지도자로 김정일 위원장을 꼽았다며 악플을 다는 이들이 생겨났단다. 처음에는 아빠도 황당하고 억울해 악플에 대해 해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게 외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지. 그 뒤로 아빠는 아예 악플과는 상종을 않기로 마음을 굳혔단다. 이러한 논란은 어쩌면 아빠이기에 이 정도로 끝났을지 모른다. 아빠가 혹 유명인이었거나 연예인이기라도 했다면 심각한 사태로 번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엔 악플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적지 않단다. 비운의 배우 최진실 씨가 대표적인 사례지. 심성이 약하고 여리던 최진실 씨는 악플로 인해 마음고생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겠지? 하루에도 1천여 건 이상 올라오는 댓글을 일일이 읽었다는 보도를 보면 그 상황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개똥녀’도 인터넷 여론의 피해자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단다. 너도 그 유명한 사건, 기억나지? 한 젊은 여성이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에 탑승했다가 개가 실례한 것을 치우지 않고 내리는 바람에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그 사건 말이다.
개가 실례한 것을 치우지 않고 내리는 여성과 그것을 묵묵히 치우는 한 노인의 모습은 마침 한 여학생의 휴대폰에 고스란히 찍혔고, 그것이 아무런 여과 없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한 극성맞은 네티즌이 그녀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해 밝혀내고 신상까지 공개한 것이지.
그때부터 익명의 가면을 쓴 네티즌들의 집요하고도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개중에는 물론 점잖게 타이르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저주와 비난이 담긴 지독한 악플이 주류를 이루었지. 결국 ‘개똥녀’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고, 해외 언론에 소개되기까지 했단다.
그렇다면 ‘개똥녀’의 근황은 어떨까? 들리는 얘기론 대인 기피증 증세를 보이며,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는구나. 정작 악플러들은 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개똥녀’의 잘못이 큰 건 사실이다.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려면 당연히 캐리어를 사용해야 하지. 또 개가 실례한 것을 치우지 않은 것은 공중도덕에 반하는 행동일뿐더러 경범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똥녀’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싸다. 그러나 그 이상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이 여성의 사진을 일방적으로 인터넷에 공개한 것은 ‘개똥녀’가 한 짓에 비하면 몇십 배나 더 악질적인 행동으로, 심각한 범죄 행위라 할 수 있지. 익명의 그늘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무차별 인신공격을 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일찌감치 정착한 유럽 사회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CCTV가 거의 없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넌 혹 짐작하니? 그것은 범죄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량한 절대 다수 시민의 인격과 초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란다.

아빠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강국이라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네트워크에서 지켜야 할 예절’, 즉 ‘네티켓’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1994년 버지니아 셰어 Virginia Shea 교수가 제안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윤리성 회복’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네티켓 운동에 우리 국민 모두가 적극 동참하기를 강력히 촉구하고 싶구나. 미국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인터넷 자정 운동인 ‘블루 리본 운동 Blue Ribbon Campaign’ 같은 캠페인이 활성화되는 것도 바람직하겠지?
아들아! 아무쪼록 늘 겸손해라. 그리고 지금 너무나도 잘하고 있긴 하지만, 자신에 대한 얘기는 어느 자리에서건 가급적 피하도록 해라. 결국 침묵과 겸손,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만이 막강하고 무자비한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수가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것이 아니라면 결코 그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만약 실수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해명하고, 사과가 필요한 경우라면 망설이지 말고 깨끗하게 사과해야 한다. 절대로 얄팍한 거짓말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하거나 미봉책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너 스스로도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을 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지는 않는지,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며 자기 검열을 해야 함은 물론이란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